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노란 꽃 10화

너의 유령

by 문창승

어느 날엔가

거실 한 모퉁이에

희끄무레한 형체가 나타나더니

내 앞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흐릿한 윤곽임에도 알아볼 수 있는 눈코입

그래, 너. 바로 너의 유령이다.


날 보는 듯, 내 너머를 보는 듯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모든 걸 아는 듯

깜빡이지 않는 너의 눈 위에는

무심함과 원망, 체념과 질책이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히도 찍혀있다.


온기는 물론이요

한기도 느껴지지 않는,

온도란 구속복을 벗어버린 환영이자 그림자

너는 이곳에 없는 것이 확실하고

이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네가 정말로 숨이 멎어

너를 사랑하고 네가 사랑하는 이들의 울음과 함께

너의 생기 넘치던 육신으로부터

영영 떠나온 게 아님을 안다.

죽은 것은 그곳의 네가 아닐 것이다.

죽은 건 나라는 장소 위 너다.


사랑을 속삭이던 너와

서운함에 눈물을 흘리던 너와

기쁨에 천진하게 웃던 너와

우울함에 무기력하던 너와

슬픔에 회색빛으로 젖어있던 너와


그 모든 너는 죽음으로써

가죽 아닌 기억을, 몸 아닌 유령을 남기었다.

신경조차 타버린 너를 대신해

이제 고통으로 몸을 떠는 건

과분히도 나의 몫이 되었나 보다.


너를 마주하지 않으려

애써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거울을 본다.

그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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