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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24. 2024

【소설】그랜드바자르 #19. 시장의 목소리

 18. 

  탈리아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랜드 바자르의 중앙광장이었다. 있다고만 들었던 그곳이 실제로 있었다.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의상을 입은 그랜드 바자르의 군중들. 정중앙에 거꾸로 박힌 거대한 원뿔 나팔. 그리고 울리는 탈리아의 노랫소리. 그 소리에 사람들은 넋을 잃은 듯 원뿔 나팔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손이 닿을만큼 가까워질때면 사람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얇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들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거미만을 바라봤다. 베야도 그 무리에 동참했다. 

 군중들은 원뿔 나팔을 중심으로 끝없이 몰려들었다. 탈리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베야는 그 소리가 좋았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듣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현기증이 났다. 베야는 몇번이나 무릎을 꿇었다. 베야의 뒤를 따라오던 람바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탈리아의 노래가 맘추었다. 


 “영원한 노래는 없다는 듯.”


 혹은 낮은 이들에게 들려줄 유희는 이것이 전부라는 듯 탈리아는 노래를 멈추었다. 그러자 광장에 빼곡히 모여든 이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해방이라 불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베야는 뒤로 내달리는 사람들의 발에 치여 몇 번이고 몸을 휘청였다. 겨우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건 람바 할아버지의 등 때문이었다. 넓고 거대한 등. 그것이 베야를 지켜주었다. 


 "또 이런 곳에 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람바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베야는 몸을 일으켰다.


 "엄마래요. 할아버지." 


 람바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베야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게 다 뭐냐. 세상에 그런 것은 없어."


 베야는 손을 뿌리쳤다. 


 "왜 없어요? 저기 있는데." 


 베야가 가리킨 곳에는 원뿔 나팔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 여인이 탈리아의 귀에 닿는 거대한 나팔에 소리치고 있었다. 여인은 그 앞에서 기도하듯 무릎을 꿇은 채 울기 시작했다. 거대한 원뿔 나팔 안으로 그녀의 침과 눈물이 흘렀다. 그것 역시 탈리아의 귀에 닿으리라. 베야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람바 할아버지는 그런 베야의 걸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가까이 서 본 여인의 손에는 힘줄이 잔뜩 솟아 있었다. 건조하게 마른 손톱은 하나 둘 조각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팔에는 아무런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인은 뭔가 계속 입을 벌리고 말을 하는데 베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원뿔 나팔. 아니, 탈리아의 귀가 여인의 목소리를 한 호흡에 빨아들인 것 같았다. 베야는 웅크린 여인의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입을 벌려 말을 건넸다. 또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혀와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질 않았다. 베야는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숨만 터져 나왔다. 베야가 걸음을 멈췄다. 여인의 바로 뒤였다. 베야는 왼손을 여인의 어깨에 올렸다. 가죽은 애당초 없었다는 듯 어깨뼈가 느껴졌다. 


 "베야."


 베야는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엄마...”


 베야가 말했다. 들리지 않았다. 여인의 흐느낌이 멈추었다. 베야는 여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옆으로 발을 떼었다. 그 순간, 여인의 팔이 베야의 걸음을 막았다. 베야는 멈춰 섰다. 여인은 웅크린 몸을 펴며 천천히 나팔에서 입을 떼었다. 광장에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돔으로 된 천장과 두꺼운 벽, 그리고 거대한 문으로 막힌 광장 안에 바람이 닿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바람이 불었다. 그건 진실이었다. 바람에 여인의 옷자락이 날렸다. 그건 증거였다. 여인은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자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노랫소리가 터지듯 올라왔다. 탈리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시장의 목소리였다. 그 아찔한 시간의 소리에 베야는 현기증이 올라 무릎을 꿇었다.


 “베야, 나의 베야.”


 여인의 목소리였다. 


 "왜 여기에 왔니?"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었다. 여인의 흔들리던 옷자락도 가라 앉았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이 엄마는 돈을 받을 수 없는 걸?"

 여인의 몸을 감싸던 비단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그러자 언제 따라왔는지 짓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팔겠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짓은 그것을 집어 갔다. 그래도 되는 곳이었다. 


 그랜드 바자르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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