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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r 27. 2024

제6관 사랑 보험 - 6

  "이제 3일 뒤면 방학이네."

  "아, 그러네. 나는 휴학생이라 그런지 그런 감각이 없었네."

  "너 시험은 언제야?"

  "1월에 원서접수하고 3월에 시험이야."

  혜연의 질문에 종석은 살짝 초조한 듯 보였다. 

  "아, 그럼 진짜 얼마 안 남았잖아. 공부는 잘 돼가?"

  "뭐… 그럭저럭?"

  종석의 대답에 혜연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너 그럼 지금 한창 막판 스퍼트 올려야 할 때 아냐?"

  "아니 시험은 1년에 걸쳐서 진행되니까…"

  "그렇다고 해도 1차 시험을 붙어야 2차랑 면접을 갈 거 아냐. 1차를 떨어지면 말짱 꽝인데."

  "…"

  "나 이제 방학이니까, 도서관 그만 올게. 나 있으면 너 공부하는데 방해될 것 같다. 나랑 쉬는 시간도 아껴서 공부하는 게 맞는 것 같아."

  혜연의 단호한 말에 종석은 크게 당황했다. 종석도 혜연의 말대로 지금은 아주 조금의 시간이라도 아껴서 공부에 한껏 투자해야 할 때임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울방학까지 시작되기 때문에 혜연의 말에 동의하면 최소 두 달 이상은 혜연과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잠깐의 침묵 후에 종석이 입을 열었다.

  "아냐, 나는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네 공부가 먼저지 뭘. 나는 시험을 앞둔 것도 아니니까 굳이 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돼."

  혜연의 말에 종석은 전략을 살짝 수정했다.

  "사람이 공부만 하루종일 하면 오히려 효율이 좋지 않다 그랬어. 어느 정도는 머리를 쉬어줘야 오히려 능률이 오른다고 하더라고."

  "… 그래?"

  "응."

  "그래도 내가 안 오는 게 낫지 않아? 너 쉬어야 하는데 나랑 얘기하고 그러면 오히려 별로 못 쉴 것 같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종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방학 때도 네가 계속 도서관에 왔으면 좋겠어."

  종석의 말에 혜연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왜?"

  종석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귀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입술을 앙다물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

  "나 너 좋아해. 도서관에서 계속 봤으면 좋겠어."

  말을 마친 종석은 귀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석은 혜연을 쳐다보지 못했고, 혜연은 그런 종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다는 게 무슨 말이야?"

  혜연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고, 혜연의 질문에 종석은 더 당황하기 시작하며 손톱을 깨물었다. 혜연은 그런 종석의 모습이 귀여워서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해 봐 그게 무슨 말이냐고. 좋은 친구라는 얘기야?"

  혜연의 놀림에 종석은 황급히 고개를 들며 혜연을 바라보았다. 

  "아냐, 여, 여자로서 좋다는 말이었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혜연의 모습에 종석의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져만 갔다. 그런 종석에게 혜연이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종석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 나랑 사귀어주면 좋겠어."

  "그래!"

  혜연은 아주 밝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런 혜연의 대답에 종석은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

  "그래, 사귀자구. 나도 너 좋아."

  

  그날부터 혜연과 종석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시작된 이후에도 혜연은 계속해서 학교 도서관에 나갔다. 집에서는 방학인데도 계속 학교에 나가는 혜연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방학 때도 취업준비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혜연의 말 한마디에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워낙 공부를 열심히 했던 터라, 혜연의 말을 쉽사리 믿는 듯했다. 

  혜연과 종석은 비록 연인이 되었지만, 종석은 시험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데이트를 하지는 않고 이전과 똑같이 시간을 보냈다. 같이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 시간에 같이 휴게실에서 커피와 음료를 마시며 잠시 얘기를 나눴다. 여전히 종석은 저녁을 먹지 않았기에 혜연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거나 가끔은 종석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한 선에서 간식거리를 사다 주었다. 다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점심을 먹으러 편의점으로 이동할 때와 휴게실에서 얘기를 나눌 때 서로 가까이 붙어서 손을 꼭 잡고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데이트도 하지 않으며 어느샌가 훌쩍 두 달이 지나갔다. 종석은 당연히 설 연휴에도 학교 도서관에 나와서 계속 공부에 전념했고, 혜연도 설 당일에 차례를 지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도서관으로 향했다. 연휴니까 가까운 근교라도 놀러 가자는 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좀 미안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종석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종석에게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면 옆에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도 이유였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종석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혜연은 그런 종석을 옆에서 계속 위로해 주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만큼 시험을 잘 볼 것이며 모의고사를 봐도 늘 가뿐하게 합격선을 넘었기 때문에 반드시 붙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북돋았다. 또한 종석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시험 2주 전부터는 일부러라도 끌고 나가서 점심과 저녁을 든든하게 먹였다. 종석은 사귀기 전과 마찬가지로 한사코 거절했으나, 이번에는 혜연도 지지 않았다. 여자친구라면 당연한 뒷바라지라며 우겨댔고, 정 부담스러우면 합격한 다음에 과분할 정도로 갚아달라는 주장을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종석은 어떻게든 1차 시험을 치러내었고, 합격 발표까지 한 달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종석은 혜연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 한 달만큼은 다른 연인들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가자고 했으나, 종석의 사정을 알고 있는 혜연은 1차 시험을 붙었다는 가정하에 2차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말로 종석을 설득했다. 이번에는 종석도 절대로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며 강하게 나갔으나, 어차피 뭘 하자한들 혜연이 거부하면 할 수 없을 것이기에 결국에는 혜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혜연도 4학년이 되었으니 어차피 취업을 위한 직무적성검사 준비도 해야 했고, 가능하면 다른 자격증들을 준비하는 게 좋았기에 도서관에 계속해서 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도서관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이미 이 시점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관계였지만, 혜연은 동명과의 연애를 통해 차라리 이런 연애가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고 멋있는 남자친구보다는 꾸미지도 못하고 숙맥 같고 센스는 떨어질지언정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종석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동명이랑 사귈 때에는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만 볼 수 있었고, 항상 다른 여자들이 접근하지는 않을까, 바람을 피우진 않을까 전전긍긍했어야 했는데, 종석과의 연애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매우 평온했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거나 데이트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만족할 수 있었다. 

  1차 시험으로부터 1개월 뒤, 시험 결과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종석은 1차 시험에 합격했고 곧 2차 시험을 보아야 했다. 혜연은 자신의 일처럼 크게 기뻐하며 역시나 붙을 줄 알았었고 1차 시험 끝난 직후에 2차 시험 준비를 바로 시작한 게 옳은 선택이었다며 종석을 격려했고, 종석 또한 혜연의 선견지명이 대단했다며 함께 기뻐했다. 그렇게 다시 종석은 시험준비에 들어갔고, 혜연은 취업을 위해 하계 인턴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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