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얼 하든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책을 읽어도 소설보단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어야만 하고, 사람을 만날 때도 배울 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서'나 '영화 보기'는 취미라 말하기엔 식상한 것처럼 여겨진다. 남들이 잘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비로소 그것에 대해 당당히 말할 자격이 생기는 듯하다. 정말로 그게 맞는 걸까.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여전히 덥긴 하지만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게 느껴진다. 이제 곧 가을이 온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의 의미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1년마다 계절은 바뀌고, 언제쯤 계절이 바뀌는지도 잘 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이 다가올 때면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겨울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를 좋아한다.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면서 들어와 보일러를 틀고 점차 몸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러다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 순간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도 좋다. 이런 순간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것들을 좋아한다. 그런 순간들이 한낱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도, 내 하루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겨울을 좋아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내게 남는 건 없지만, 여전히 나는 그 해의 겨울을 즐겁게 기다리는 중이다.
'무얼 하든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때로는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관계에 힘을 들이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가도 '손해를 입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때문에 망설이다 포기하게 된다.
현재 자신의 일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가고, 유튜브를 보고, SNS를 구경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속에도 "의미 있는 것",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니면 별 게 아니라는 속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별생각 없이 반복하고 있던 것들 중, 사실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던 출근길에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순간부터 당신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 속으로 욕하던 직장 동료나 친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지금껏 몰랐던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가올 가을을 맞아 현재 나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