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의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일정을 벼리와 의논하여 가 볼만한 곳을 정하여 메모를 하였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여행자 하루도 어떻게 그려질지 예상이 안 된다.
특히 우리처럼 자유여행을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일반기차 무료 탑승의 가능여부가 나라마다 달랐다.
리스본은 일반기차 무료탑승!
횡재수를 만난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역무원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 그냥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표도 없이??
유레일티켓에 포함된 가격인데 횡재수는 무슨?
그래도 공짜 같은 느낌!
역무원이 우리를 열려있는 개찰구로 안내하면서 누가 표 검사를 하면 휴대폰 속의 유레일패스를 보여 주라는 것이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차를 탔다.
어제 산 기차표가 유레일패스로 인해서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역에 내려 물으러 갔다.
시원스레 보이는 남녀가 개찰구 앞에 서 있었다.
반환에 대하여 물어보니 우리가 산 기차표는 1회용이란다.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에도 가보자고 했다.
필요하면 충전을 하여 사용하는 표라 반환금은 없다고 했다.
20분 이상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두 젊은 남녀가 어찌나 친절한지?
자기 일처럼 따라다니며 해결해 주었다.
만족스러워 활짝 웃으니 그들도 우리 못지않게 좋아하며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가 약간 드러난 큰 입이 그렇게 예쁠 수가...
앉은 역무원과 그들과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자기들 폰으로도 찍자고 했다.
외국인을 도와준 보람을 기념사진으로 남기고 싶은가 보다.
"gracias(그라시아스)"
스페인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두 나라의 언어가 소통되며 한마음의 물결이 일렁인다.
다 같이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첫 번째 목적지인 28번 트램을 타기 위하여 시내로 갔다.
걸어서 종점에 도착하니 가장 인기 있는 28번은 대기자의 줄이 엄청 길었다.
약 100m쯤으로 보인다
다른 트램은 바로 탑승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28번 타야지!!
대기줄에 서 있는데 입석으로 갈 사람은 바로 탑승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줄에서 일등으로 탈출하여 트램에 올랐다.
이 트램이 누비며 가는 길에 유명 관광지가 많이 있어 인기가 있다고 했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서양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입석은 잘 안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트램은 리스본의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 헤집고 나갔다.
길은 굽이 굽이 이어졌고 예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한 시간을 더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볼거리가 많다.
여기도 쏙, 저기도 쏙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트램에 몸을 싣고 내린 곳이 산타루치아전망대다.
리스본의 타 구스강이 강렬한 태양아래 시원하게 보였다.
한낮의 여유를 누리면서 화가들의 그림도 감상했다.
"그림을 찍어 수채화선생님께 보내자."는 벼리.
"안 된다. 파는 그림을 찍는 게 아니다."는 해리.
상인이 그림을 사수하듯 우리의 행동을 주시해서 빈 틈이 없다.
포기하고 걸어서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상 빈센트 드 포라 수도원이 있었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마음이 평온하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짧은 명상도 해봤다.
생활화하려는 명상을 여기서 하니 집중이 잘 되는 건 다 이유가 있겠지.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산투 안토니오성당을 보는 순간 세례명이 같은 분이 생각났다.
마음으로 기도하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분의 건강을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될 런지?
짧은 글과 사진을 보냈더니 "성인과 우리의 기도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는 답이 날아왔다.
좋은 기운이 캡슐에 쌓여 멀리멀리 날아가길 바라본다.
바로 위에 있는 리스본 대성당도 방문했다.
성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천주교인들이 여길 온다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았다.
트램을 타고 내려오면 전망대가 있는 개선문쪽 길에 노천레스토랑이 대형파라솔을 펼쳐 그늘을 드리우고 오밀조밀하게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망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흘깃거리며 걷는데 벼리가 "맥주 한잔 하지요."
'으이, 이 반가운 소리!'
이후의 시간은 만사 오케이.
기분이 업 되었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야채와 밥이 어우러진 메뉴와 함께 맥주도 한잔 쭈욱~~
"캬아, 시원하고 맛있는 거."
노천레스토랑에 앉아 마시고 먹으며 즐기는 것이 서양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30여 년 전에 유럽에 와서 보았던 이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희귀한 삶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이들과 섞여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낯설지 않다.
"아스타 루에고~~"
안녕 이라는 헤어질 때 인사다.
고풍스러운 상가가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처남에게 온 메시지가 떠올랐다.
