연봉 5,000 찍어보자. 프리랜서 독립 3년 그렇게 마음먹었던 그해 허리가 고장 났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림을 그리는 건 고사하고 밥을 먹는 10분도 편히 앉아 먹을 수 없었다. 하루 4시간 이상 누워있으면 비명을 지르는 허리 덕에 수면의 질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 시절 일은 고속도로같이 쭉 뻗은 길을 달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랬는데 나는 그만 허리디스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울증을 앓고 나서야 알았다. 우울증을 앓던 친구가 내 말에 왜 그리 아파했는지를. 조언이랍시고 했던 그 말들은 작은 가시였지만 찔리는 우울증 걸린 친구는(나는) 죽을 것 같은 아픔이란 것을.
그때 주요 일과는 병원에 가서 운동치료를 하고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었는데 그때 물리치료사의
“쯧, 왜 이렇게 뻣뻣해요. 춤을 췄으면 이지경은 안 됐지.” 깐죽거림에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나으면 꼭 춤추고 만다.’ 결심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 몸 망쳐가며 그렇게 미련하게 않아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했을까. 시술을 받고 위장병이 생겨도 독한 진통제를 끊을 수 없었다. 그때 우연히 스윙댄스 동영상을 보았다. 잊고 있던 ‘내가 나으면 춤추고 만다.’ 결심이 생각났다. 영상 속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 시절 숨 쉬는 것 빼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행복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이트클럽 한번 모르고 산 내가 춤을 췄다. 그곳에서 지금의 짝꿍도 만났으니 (지금까진) 성공적인 시도였다.
프리랜서인 내 삶의 기다림은 거의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의뢰 전화나 메일, 피드백과 수정 연락들 뿐이다. 기다리는 게 일과 관련된 것들뿐이라면 너무 재미없는 삶이지 않나.
애타게 기다렸던 게 뭐가 있더라... 글을 쓰며 기다렸던 것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20대 중반엔 합격 통보를, 30대 초반엔 실연 뒤 다시 찾아올 인연, 기다리지 않아도 계절은 돌아오고 주문한 택배 상자는 도착한다.
알고는 있지만 새로이 기다리는 마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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