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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Nov 29. 2024

[6화] 무당이 아니라 프리랜서


그녀의 할머니는 무당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할머니가 굿을 하던 광경을 잊지 못한다. 꽝꽝거리는 징과 꽹과리 소리, 나풀거리는 오색천,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면서도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몸을 흔들던 할머니와 납작 엎드려 울먹이며 무엇인가를 빌던 사람들의 모습. 지금보다 더 그쪽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였음에도 할머니가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렸을 때 그녀가 “엄마, 무당은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그냥... 뭐... 무당은 무당이지.”라고 말한 뒤 입을 닫았다. 마치 무당이라는 말을 하면 자신의 입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것처럼 그녀의 어머니는 ‘무당’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싫어했다.




 


그녀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다투던 와중 할머니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뻘게진 얼굴로 입에 침을 튀겨가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너도 네 할머니처럼, 그... 그 뭐냐. 프리랜서라도 하려고?”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엄마가 잘 먹고 잘 살았던 게 누구 때문인데’ 그녀는 그 말을 하려다 참았다.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였다. 한번 속에 있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녀가 어머니를 얼마나 몰아세울지 그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담담히 말했다. “무슨 상관이야. 지금까지 내가 뭘 하는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누구랑 똑같이.” 그녀는 ‘누구랑 똑같이‘를 일부러 한 자씩, 또박또박 강조해서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답답함과 분노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동시에, 그녀의 어머니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았다. 분노로 타오르던 눈빛이 한순간에 생기를 잃고 공허해지는 것을. 천장에 닿을 듯 치솟았던 어깨에 힘이 빠지고, 바득바득 갈던 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처진 입꼬리만이 보였다. 불과 몇 초만에 사람이 몇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천천히 현관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머니가 뒤에서 달려와 자신을 붙잡지 않을까. 아까처럼 건물이 떠나갈 듯 고함을 치진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여전히 뒤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로 내 뒤에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집 안은 소름 끼치는 정적과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신발을 대충 신고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그녀는 아직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문을 다시 열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잘했어. 너무 놀란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려 좌우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갔고 그 이후로 한 번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몇 년 전, 그녀가 어머니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있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십 번 고민을 한 끝에 전화를 했지만 신호음이 한 번 들린 후, 그녀는 참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바로 어머니의 번호를 차단했고, 결국 어찌어찌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그날부터 시작된 환청은 점점 더 심해지곤 했다.


한 번은 그녀가 집에서 요리를 하려고 칼질을 하던 중, 한쪽 귀에 “악!”하는 고함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손가락을 다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할머니를 찾아갔고, 할머니는 그녀를 위해 부적을 써주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점점 더 나이를 먹고 건강이 나빠지자 그러한 비방도 효력이 줄어들어 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는 이미 말할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


병실 침대에 누운 할머니는 그녀에게 손짓으로 서랍을 열어보라고 했다. 서랍 안엔 메모지 하나가 꼬깃꼬깃 접혀 있었다. 열어 본 메모지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용서해 줘라’ 그녀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을 때가 그때였다. 물론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할머니 또한 알고 있었으리라. 그저 거짓말이라도 손녀가 딸을 용서했다는 걸 듣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어머니가 그날 왔었다면 그녀 또한 진심으로 어머니를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상태였다. 용서를 해준다고 한들, 용서받을 대상이 그 사실을 모르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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