리스본에서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단다.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을 찾아서 먹어보라는 것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파두'를 들으며 식사하기다.
리스본에서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를 찾아 나서 볼까?
노란색의 동그란 얼굴이 가게마다 빠지지 않고 좋은 자리에 앉아 있다.
이름난 가게는 멀리 있어서 갈 수 없고 여기에서 줄이 긴 가게를 찾으면 성공이다.
여기가 유명한 집이려니...
에그타르트를 들고 임무 수행을 위한 사진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찍었다.
평소에는 잘 안 먹는데 리스본의 맛은 좋았다.
입 안에 감도는 맛을 음미하는데 벼리가 옷가게에 들어간다.
반바지 한벌 세트가 꼭 맘에 든다며 살까 말까 망설인다.
후보에 올랐던 여름 바지와 그에 어울리는 7부 옷을 안 가져와서 '난 단벌신사다. 아니 단벌숙녀다.' 라며 안타까워했었다.
"그렇담 무조건 사야지."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대어보더니 내려놓는다.
짐 때문에 못 산단다.
내가 다 들고 간다고 사라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눈에 아롱 그려 나중에 후회할걸요. 사지요."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온 후 주변을 걷고 또 걷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잠깐, 옷 살래요."
바삐 그리고 기쁘게 가게로 향했는데 윗도리 사이즈가 없었다.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어서 차라리 낫단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통패스 이틀권으로 탑승이 가능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산 언덕 주민들을 위하여 만든 것 같은데 지금은 관광용이 되어 버렸다.
기다린 끝에 타고 올라가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통일감이 있는 갈색 계통의 지붕들이 어우러져 리스본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유럽의 멋이 물씬 풍긴다.
내려오는 길은 마을로 이어져 있어 경치를 보려면 굳이 엘리베이터를 안타도 되는 거였다.
알았으면 30여분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리 높지 않고 걷기에 좋아 5분밖에 안 걸리고요, 입장권도 절약되고요, 다리 근육도 생겨요.
그럼 일석 몇 조지요?
이건 여행자를 위한 꿀팁이랍니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다.
그다음으로 페트라 4세 광장과 실내가 고대풍의 멋이 풍겨 나는 상도밍고성당을 찾았다.
오늘은 트램과 성당투어데이~~
근처를 배회하며 구경을 마치고 타임아웃마켓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장에 가 보았다.
굉장히 넓은 실내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시끌벅적'
여기에 온 기념으로 작은 생맥주도 한잔.
벼리가 맥주를 못 마시게 한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했는데 그럼 안 되겠다.
가끔씩 분위기에 맞춰 기분 내게 한다.
오늘만 해도 두 잔, 어떤 때는 한 잔과 한 캔과 한 병...
"투정한 것 미안, 쏘리, 땡큐" 벼리
마지막 코스는 두 번째 임무수행인 리스본의 '파두' 공연 보기다.
위로 올라 옆으로 가기로 반복하며 레스토랑을 어렵게 찾았는데 예약이 다 차서 안 된다고 했다.
'이런, 허망...'
바다를 향한 그리움의 노래 '파두'
운명이라는 뜻을 지닌 포르투갈 서민의 삶을 노래한 민요다.
12현의 기타와 진한 그리움이 담긴 절절한 감성으로 부르는 노래다.
편히 즐기며 듣고 싶었는데...
다른 곳으로 찾아가니 거긴 안 한다고 했다.
처음 갔던 곳에 다시 가던 중 노천카페에서 4인조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연주에 끌려가다 말고 앉아서 한참 구경했다.
벼리의 작은 움직임이 음악을 타고 간들간들 흘러간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어떨지 상상하며 '파두' 공연 레스토랑으로 다시 가보니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시 지나자 음악이 새어 나왔다.
밖에서 소리라도 들으려고 레스토랑 외벽 좁다란 길에 붙어 섰다.
무대도 없는 레스토랑 문 앞의 아주 좁은 공간에서 3명이 기타 연주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노래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몇 곡을 들었는데 큰 울림으로 와닿지 않았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우리 신랑보다 못 부르네." 내 노래가 훨씬 듣기 좋다고 벼리가 말했다.
나의 영원한 펜이 있어 기분 좋은 밤이다.
숙소 가는 기차 안에서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그 영화 속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 남, 여 주인공이 각자 삶의 터전으로 향하여 이별했던 장소이기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내일 오전에 시간이 되면 아니 시간을 만들어서 꼭 가봐야겠다.
리스본을 떠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