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Oct 22. 2021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키우기

"나한테 아무리 스트레스 줘봐라 내가 떡볶이로 다 풀지" 라는 문장이 많이 보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라는 제목의 책도 있고, 떡볶이는 확실히 한국인의 소울푸드 같다.


나도 지난 주말부터 떡볶이에 맥주에 삼겹살에 소고기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동안 요리하기 어려운 한국음식들로 폭식을 했고 결국 탈이 나 병가까지 내고 쉬었다. 그리고 나서 불현듯 떠오른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두거나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언젠가는 폭팔할 수도 있으니까 그때그때 풀면서 내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단순한 문장에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린 게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스트레스 주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려 버리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규정지은 게 아닐까?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줘봤자 내가 안받을 수도 있는 건강한 정신상태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떤 사건이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과거에 나의 어떤 경험이 나의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시키는지, 내가 그런 일들을 극복하고 싶은지 아닌지, 내가 앞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싶은지 아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의연하게 넘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을 환경에 처해지면 나의 멘탈을 어떻게 잡을까,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그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ㄲ, 한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스트레스 받아 끙끙 앓는 것보다 떡볶이로라도 푸는게 좋다. 스트레스 -> 떡볶이 라는 전제조건이 아니라 아예 스트레스라는 인풋을 없애버리면 떡볶이도 더 음미하면서 더 집중해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과식도 없이 건강하게 오히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스트레스 주는 관계에 고착되어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그 관계를 이어갈 지 말 지는 나의 선택임을 인지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 상대는 스트레스 제공자 나는 스트레스 수혜자라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지, 아니면 그 관계 밖으로 나오고 싶은지,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은지, 아예 없는 관계로 무시해버리고 싶은지, 관계를 개선해나가고 싶은지, 아니면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행동하고 싶은지 아닌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등등 그 관계 밖의 세계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알고 있는것괴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크니까.


상대가 무슨 짓을 해도 내 멘탈을 굳건히 잡아서 전혀 흔들리지 않기. 그가 화를 낸다거나 시비거는 말투나 비꼬는 말투를 쓴다거나 짜증을 낸다거나 해도 내 좋은 기분을 망치게 두지 않기.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나를 유지하기. 저 사람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냥 저 사람의 선택인 것을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주기. 저 사람은 지금 저게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거구나. 그냥 저렇게 밖에 못하는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더 나은 방법을 모르는구나.


물론 말이 쉽다. 그게 안되니까 떡볶이로라도 풀어야지.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주체적으로 직접 해내는 연습을 할 것이다. 누군가가 정상적으로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해서, 누군가가 남에게 피해주고 손해입히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잘잘못을 따져 그를 원망하고 있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기. 내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내 머리에 총 겨누고 협박받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했는데 결혼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한참을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살려면 죽지 않으려면 내 살길 내가 찾아가야 했다. 남편의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고 특히 코로나 시기에 정말 재밌는 것도 즐거운 일도 없었다 집안에서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살얼음판이어서 이리저리 밖으로 나갔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어딘가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행복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 웃고 떠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와 저 사람들 정말 좋아보인다 부럽다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세상은 어두웠지만 밝은 사람들 곁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빛이 들어올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내가 찾아다닌 곳은 카페알바, 스냅촬영 알바, 동물보호소 봉사활동, 동물원 행사 보조, 그리고 어린이 센터 봉사활동 등등이었다. 그 중 딱 한 곳 합격한 어린이 센터!


초등학생 1200명의 양기라면 사탄도 기가 질릴 것이라며 공동묘지였던 곳에 음기를 누르려고 일부러 초등학교를 지었다는 썰도 있는데 (실제는 해당 지역에 거주 시설을 놓으면 말이 많아서 학교를 주로 지었다고 함) 이 곳도 원래는 소각장이었다가 어린이 센터로 바뀌었다고 한다. ㅋㅋㅋ 매일매일 아이들의 소리지르기 뛰어다니기 장난감 던지기 를 보면 뭔가 살아있는 활기찬 느낌이 든다 그렇게 두시간 기가 빨려서 봉사활동 하고 집에오면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한 집안에서도 평화를 찾게 된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되게 부러워했는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나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많고 예쁘고 성격좋고 똑똑하기까지 한 친구가 되게 좋아보였다. 모난 나와는 달리 둥글게둥글게 참 마음이 넓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다니며 그 친구가 하자는 건 다했다. 어딜 가더라도 누굴 만나더라도 단점부터 보이는 나와는 달리 그 친구가 "좋다아이가" 딱 한마디 해주면 진짜 다 좋아보였다. 단점을 보는 건 본능이지만 장점을 보는 건 재능이라던데. 그 친구는 정말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장점을 볼 줄 아는 그 친구가 정말 대단하고 부럽다. 배우고 싶다.


암울의 구렁텅이에서 본 세상과 땅 위로 나를 끌어올려 보는 세상과 긍정적인 마음 가볍고 따뜻한 마음에 날아갈 것 만 같은 높이에서 보는 세상과 내가 본 세상들이 그렇게 다르다. 나 스스로도 물론 충분히 노력해야겠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를 자꾸 내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세상과 단절되어 나만의 세상에 갖혀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뭐하고 사나 요새는 뭐가 유행인가 뭐 재밌는 거 없나 기웃기웃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좋은 기운을 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의 그릇에 긍정적인 기운을 가득 담다 보면 물이 넘치도록 채워내다 보면 나도 정화될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들과도 화해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주고 도움이 되어주고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내 친구같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전 02화 나에게 있는 큰 힘을 인정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