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터에 빈 총을 들고나갔다
다만, 나는 그 새로운 친구분께 “우리 남편과 좋은 동료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라는 말을 내뱉을 용기는 죽어도 없다. 그 대신 “제가 좋은 친구가 되어드릴게요. 좋은 친구가 필요하시면 저에게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싶으실 때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라고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것 또한 그다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한 시간에 한 번 씩 이 문장을 곱씹으며 연습한다. 그녀와 만날 때까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하게 친구들과 만났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 지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랑 수다 떨고 웃고 떠드는 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내가 누군가를 뼛속까지 싫어하고 미워하고 견제하는 걸 못 참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외로웠다. 나는 군인이지만 공포탄조차 없는 빈 총을 들고나갔다.
그러니 남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을 멀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그냥 나만 손해였다. 나에게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가 박탈시키는 것과 같다. 나를 고립시키고 단절시키고 나는 더더욱 외로워질뿐이다. 나는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고 믿고 싶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남편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선생님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내 주위에 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하다.
지금은 안다. 그렇게 좋은 사람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걸. 그냥 나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맞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그랬지만 과거에는 어땠던지 미래에는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들을 견제해봤자 아무 소용도 아무 의미도 없다. 왜냐, 선생님도 처음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고 잘 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그 뒤의 상황이 나에게 더 타격이 크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 작년과 다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미드에서는 정말 상상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중에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내연녀가 혼외자를 출산할 때 도와주는 장면. 그래, 내연녀랑도 친구 하는 세상에 여사친이라고 친구 못할까? 하다가도 너무나도 한국적인 내 안의 유교 걸이 뒷목 잡고 쓰러진다.
다자간 연애건 열린 관계이건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있지 않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게 인간관계 양상에서 진화의 끝판왕인 걸까? 아니면 무질서한 야생으로 돌아가는 동물의 왕국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