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했던 빛이 시든 것일 수도, 아니면
밝았던 두 눈이 떨어져 나간 것일 수도 있겠다.
예보에 없던 돌풍처럼
한순간에 들이닥친
잿빛 고통 한 무더기가
나의 공간을 장악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인
연약한 피난민은
바들거리는 다리를 옮겨
심연의 어딘가를 헤맨다.
길인 곳과
길이 아닌 곳을
구분치 못하는 처량함이
그에게 주어진 길인가보다.
그저 어둡기만 하다가도,
문득 숨통을 틀어막는 압력이
갈비뼈 사이로 파고들어 올 때면
분노와 무력감의 신음을
가까스로 내뱉는다.
아주 이따금씩
코를 간질이는
은은한 꽃내음은
가까이 온 듯하다가도
놀리듯 달아나곤 함에도
그 향긋한
기억 한 줄기 붙잡고
방랑은 계속된다,
품 안의 울분을 안은 채로
쓰러져 누우면 찾아올
평화가 이토록 간절한데
걸음은 멍청한 열심을 거두지 않는다.
다리의 숙명은 끝내 걷는 것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