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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r 13. 2024

제4관 보험 사기 - 10

  명석이 눈을 뜬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명석은 온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그저 고요한 가운데 간헐적으로 들리는 의료기기들의 삑삑거리는 소리만이 병원임을 알려주었다. 

  잠시 후, 명석이 눈을 떴다는 말에 의사가 황급히 달려와서 명석을 살폈다. 눈에 라이트를 비추고 이름 등의 신상을 물으며 상태를 파악했다. 명석의 정신이 꽤 돌아온 것임을 확인한 의사는 명석의 상태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 환자분? 이제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셨으니까, 환자분께 설명을 해드릴게요. 환자분은 엇그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응급실로 실려오셨어요. 얼굴은 찰과상 정도에 그쳤지만, 오른팔은 복합 골절로 인해 철심을 박아야 했고, 복부 파열로 내출혈이 일어나서 바로 개복 수술을 시행해야 했구요. 그리고…"

  의사는 명석의 눈을 피해 잠시 다른곳을 보며 쓰읍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다시 명석을 바라보며 몇번 입맛을 다시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음… 그… 왼쪽다리는 사고로 절단되었는데, 잘린 부분이 워낙 거친데다가 감염이 되어있던 상태여서 봉합은 불가능했고, 부득이 절단 수술을 시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사의 말에 명석은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이 말라붙은데다가 힘도 들어가지 않아, 겨우 신음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런 명석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으나, 그런다 한들 명석에게는 아무런 위로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느정도 회복된 명석은 일반 병실로 옮겼다. 아직 밥을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물은 조금씩 마실 수 있었고, 작게나마 목소리도 나오는 상태였다.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는 없었기에 소변줄을 꼽은 상태로 누워서 그저 지금 이 현실이 그냥 질나쁜 꿈이길 바라며 누워있었다.  

  오후가 되자 명석이 눈을 떴단 소식을 들은 형사들이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몸은 좀 어떠신가요?"

  거구의 형사 둘은 척 보기에도 힘 꽤나 쓰게 생긴 체구였다. 한명은 그래도 아직 젊고 곱상한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윗사람으로 보이는 형사는 험악하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있었다. 어쩌다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지만 볼에는 파인 상처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사고 전의 기억은 다 있으신가요?"

  명석은 계속해서 힘겹게 소리르 내었다.

  "…어느정도는요."

  형사는 휴대폰을 보며 명석에게 몇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 일단 음주운전을 하셨으니까 형사처벌을 피하시지 못할겁니다. 사고 경위를 간략하게 들려드리자면, 음주운전을 하시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두명을 치고 지나가던 트럭이랑 박으셨네요. 두명 중 한명은 즉사했고, 나머지 한명은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죽은 사람은 여고생, 혼수상태인 사람은 이제 막 군대를 전역한 대학생이라고 하네요. 트럭은 다행히 별다른 타격이 없었어서, 사람은 멀쩡하고 수리비만 좀 나오게 생겼네요."

  "사람을… 치었다구요?"

  "기억이 안나시나보네…. 네. 사람을 쳤어요. 사람을. 형사처벌은 피하실 수 없을겁니다. 감형받으시려면 최소한 피해자 유족들하고 합의라도 보셔야 할겁니다."

  명석은 또 돈이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장 다리를 하나 잃고 장애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얼마 남지 않은 피같은 돈을 또 합의금으로 내야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죽고싶어질 정도였다.

  "알단은 몸 잘 추스리시고, 퇴원하시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형사 둘은 병실을 나서며 대화를 나눴다. 둘 다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대화 소리가 병실 문을 뚫고 문쪽 병상에 누워있는 명석에게 들렸다.

  "술쳐먹고 운전해서 사람을 쳐? 저런 것들은 다 때려죽여도 싸."

  "그래도 다리 하나 없는 병신이 됐잖아요."

  "고작 그정도로 되겠어? 유족들은 찢어죽여도 시원찮을텐데."


  형사들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정이 병문안을 왔다.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명석을 본 연정은 순간 놀라서 머뭇거렸으나, 이내 진정하고 명석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좀 어때?"

  "…"

  명석은 연정을 보자 잠깐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지금은 본인의 몸을 챙기고 교통사고 수습을 하는것이 먼저였기도 하거니와 이미 잘나갔던 자신의 모습을 다 잃어버리고 자존심이 박살난 상태였기 때문에 화가 올라오다가도 가라앉았다. 

  "얘기는 들었어. 술먹고 운전했다며."

  "잔소리 할거면 꺼져."

  명석은 없는 힘을 쥐어자내어 거칠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있지 않았고, 눈빛은 공허했다. 그래서인지 예전과 달리 연정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욕 뱉을 힘은 아직 있나보네."

  명석은 반쯤 풀린 눈으로 연정을 쳐다보았다. 연정이 어떤이유에서 왔던간에 그저 쉬고싶을 뿐이었다.

  "당신 상태가 별로 안좋아보이니까 용건만 말할게. 마지막으로 제안하는거야. 연우 양육권이랑 재산 일부만 넘겨주고 합의이혼하자. 양육비를 달라곤 안할게.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당신 돈 더 뜯을 생각도 없어. 그저 나랑 연우가 새출발 할 정도만 받고 끝내고싶어. 당신도 많이 힘들거고."

  연정은 이제는 사라진 명석의 왼쪽 다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양육권은… 안돼…."

  그 와중에도 명석은 어떻게든 양육권만은 놓지 않으려 했다.

  "그건 나도 양보할 수 없어. 이미 최대한 양보한거야. 당신처럼 폭력적인 사람에게 연우를 어떻게 맡겨. 그리고 얘기 다들었어. 회사에서도 쫓겨났다며. 거기에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까지 내고 다리 하나는 잃고. 소송으로 가면 무조건 내가 이길거고, 양육비도 줘야할거야. 잘 생각해."

  "…"

  명석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연우에게 집착해? 당신 평소에 연우는 거들떠도 안봤잖아. 나한테 하는것처럼 막말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만 않았지, 관심도 없었잖아."

  "…"

  "하다못해 연우가 당신이라도 닮았으면 모를까, 연우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만 닮았잖아 당신은 하나도 안닮았고. 그런 연우를 키우면 더 화만 나지 않겠어? 사춘기라도 오면 어떡하려고?"

  명석은 더이상 반박할 힘도 없었다. 그저 얼른 몸을 추스리고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명석을 본 연정이 말했다.

  "당신 피곤해보이니까 이제 갈게."

  연정은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당신 음주운전으로 사고낸거라 아마 합의금을 꽤 많이 물어줘야할거라고 들었어. 그리고 나에게도 재산 분할해줘야 할거고.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당신 이름으로 보험 들어놓은게 몇개 있어. 치료비는 그걸로 될거야. 장애 등급 받으면 보상금도 나오긴 할거고. 당신 입장에서 얼마 되진 않겠지만."

  연정은 뒤를 돌아 병실문을 나서며 말했다.

  "보험료, 이번달까지는 내가 내지만, 다음달부터는 당신이 직접 내."

  "…"

  "아, 하나더. 합의 이혼 서류 다시 보낼테니까 작성해서 보내줘 그러면 소송은 취하해줄게."

  그렇게 연정은 병실을 떠나갔고, 홀로 병실에 남겨진 명석은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자괴감과 수치심에 참담한 기분만 들었다.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입밖으로 속시원히 내뱉을수는 없었다. 그런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명석은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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