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경계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리아 Sep 14. 2023

5.

분홍색 니트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였어요. 키도 훤칠하고. 이제 막 제대하고 복학을 한 참이라고. 학교에 돌아왔더니 늙다리가 되어 새로이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대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나오면 좀 더 수월하게 친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너무 귀여운 발상이지 않나요? 콩깍지라고요? 하하, 그럴 수도 있죠!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무얼 하든 귀여워 보이는 법이니까. 뿐만 아니에요. 그렇게 말은 하지만 읽은 책도 많고 생각도 깊었어요. 독서회는 주에 일 회 두 시간 정도 씩 모임을 가졌는데, 일주일에 한 권, 책을 정해 읽고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어요. 새로운 책이 소개될 때마다 그는 아, 그거 예전에 읽은 책이야. 그런데 너무 오래전이라 다시 읽어 봐야겠네. 또 읽으면 새로운 시각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며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곤 했죠. 어쩜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어 왔는지. <전생했더니 어느 나라에 공주가 되었습니다> 같은 판타지 로맨스 소설만 읽던 내가 참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장르도 꽤 재밌으니 읽어보세요. 추천드려요.   


 독서회에서 선정된 책을 대부분 샀지만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었어요. 그날이 그랬죠. 학교 도서관에 책을 대출하러 갔어요. 서가에서 도서를 찾다 그를 마주쳤어요. 같은 책을 빌리러 온 거였죠.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오빠에게 양보를 강요당했던 저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려고 했어요. 양보는 배려이니까. 그랬는데 글쎄 그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 주지 뭐예요. 이 책 빌리러 왔나요? 하면서 책을 건네주더라고요. 조금 빨리 읽고 반납하면 자기도 읽을 수 있으니 빨리 읽고 돌려주세요.라는 재치 있는 농담과 함께요. 평소 눈길이 가던 사람이 호의를 베풀어 주니 내 심장 박동이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었어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죠. 휴대폰을 내밀고 연락처를 물었어요. 제가 반납할 때 연락 드릴 테니 연락처 좀 주세요, 하고. 그때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도서관을 나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실 저는 장르 소설을 좋아해요,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했어요. 판타지 로맨스를 주로 보는데 독서회에 나오니 고전이나 사상이 담긴 책을 추천해서 따라가기 힘드네요, 같은 푸념을 살짝 늘어놓았죠. 그랬더니 글쎄, 그가 활짝 웃으며 사실은 자기도 서브 컬처를 더 좋아한다고 하지 뭐예요! 내가 보는 장르와 같은 판타지, 무협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공통점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빠져들었어요. 운명같이 느껴졌거든요. 이후로 그와 자주 연락하고 지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죠.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이전 04화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