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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경계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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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Sep 14. 2023

3.

분홍색 니트

나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이에요. 어렸을 부터 그랬어요. 성격이 활달해서 모임에서 항상 중심이 돼 거나 사람의 이목을 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모임 자체를 좋아하죠. 핸드폰 연락처를 보면 끝이 없어요.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계속 이어지죠. 저는 교류회 같은 곳을 좋아해서 자주 가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요. 희영 씨는 가본 적이 없어요?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어요. 성격이 활달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주저함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앞서 말한 이야기와 다르다고요? 활달하지 않은 성격이라고 했으면서 왜 그런데 나가냐는 말이겠네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곳에 가면 간혹 볼 수 있죠. 참가해서 말없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거나 구석에서 눈앞에 흘러가는 상황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 내가 그래요. 그러다가 집에 갈 시간 즈음 친해진 이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나서 놀아요. 친해져 봐요. 그러면서 연락처를 교환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공간이거든요. 그럴 때 자연스럽게 나도 핸드폰을 내밀어요. 이제껏 말없이 조용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한 얼굴을 해요.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하죠. 물론 그 안에서 경계심이 심한 사람들도 있어요. 웃으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할 때는 감탄을 하기도 해요. 나에게는 없는 기술이니까요. 어떻게 거절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배려하며 할 수 있을까. 참 배우고 싶은 부분이에요.


 나는요, 어려부터 정말 사람들이 좋았어요. 타인을 보면 에너지가 느껴져요. 나에게는 희미한 부분이죠. 모르겠어요. 나는 줄곧 사랑을 받고 살아왔단 말이에요. 아빠는 나를 공주님이라 불렀고 엄마는 현모양처로 살림을 잘했어요. 늘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입고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만들고 집안 살림을 했죠. 아빠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우리와 함께 놀아줬어요.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면 집안에는 달콤한 냄새가 풍겼죠. 어떤 요리를 준비하던 참 달콤했어요.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는 아빠를 보며 엄마가 불러줄 때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어요. 응, 우리. 아! 오빠가 있거든요. 한 살 터울의 오빠와 나. 보모님 포함 네 가족이에요.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분홍색 옷을 입혀줬어요. 원피스가 대부분이었는데 엄마의 앞치마와 닮은 프릴이 가득한 옷이었죠. 좋아하는 색이냐고요? 어…. 나는 보라색을 좋아해요. 나에게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물어봐 준 사람은 없었는데. 고마워요. 보라색 옷을 입고 싶다고 말해본 적이 없냐고요? 음,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여자는 분홍색을 입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것이 여자의 색이라고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오빠는 파랑, 나는 분홍.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는 내게 여자로 사랑받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어요. 여자는 남자 말을 잘 들어야 해. 집을 예쁘게 꾸미고 음식을 잘하고 자식을 잘 키우면 성공한 삶이란다,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얼굴에서 미소가 떠난 적 없는 엄마를 보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끔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에 꼼작 없이 앉아 있는 엄마를 볼 때가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엄마는 취미가 딱히 없었어요. 장을 보거나 은행 업무 같은 일로 외출을 해야 할 때 빼고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집안일을 모두 끝내고 시간이 남을 때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다 멍하게 있었죠.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어요. 좋은 방법이라며 맞장구치며 엄마는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일을 나갔지만, 금세 그만두었어요. 하루 이틀 일을 하고 와서는 사람들이 텃세를 부린다, 자기를 시기 질투한다, 그런 이유를 대며 더는 일을 하러 가지 않았어요. 아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엄마는 집안에 있는 것으로 안정을 찾았지만, 난 기억해요. 엄마가 나약한 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아빠는 한심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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