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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

과적합 데이터의 오류

by RIZ

'모험심이 많다.', '새로운 도전을 추구한다.', '두려움이 적다'

성향테스트나 인성검사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매우 그렇다'를 선택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걸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일단 건너고 보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고

이미 그것으로 성공해 사업을 차리거나 성공한 상상까지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면 바로 시도를 한다.


하지만 그 결말이 나의 생각처럼 언제나 아름다운 건 아니다.

시작하고 보면 나의 상상과 달리 맞지 않을 때도 있고

반복적인 작업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며

내가 꿈꿔온 미래를 실현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본 것 같다.

관심 있으면 찾아가 배우고 흥미로우면 모든 책과 영상을 뒤져 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것은 새로운 다음 도전을 하는 데 있어 좋은 데이터가 되었다.



예를 들면, 쿠키,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 쿠킹 클래스에 갔을 때 이야기이다.

베이커리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고 주어진 레시피 대로 재료를 넣거나 섞고 구우면 되는 것이다.

나는 무척 지루함을 느꼈다.

왜냐면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그냥 정해진 레시피대로

나오는 공장 속 디저트와 다름없어 보였다.

이 돈으로 그냥 사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배운 것이 그리 유익하다고 생각들 지도 않았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베이커리에 큰 관심도, 뜻도, 흥미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쿠킹 클래스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스터리했던 직업군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고

환상 속에 꿈꾸던 일을 직접 해보기도 하면서

지금은 단순히 설명과 영상만 보아도

나의 흥미, 적성 여부를 오만하게 판단해 버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이 데이터는 내가 더 이상 흥미로운 일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휴일과 주말 또는 자유시간.

지금까지 쌓인 피로가 다 풀리고 나면 나는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책도 지루하고,

영화도 보고 싶은 게 없고,

배우고 싶거나 흥미로운 일도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잠을 자기엔

뭔가 아직 젊고 그나마 자유로운 이 시간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 같은 것이 든다고 할까.


10대의 호기심과 20대의 긍정적인 패기는 사라진 30대의 나.


물론,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비효율의 끝판왕이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에 시간을 보내던 그때의

생각과 마인드가 가끔씩 생각난다.


어쩌면 마치 연애 상대를 고르는 것과 같은 걸까.

10대, 20대에는 사랑하는 마음에 따라 사랑을 시작했지만

30대는 대부분의 조건이 맞아야만 시작조차 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나를 위해 쌓여온 데이터는

분명 효율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이끌지만,

사실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나를 가로막고 있는

과적합 데이터 같은 존재인 것은 아닐까.



30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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