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마음을 열어야 할까

by Quat


어디까지. 내가 처음 본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어디까지 친해져야 하며, 어디까지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지 말이다. 사람마다 낯을 가리는 정도도, 친해지는 속도도 다르기에 이 '어디'의 위치는 저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나의 '어디까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새로운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내향적인 것과 내성적인 건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경우를 떠올려보면, '낯을 가린다'라는 표현보다는 '경계심이 강하다'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정보 수집 욕구가 자연스럽게 속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경계심 또한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사람에겐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쉬는 날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보통 집에서 쉬는 편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해보자. 이 대답을 통해 상대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라는 정보도 확인할 수 있으며, 나 또한 주말엔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기에 비슷한 성향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할 땐 조금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초면인 사람을 만날 때 만능인 것은 아니다. 질문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확률을 높여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상대가 나보다 훨씬 경계심이 강한 사람이거나, 내게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질문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 "뭐.. 그냥 집에 있죠"라며 둘러댈 수도 있고, 사실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상대의 성향이나 나에 대한 호감도에 따라 수박 겉핥기 식의 대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반대의 처지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드러낸 자기 자신을 공격한 타인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이 세상엔 누군가의 약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평소보다 훨씬 강해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른바 '강약약강'이라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자신보다 서열이 높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선 스스로 고개를 숙이지만,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는 사람들 앞에선 내면에 숨겨둔 폭력성을 거침없이 꺼내 든다.



내가 나의 어떤 부분을 말하며 스스로를 '까는 것'과, 타인이 내 어떤 부분을 말하며 '까내리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다. 누군가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말했다는 이유로, '강약약강'에 속한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이 자기 집으로 저런 말을 했으니 내가 그걸 가지도 뭐라고 해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 절망적인 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조차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대졸이 넘쳐나는 고학력 시대에, 똑똑한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똑똑한데 빌어먹게 멍청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과 재테크 분야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은 사람이 길가에 수시로 가래침을 뱉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며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사람이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처음 들어보는 욕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들은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 둘 중 어떤 부류에 집어넣어야 할까.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더 선호한다. 고학력의 스펙, 전문적인 지식보다 타고난 다정함과 사려 깊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지식은 노력으로 쌓을 수 있지만, 지혜로움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 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눈빛과 행동에도 집중하는 편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잘난 척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씨는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있는 동안 타인의 순간적인 행동들은 상대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술에 취한 모습, 실수로 누군가 음료를 엎질렀을 때, 자신이 가진 무언가가 타인의 실수로 손상되었을 때야말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지혜로운 이들을 대함에 있어, 나의 '어디까지'는 상한선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그들에게 잘해준다고 한들 결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위해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 지혜로움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지혜롭기보단 똑똑해야 하며, 다정함보다는 냉정함이 요구된다. 날이 갈수록 정보는 넘처나고 사람들의 지식수준은 높아져가는데, 정작 과거 그 어떤 때보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가 많아지고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건 왜일까.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5를 얻기 위해, 보이지 않는 50을 버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당신의 '어디까지'는 어떤가.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마음을 여는가. 누군가에게 받는 배려만큼 당신 또한 그것을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 또한 좋은 사람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말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면, 현재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또한 좋은 사람인가. 만약 그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째서 당신은 그들과 만나고 있는가.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마음을 주는 것도 어려워진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어쨌든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기고 먼저 다가가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것조차 확인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한 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최소 수십 번의 상처를 받을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 상처를 받으면서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마 이 질문에 대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답변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라고 말이다. 당신이 지금껏 느낀 아픔을 더한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그런 사람을 만나길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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