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경계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리아 Sep 14. 2023

8.

분홍색 니트

어머, 희영 씨. 그렇게 놀란 얼굴 하지 말아요. 알아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런데 있잖아요, 처음이 어려운 거지 두세 번 째는 쉽다고들 하죠. 한 번 올라간 손은 이후로 멈출 줄 몰랐어요.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주저 없이 손발이 날아왔어요.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죠? 이런 걸. 왜 헤어지지 않았냐고요? 글쎄요. 일단은 두려웠던 것 같아요. 말과 마음으로는 그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두려웠던 것 같아요.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더 큰 보복이 돌아오지 않을까. 내가 그에게서 완벽하게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절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이란 게 참 웃겨요. 내성이 생기더라고요. 계속 맞다 보니 아, 내가 잘못한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그 후로 모든 신경은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종속됐어요. 그의 안색을 살피고,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여성스러운 걸 좋아하는 그를 위해 더욱 여성성을 강조하게 되었죠. 조신하고 참한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고요? 이런 이야기,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나는 엄마 아빠의 착하고 예쁜 공주님인 걸요. 가끔이지만 아빠도 엄마를 폭행했어요. 남자친구가 나에게 한 만큼은 아니었어도.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아마 엄마에게 말했던들 남자는 원래 그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희영 씨… 내 머리 헝클어지는데… 어쩐지 손에 힘이 좀 들어갔네요. 나 대신 화를 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오버인가요? 

이전 07화 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