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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Oct 13. 2024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감상

모두의 예상을 넘어, 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식.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조금 느리게 감격의 눈물과 소름이 밀려왔다. 겨우 1억 명도 쓰지 않는 변방의 언어. 그 언어로 직조된 문학이 세계의 인정을 받는 순간이라니. '한국어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어휘를 제대로 옮길 방법이 없어서 세계의 인정을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던 게 선생님들의 말씀이었는데, 그걸 해냈다. 번역과정에서 소실되거나 오역되는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화적 필터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은 것이다. 며칠 밤을 이 이야기로 떠들고 싶지만, 화제성이 식기 전에 예전에 썼던 독후감을 먼저 옮겨본다. 작가님이 먼저 읽기를 추천하신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감상이다.


[작가님 사진중엔 잘나온 사진인듯.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선 눈꽃 에디션이 가장 마음에 든다. 최근작이지만 벌써 3년전 작품]

1. 통증에 대해


소설은 일관되게 고통스러웠다.


이전에 한강 작가가 쓴 이야기들을 읽었을 때, 마음에 가해지는 중력 비슷한 것이 갑자기 강해져서 무거워진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 작가님이 풀어낸 4.3의 이야기라니 편하게 읽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12p'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은, 살이 베이는 느낌을(그것도 몸 한가운데를 길게 이어), 잘라지는 아픔을 마주해야만 하겠구나라는 예감. 왜 이 작가는 이렇게 힘든 글들을 쓰는 걸까. 겨우 한 번 읽어내는 나도 버거운데, 수 천 번 고쳐 쓴 사람은 얼마나 긴 시간을 이 문장들과 함께 고통스러워했을까. 소설 초반에 묘사된 경하의 시간들은 작가 본인을 거울에 비춰가며 받아쓴 게 아닐까.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멍하게 나는 되물었다.......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불쑥 인선의 얼굴이 아이처럼 밝아져 하마터면 함께 웃을 뻔했다. 뭐, 썩는 거지. 수술한 위쪽 마디가. -40p'


왜 작가님은 한국사의 아픈 이야기들을 다시 적어내는 건지. 궁금했었다.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 생각하기엔 한 세대나 전의, 조금은 지나버린 이야기들인데. 그런 질문에 대해 저 문장이 답하는 듯했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고통스러운 사고. 응급처치로 봉합한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 주기적이고 의도적인 통증의 재인식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가진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구나. 무수히 많은 고통의 반복을 통해서만 다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손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구나. 감당하기 힘들다고 눈감고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서는 안된다고. 회복에 과정에 통증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상처를 직시하라고 말하는 거구나. 덮어 놓은 상처들은 제대로 치유될 수 없다는 말을 하신 거구나. 이게 작가님이 한국사의 상처들을 대하는 방식이구나.



2. 눈에 대한 관찰과 묘사


어쩌면 눈에 관한 이야기 일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있었다. 표지부터 눈꽃이니. 눈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해 낸다. 눈은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생명을 구하게도 한다. 뭐 이런 상징인 것 같은데. 고민해 봤지만 아직은 어렴풋한 짐작.


'구름은 물분자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고, 수증기를 타고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개의 물분자가 구름 속에서 결속해 눈의 첫 결정을 이룰 때, 그 먼지나 재의 입자가 눈송이의 핵이 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단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93p'


지상에서 타고 남은 것들은 먼지와 재와 같은 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로 올라간 재와 먼지가 물과 함께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어쩌면 하늘에 있던 물을 양손에 끼고 저 땅 위에 아직 타고 있는 불을 끄러 가자고 어깨 걸고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시끄럽게 싸우던 소리와 빛은 눈송이 속에 다 담아 가두고, 잠시나마 포근하게. 지상에서 타고 있는 억울한 고통들을 보듬어 주는 눈.


'장갑 낀 손등에 방금 내려앉았다가 녹은 눈송이가 거의 완전한 정육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 곁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삼분의 일쯤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부분은 네 개의 섬세한 가지들을 본래 모습대로 지니고 있었다. 부슬부슬한 그 가지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소금 알갱이같이 작고 흰 중심이 잠시 남아 있다가 물방울이 되어 맺힌다.-109p'


'막 내려앉은 순간 눈송이는 차갑지 않았다. 거의 살갗에 닿지도 않았다. 결정의 세부가 흐릿해지며 얼음이 되었을 때에야 미세한 압력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얼음의 부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흰빛이 스러지며 물이 되어 살갗에 맺혔다. 마치 내 피부가 그 흰빛을 빨아들여 물의 입자만 남겨놓은 것처럼.... 이렇게 차갑고 가벼운 것은, 녹아 자신을 잃는 순간까지 부드러운 것은. - 186p'


천천히 오래 눈을 관찰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


같이 읽고 얘기 나눌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글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김구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회사의 배려로 정용준 작가님과 함께하는 북클럽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책에 관해 얘기하면서 정용준 작가님이 공유해 주신 인터뷰 내용. 우리가 한강작가님이 써 내려간 슬픔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 구술된 서사가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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