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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한국의 중고딩들에게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아는 척하는 어른들이나쁜 거야.

by 가끔 글쓰는 회사원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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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중학생 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다. 중학교 때는 외고 입시를 준비했고, 외고에 가서는 대입을 위한 3년을 보냈다. 격오지에서 고생스러운 군생활도 해봤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3년이 넘도록 고시공부도 해보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내 인생에서 단연 가장 차갑고 힘든 시간이었다.




   고등학생의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내신 점수 소수점 자리 숫자로 인생이 크게 좌우된다고 말하던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면 누군가는 그 버스를 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노동자의 삶을 하찮게 여기던 고등학교 선생님도 계셨다. 학원 강사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좋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펼쳐질 놀라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거나, 혹은 그런 결과를 쟁취해내지 못한 선배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고 안타까운지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을 자극하고는 했었다. 그때는 그 목소리들이 내게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 목소리들에 압도되어 다른 소리들은 잘 듣지 못했다.




  속으로는 생각했었다. 설마 저 말이 다 진짜일 리가 없잖아. 점수 일 이점으로 대학이나 전공이 바뀔 수는 있어도 인생이 망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인생에 대해 그리 쉽게 성공하고 망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내 눈앞으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시험과 수행평가에 대한 가차 없고 모질었던 점수와 석차를 보고 있으면 더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점수 더 올려야겠구나. 이 등수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 망하고 싶지 않다. 꼭 잘 해내서 저 재수 없는 교사들과 강사들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다'. 나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발악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다 보니 항상 피곤했고, 잠이 많이 부족할 때면 깨어 걸어 다니는 동안에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잠을 줄이는 공부는 내게 맞지 않는 공부방법이었다. 하지만 내신점수를 올리는 것이 절박한 나머지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내게 진리를 말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에서마저도, 나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가야 하는 학원의 숙제를 못 끝낸 것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멍해지고는 했었다. 설교자는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귀한 사람이라는데, 머리로는 들려도 그것이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나는 그저 내신 몇 등급짜리 인생이었고, 그것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하는 무섭고 처절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치열하고 처절한 입시 앞에서, 내가 존귀한 사람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누군가가 내 두 어깨를 꼭 붙들고 절대 잊지 말라며 진리를 외쳐주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있었다.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최고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고. 비전을 따라 사는 인생에 실패란 없는 거라고. 하지만 아직 인생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채 정립되지도 않았던 내게 교사와 강사들의 목소리는 내게 크고, 강력하고, 위협적이며 심지어 권위적으로 다가왔다. 학교와 학원, 심지어 내 방 안에도 진짜 인생이 뭔지 고민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거짓말들이 가득했다. 이 거짓말들에 둘러싸여 나는 쉽게 상처 받고 좌절했었다. 한국은 학생들이 대입이 인생의 전부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낮은 성적 때문에 인생을 비관해 자살하는 수험생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과 방 안에서 세상의 거짓말들과 씨름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을 것이다. 성적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 틈에서 쉽게 상처 받던 나였다. 분명히 나 같은 후배님들이 또 어디에선가 쓰디쓴 침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을 많이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짧은 인생에서도 깨달은 진리가 있고, 이 땅의 모든 학생들에게 변하지 않는 진리를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최고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고. 비전을 따라 사는 인생에 실패란 없는 거라고. 너의 잘남 때문이 아니라, 너란 존재 자체로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고.




  인생은 참 짧고 덧없다. 길어야 100년도 못 사는 인생, 한 세대만 지나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상이다.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평생 고민해도 쉽지 않은 질문들이고, 어른들도 정답을 모른다. 그런 어른들인데도 함부로 청춘의 삶을 판단하고, 상처 주는 말로 어린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이 허용되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누가 이 세대를 위로해줄 수 있을까. 누가 이 세대의 아픔을 온전히 안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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