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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ul 13. 2021

바람 부는 날, 바람소리 듣고 싶을 때 영랑호를 걷는다

[호수 둘레길_7.8km]


속초 시외버스 T – 속초의료원 (영랑초교/영랑리조트) - 영랑호수 (양방향 진입 가능)


▶속초 사잇길 : 제1길 호수길 '영랑호'

▶해파랑 길 45코스




집에서 본 아침 바다





오늘 아침에 강풍, 건조주의보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다. ‘얼마나 바람이 불까’하는 생각에 현관문을 여는 순간 ‘쌩쌩’ 거친 소리를 내는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이 바람소리가 더 듣고 싶어 주저하지 않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피톤치드 가득한 삼나무길
봄이면 걷는내내 벚꽃을 만날 수 있다.





도시에 살고 있을 때는 바람 불면 옷깃 여미느라 손이 바쁘지만 속초에 살면 날씨에 따라 마음 움직이는 대로 다닐 수 있는 소소함이 있다. 특히, 태풍이 오면 걸어 다니기 힘들 때 도 있지만 오늘처럼 강한 바람이 부는 날엔 한 번쯤은 모험을 시작해도 좋다. 바다보다는 나무가 많은, 산보다는 호수가 있는 곳을 추천한다. 초록빛이 피기 시작한 봄날, 바람에 온몸이 가끔은 휘청하지만 상쾌함은 배가 된다.






야생 풀꽃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걷는 길 위로 저마다 소리를 내며 나무들의 오케스트라가 시작된다.

온몸을 흔들며 옆가지들이 들쑥날쑥 박자를 맞춘다.





범바위 옆 연꽃
계절마다 피는 들꽃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

빨리 오라는 손짓들

지치지 말고 계속 걸어야 한다는 채찍 소리


때론 잔잔함으로 달래주기도 하며

또 좀처럼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얘기를 건네기도 한다.





매일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히말라야 등반은 살면서 보이지 않은 꿈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걷고 있는 이 길이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뒤로 앞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며 걷다 보니 이것도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 울산바위, 설악산
짙은 안개로 덮인 영랑호





계속 앞으로만 갈 수 없는 엎치락뒤치락하며 굴곡 있는 순간들이 내내 머리를 짓눌렀던 기억은 더 이상 나질 않고 ‘이 순간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하는 생존의 법칙에 힘차게 걷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결론으로 씩씩하게  계속 걸어 나갔다. 바람이 불면 잠시 멈췄다 잔잔해지면 걷고를 반복하다 보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예보는 없던 날씨였다. 그런데 정말 여기가 '산 정상'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세찬 비바람에 우박까지 선물로 내렸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석호인 영랑호
바람이 분다





가던 길을 멈추기엔 너무도 많이 왔기에 묵묵히 바람소리와 내리는 비, 우박에 한 몸이 되어 걸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또다시 마주하기 어려운 길이고 순간일 것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를 보면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비를 맞아본 적이 오래돼 지금은 오롯이 나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졌다. 마지막을 향해 걷을 때까지 계속 내리는 굵은 비와 천둥소리는 오히려 멜로디로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공포를 느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음에 웃음도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나올 때, 방수가 되는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복잡한 무언가에 집착하기보다는 집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욕조 가득 담아 몸을 데우며 와인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아직도 살아있음에 새삼 감사하며 저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맑음, 흐림으로 언제나 바뀌는 호수

걷는 Tip! 이어폰 없이 가볍게 물통 하나 들고 2시간 남짓 걸어 보기.

여행 Tip!! 속초 2경 '범바위'가 있다. 바위 정상으로 가면 속초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다.

YOUR 미션!!! 호수 안에는 '쉼 의자'가 있다. 어디를 앉아도 설악산이 보인다.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자. 해마다 '봄'은 속초의 예쁜 벚꽃길이 영랑호에 있다. 7Km 넘는 벚꽃길을 만나보자. (개화시기 4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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