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들은 건 아니겠지? 엄마한테 이르거나 못살게 굴면 안 되는데.
누구든 부모를 욕하면 싫은 법이다. 설령 그 부모가 형편없을지라도.
나는 서둘러 그 집에서 멀어졌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아이 앞에서 말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인생 첫 독립이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엄마는 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이사를 돕지 못했다. 어차피 기대하지 않았다. 혼자 하는 일에 익숙했던 나는 1톤 트럭을 불러 무리 없이 이삿짐을 옮겼다. 짐이 많지 않아 이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짐이 이게 다예요? 아가씨 단출하게 사시네.”
아저씨는 별 의미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나는 자격지심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약속한 금액을 건네자 만 원을 빼줬다.
“짐이 워낙 적어서 다 받기가 미안해서 그래요. 이사 기념으로 휴지라도 사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인자하게 웃으며 잘 살라고 덕담을 해줬다. 아까 속상했던 마음이 단숨에 풀렸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도 둘러볼 겸 알바를 구할 생각이었다.
어느 집 옥상에서 하얀 개가 고개를 내밀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손을 흔들자 컹컹 짖어댔다. 길가를 지나가던 고양이가 놀라서 후다닥 도망갔다.
집 주변을 살피면서 골목길을 벗어났다. 큰 길가를 따라가며 만 원으로 뭘 할지 고민했다. 마침 눈에 띄는 주스가게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향긋한 과일향이 퍼졌다. 카운터에 노란 모과 열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썩은 것처럼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손님이 두고 갔어요. 못생겨도 향은 좋아요.”
남자 사장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모과주스도 있어요?”
“그건 없는데…… 어쩌죠?”
“어쩔 수 없죠.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
만 원을 내고 잔돈을 거슬러 받았다. 자리에 앉아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주스가게답게 상큼한 분위기였지만 온통 노란색 벽이 살짝 숨 막혔다. 기계에서 막 내린 커피가 잔에 담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일어났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요.”
커피를 받아들고 돌아가 앉았다. 뜨거운 것을 마시자 몸이 한결 따뜻해졌다.
벌써 봄이었다. 환절기에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수월하게 넘긴 것 같았다.
집에서 독립했다고 감기에서도 독립한 건가?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체질이라는 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면 역시나 나는 엄마랑 맞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우울한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속 추위도 몸처럼 어느 순간 나아지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사장 아저씨의 앞치마에 그려진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무심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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