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로, 길가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선생님이 남성으로 기억되는데, 나의 국민학교 담임 중에서 남자 선생님이 있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흘러온 시간에 비례해 많은 부분이 편집된 이야기.라는 뜻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질서 의식이 더욱 성숙해져야 한다’라는 뉘앙스의 발표를 했다. 똑같은 말을 약간씩 다르게 하느라 고생하는 친구들이 바보 같았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무슨 반성을 그렇게들 하는지. 나는 다르게 말하고 싶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싶을 때 바로 버릴 수 있도록 곳곳에 쓰레기통을 더 많이 설치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건 그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했었고, 내가 다른 의견을 말하자 드디어 토론이 가능해졌다. 1 vs 5 정도로 말싸움을 한 것 같은데 세세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결론적으로는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의 주장이 유심론이고, 나의 주장이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유물론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고, 유물론을 말했다고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인지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나는 MBTI상 T에 해당하는 사람이란 건 확실히 알 것 같다.
[이런 쓰레기통이 학교에 있으면 바닥에 쓰레기를 덜 버리지 않을까]
내가 한결같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시민의식이 문제입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종이컵 사용을 멈춰주세요’ 같은 문장을 보면 거슬리는 마음이 까칠하게 올라온다. 종이컵 1개를 절약했을 때 저감 되는 탄소 배출량은 45g, 대한민국의 연간 탄소 배출양은 6억 톤이다. 그램으로 환산하면 600,000,000,000,000g 종이컵 몇 개를 아낀다고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텀블러를 만들고 팔고 씻고 버리는 데 사용되는 탄소가 더 많지 않을까? 종이컵은 종이컵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 종이컵과 이메일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기업과 에너지, 운송분야에 있다. 그런 거시적인 부분의 개선 대책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종이컵을 아끼면 지구 온난화가 막아질 것처럼 말하는 게 불편하다. 종이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환경을 파괴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돌리는 게 맞지 않을까? 산에 가면서 종이컵 들고 갈 수도 있고, 점심 먹고 나오면서 자판기 믹스커피 한잔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라고 만든 종이컵 적당히 잘 쓰면 될 일이다. 죄책감 없이 종이컵을 잘 사용하되, 대신에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하자. 우리는 그 정도 초등교육은 받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