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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경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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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리아 Sep 14. 2023

7.

분홍색 니트

너무 충격이었죠. 늘 사람 좋은 얼굴로 미소 짓던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몸이 벌벌 떨렸어요. 그는 손으로 그릇을 거칠게 밀치며 먹고 싶지 않으니 당장 치우라고 하더군요. 순간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어요. 몇 시간을 공들여 만들고 예쁘게 플레이팅 한 음식들을 주저 없이 개수대에 버렸죠. 아직 내 노력이 부족했나 보다. 다음에는 좀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도록 더 연습해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우리는 이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티브이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도 조금 서러운 마음이 들어 집에 와서 엄마한테 둘러 말을 했어요. 남자친구에게 요리를 해줬는데 입맛에 맞지 않았나 봐. 몇 입 먹다가 말았어. 그랬더니 엄마가 남자들은 원래 입맛이 까다로워 맞추기 힘들다고, 자신도 아빠 입에 맞는 요리를 만들기까지 부단히 노력했다고 하더라고요. 안심이 됐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래. 다음에는 꼭 맛있게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잘해야지, 다짐했어요. 응? 희영 씨 왜 그런 눈을 하는 거예요? 네? 그는 날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고요? 많은 노력을 했어요. 만나는 동안 빠짐없이 헤어질 때 전철역까지 바래다줬어요. 그리고 데이트할 때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쿠폰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왔어요. 내가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물건을 살 때 제값을 주고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며 알뜰하게 쇼핑하는 법도 알려줬고요. 자주는 아니지만 길을 지나가다 내가 예쁘다고 말하는 물건을 기억하고 사다 주기도 했어요. 명동 같은 곳에 가면 노점에서 파는 아기자기한 물건들 있잖아요. 반짝이는 귀걸이라든지, 브러치 같은 거. 정말 다정하지 않나요.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기억해 준 거잖아요. 그 마음이 고마운 거죠. 그것도 다 나를 위한 노력이에요. 내가 착하다고요? 고마워요. 어릴 때부터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자기 자랑 같아서 수줍네요. 아니, 희영 씨 아까부터 왜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예요? 손길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긴 하지만 조금 부끄러워요. 아, 왜 눈물이 나는 거죠? 주책맞게.


  큼… 남자친구 이야기를 계속해도 될까요? 아무튼 그랬던 그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했어요. 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했죠.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있어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런 날은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하루 종일 진땀을 뺐어요. 나는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의 세상엔 그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나를 사랑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대부분 나는 그의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와 온종일 함께할 때도 있고, 그가 외출했을 땐 방에서 남자친구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식사를 준비했죠.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를 보고 깨달았어요. 가족밖에 모르는, 집에서 벗어나지 않는 엄마와 나는 다를 게 없다는 걸. 엄마를 사랑하지만, 저렇게 울타리 안에 갇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거지?


  한 번도 그 사람 몰래 다른 이를 만난 적이 없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거나 그의 집으로 가서 지냈으니까. 딱히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 생각하지 않았죠. 하지만 내 삶이 열 평 남짓한 그의 방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안 순간 사무치게 사람이 그리워졌어요. 그래서 연락처를 뒤져 몇 남지 않은 지인 중 한 명을 만났어요. 끝없이 내려가던 제 연락처에는 그가 엄선해 준, 그가 안심하고 만나도 된다고 인정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어요. 그조차 자주 연락을 할 수 없었는데 고맙게도 저의 부름에 달려와준 친구가 있었어요. 너무 오래 개인 시간을 가지면 의심을 하니까 두세 시간 남짓.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나갈 약속을 잡았죠.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를 만났어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가 나를 때리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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