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은 13년 차이지만 책 밥을 먹은 지 올해로 16년째. 출판사 북디자이너로 퇴사 후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와 북디자이너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책 근처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운 좋게 몇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너무 용감하게 책을 내버린 건가 싶은 마음이 크다. 북디자이너는 필수적으로 출판사 편집자들과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운 좋게 여러 편집자들의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들을 겁도 없이 넙죽 받아 한 권, 한 권 내다보니 그렇게 성공한 책도 없는데 어느새 책을 5권이나 내 버렸다.
책이 잘 팔리기 위해서는 작가의 글과 그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때’ 즉 내는 시점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자기 분야의 책을 쓰는 데 있어서 고수일 때 책을 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현장에서 듣는 이야기나 쓰는 입장에서 보면 전문성이 지나쳐서 어려운 책보다는 공부한 지 얼마 안 될 때 쓰는 책이 독자 입장에서 이해도 쉽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야의 전문성이 지나치면 어렵고, 어려우면 이해가 힘드니 독자의 선택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그럼 지나치게 고수가 아니고 독자를 설득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또 시장이 요구하는 그 애매한 ‘때’는 대체 어디쯤일까?
작년 11월부터 근 4년 만에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고수’가 아닌데 겁도 없이 또 책을 썼다. 올해 7월 원고를 넘기고 이제 책을 만드는 그 지난한 과정, 원고를 검수하고 디자인을 하고 조판을 하고 이제 4년 만에 다시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조만간 받겠구나 싶었다.
큰일이다. 이런 상황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주변에 책 쓰는 걸 아는 사람들의 인사말은 “책 언제 나와요?” 인데, 나올 거라고 믿었던 책이 올해 출간이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말을 어떻게 하지? 소식을 들은 하루는 내내 우울했다. 며칠 지나고 보니 실은 아직 덜 익은 감은 아닐까. 너무 빨리 억지로 따낸 감은 떫기만 하지, 아직 때가 아닌가 봐... 애써 마음을 다독인다.
다 때가 있어, 때를 만나면 잘 팔리겠지.
책을 만들며 그런 경험은 숱하게 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 이번 책은 아직 때가 아닌 걸로 치고 그저 잘 줄기에 매달려 있다 단 물이 든 적당한 때에 딸 수 있기를 빈다.
속마음은 아! 이런 젠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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