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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작가 Jan 18. 2023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범백에서 살아남은 아기 고양이

어느 날 눈도 채 뜨지 못한 아기 고양이 5마리가 동물 병원 앞에 버려졌다. 어미가 죽었는지 아니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납치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의사 선생님은 못 본 척할 수 없었기에 아이들을 거두었다.

머지않아 5마리의 고양이 중 4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죽음의 원인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증상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범백으로 추정되었다.


그렇게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 고양이는 기특하게도범백을 이겨내고 항체를 가지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아기 고양이에게 종종 달걀노른자를 주면서 키웠고, 별 탈 없이 2~3개월가량의 고양이가 되었다. 작고 이쁜 데다가 품종묘처럼 생겨 금방 입양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양을 하려는 사람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고, 아기 고양이는 병원 케이지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나는 키우던 고양이들이 아팠기에 동물 병원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 진료실 안쪽의 케이지에서 회색 먼지 같은 작은 아기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작고 귀여운 뽀시래기였다.

어디선가

“세상 모든 포유류의 새끼들이 귀여운 이유는 어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우연히 본 그 회색 아기 고양이에게 모성애를 느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다. 나의 고양이들이 아팠기에 다른 곳에 정신을 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도 아기 고양이는 입양이 되지 않았고, 금세 훌쩍 커버려 캣초딩냥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는 몸이 꽤 커진 상태로 여전히 케이지에 갇혀 지냈다. 갇혀 있는 것이 괴로웠는지 볼 때마다 문 짝에 매달려 울부짖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고양이는 범백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의사 선생님은 범백도 이겨낸 고양이라며 케이지에 갇혀 지내는 아이를 입양하기를 조심히 권유했다.

병원에서도 처치 곤란인 아이였을 것이다. 아기 고양이어도 입양이 되지 않았는데, 몸이 커진 고양이는 더욱더 인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키우기에도 부담스러웠을 테니.

나는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려 했기에 거절했다. 반려묘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아이가 무지개다리로 떠나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컸다. 생명을 돌본 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이 공존했다.


또한 긴 투병으로 인해 큰 금액의 병원비는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다.

거기에 여러 마리의 임보와 다묘 가정이었기에 항시 털과 모래와 먼지 등의 전쟁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없는 집은 꽤나 쾌적했고, 검은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생겼다.

나는 당분간은 아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 어떤 동물과의 인연을 맺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철장 케이지에 갇혀 울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쓸데없이 모성애가 발동한 것이다.

결국 나는 동물 병원에 입양의사를 밝히고, 혹시 모를 남아 있는 바이러스가 걱정되어, 집안 곳곳을 소독하고 새로운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며칠 뒤 고양이를 데리러 병원에 갔을 때 동물 병원에서 파란색 스카프를 메주었다.

새로운 집에 입양 가는 아이가 조금이라고 이쁘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 의사 선생님이 손수 스카프를 메준것이다.

나는 이미 청소년냥이 되어 우리 집에 오는 이 아이가 과연 적응을 잘할지 걱정되었다. 아무리 병원에서 사람 손길을 탔다고는 하지만, 사람과 어우러져 생활을 한 적이 없었던 아이였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고양이는 집에 오자마자 구석구석 점검을 다녔다. 마치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을 이리저리 파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는 고맙게도 금방 적응했다.


이름을 먼지로 지어줄까 하다 당시 나는 동네의 유명한 맛집 중에 하나인 순댓국을 즐겨 먹었을 때였고, 꼭 후추를 뿌려 먹었다.

후추는 회색이라는 공식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더니 결국 아이의 이름은 후추가 되었다.


후추는 10년이 지난 지금 감사하게도 땅콩 떼는 일과 접종, 건강 검진 외에는 아파서 병원에 가 본적이 한 번도 없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후추는 특히 생선 종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은 회를 먹을 때면 꼭 포장을 해서 집에서 먹는다. 그러면 후추는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잘게 잘라주는 회를 받아먹는다.

집에 식구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제일 먼저 현관문 앞에 앉아 식구들을 반기기도 한다.

유난히 애교도 많고 사람 언어도 잘 알아듣는 후추가 앞으로도 건강하길 빌어본다.


너무 고맙고 든든한 나의 첫째 후추야. 너를 데리고 온 것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후추는 가끔 내 핸드폰에 셀카를 남겨 놓기도 한다.


유난히 후추 발은 토실토실하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건강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후주


후추 청소년냥 시절


후추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후추는 내 품에 안겨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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