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니트
어머, 희영 씨. 그렇게 놀란 얼굴 하지 말아요. 알아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런데 있잖아요, 처음이 어려운 거지 두세 번 째는 쉽다고들 하죠. 한 번 올라간 손은 이후로 멈출 줄 몰랐어요.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주저 없이 손발이 날아왔어요.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죠? 이런 걸. 왜 헤어지지 않았냐고요? 글쎄요. 일단은 두려웠던 것 같아요. 말과 마음으로는 그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두려웠던 것 같아요.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더 큰 보복이 돌아오지 않을까. 내가 그에게서 완벽하게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절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이란 게 참 웃겨요. 내성이 생기더라고요. 계속 맞다 보니 아, 내가 잘못한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그 후로 모든 신경은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종속됐어요. 그의 안색을 살피고,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여성스러운 걸 좋아하는 그를 위해 더욱 여성성을 강조하게 되었죠. 조신하고 참한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고요? 이런 이야기,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나는 엄마 아빠의 착하고 예쁜 공주님인 걸요. 가끔이지만 아빠도 엄마를 폭행했어요. 남자친구가 나에게 한 만큼은 아니었어도.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아마 엄마에게 말했던들 남자는 원래 그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희영 씨… 내 머리 헝클어지는데… 어쩐지 손에 힘이 좀 들어갔네요. 나 대신 화를 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좀 오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