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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26. 2022

나만의 봄날을 되찾기

트라우마의 서술을 다시 쓰기




4월을 다시 쓰기.


매년 돌아오는 4월을 다시 쓰기. 나를 위해, 내년의 4월을 위해, 미래의 4월을 위해, 나의 4월을 위해!


나는 사실 그 기억 자체를 사실 아예 묻어버리고 모르는 척했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맴돌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문득문득 생각나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울컥하는 마음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갔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여전히 용기 없는 나는 그 시간을 그 장소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매년 4월 한국으로 갔다. 매일매일 외출하고 친구 만나고 쇼핑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4월은 연말정산 기간이라 텍스 리턴까지 해야 했기에 4월 달의 지출이 어마 무시하게 나갔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있었으면 얼마나 더 무너질지 몰랐으니까.


한국에 가면 그 속도에 정신을 못 차린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걷는다. 그렇게 눈 감으면 코 베일까, 서울 탐방 온 시골쥐처럼, 문명을 처음 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정신없이 있으면 4월이 훌쩍 지나간다.


작년에는 한국에서 피부과 레이저를 세트로 맞고 올해는 쌍수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렇게 4월마다 다시 태어나며 봄을 다시 썼다. 나는 4월을 한국의 봄으로 기억할 것이다. 벚꽃, 따뜻한 공기, 꽃샘추위, 봄비, 바쁜 지하철과 버스, 매년 갈 때마다 좋아지는 시설들, 그리고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도시 풍경. 이제 그 기억으로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하와이를 다시 쓰기.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하나도 안 좋아하는 하와이. 내가 여기 다시는 안 온다 내가 하와이에 오면 성을 간다 하면서 뒤도 안 보고 쿨하게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하와이. 성까지 갈면서 다시 돌아온 애증의 하와이. 떠나지 못해 안달 난 하와이. 네가 가라 하와이.


나는 그대로 인데 인생이 심심해진 이유는 사실 내가 심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데. 하와이의 자연경관도, 해변가도, 맑은 공기도, 해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상도 모두 내가 무뎌져버렸다. 이곳은 변화가 크지 않다. 느릿느릿 조금씩 조금씩 아주 미묘하게 바뀌는 공간과, 여유롭고 평온한 사람들, 다름과 불편함도 기꺼이 견뎌내는 넓은 마음들.


그 안에서 뾰쪽뾰족하게 모난 내가 점점 부드러워 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고슴도치 가시가 털로 변해서 부들부들해지는 그 날까지!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에서도 특별함을 만들어내고 긍정적인 면을 기억하고,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로 선택할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잠깐의 휴식과 안정을 위해 제주도 한 달 살기 하듯이 하와이에 반년 살기 체험하러 왔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괴롭더라도 하와이를 좋은 기억으로 덧칠시키기. 하와이를 떠나고 나서 과거를 미화해서 하와이를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와이에 있는 이 순간에 하와이의 마지막 몇 달을 강제 미화해버리기가 목표이다. 좋은 것만 보기 좋은 것만 생각하기 좋은 것만 기억하기.


하와이 지박령 되기 직전.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도 지나간다.




우리의 기억은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로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의 일들을 다시 추억해보며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 내가 직접 선택할 것이다. 가장 슬픈 일이 있었더라도 그 뒤의 행복한 순간으로 인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처럼. 내가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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