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태운 콩 우려낸 물이다. 커피라는 것은.
피로에 찌들어 관성적으로 카페인을 갈구하는 직장인들이 ‘생명수’라는 둥 호들갑을 떨곤 하지만, 사실 커피는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존이나 성장 발달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포함한 식품인 것도 아니며, 고작 음료 한 잔인 주제에 한 끼 식사보다도 높은 몸값을 자랑하기도 일쑤다.
'아니, 뭔 놈의 음료수가 쓸데없이 이렇게 비싸'
'그거 다 겉멋 들어서 그래. 마케팅이야, 마케팅.'
음, 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태운 콩 우려낸 물을 몹시 사랑한다.
이 애정은 단지 커피라는 음료의 맛을 즐긴다는 뜻만은 아니다. 커피라는 매개체가 열어주는 풍성한 감각의 세계, 삶의 순간들을 무해하고도 사적인 방식으로 향유하는 방식, 넓고도 깊은 취향의 우주, 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 내린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드립 커피가 입 안을 채웠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의 친숙한 온도.
/ 진하게 추출해 낸 에스프레소를 조심스레 홀짝 맛볼 때에 혀 끝에 느껴지는 묵직하고도 복합적인 타격감.
/ 단골 로스터리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운 좋게 갓 볶은 커피 원두의 향이 피어날 때면 느끼는 향긋하고 충만한 호흡.
/ 특별한 곳에 가지 않고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집에서 보내는 주말 오전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홈 브루잉의 목가적인 풍경.
/ 큰 마음먹고 구매한 좋은 원두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내가 나를, 당신을, 우리를 대접하는 정성스러운 기분.
/ 편한 차림으로 마주 앉아서 포근한 온도의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누는 별 목적 없는 대화의 안정감.
/ 처음 도전해 보는 원두를 맛보는데 메뉴 설명에 기재된 아로마 노트가 딱 맞아떨어질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
/ 그리고 이렇게 지극히 순간적인 감각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와의 - 거의 공범의식에 가까울 정도의 - 친밀감.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저런 커피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찬찬히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가득 차오른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성요소로 해체해 보면 결국 이런 구체적인 감각의 순간들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 작은 기억들이 곧 행복 그 자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행복에 이르는 견고한 디딤돌인 셈이다.
무엇보다 멋진 점은 이런 행복의 가능성들이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큰 결심을 하거나 대단한 성취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들을 잘 갈무리하면 된다. 몸이 피곤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일상의 무게에 허덕일 때에도, 잠시 짬을 내어 멋진 공간에서 좋은 커피 한 잔을 두고서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한 모금 마신 후에 잠시 숨을 돌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사소한 것만으로도 행복의 감각을 소유할 수 있다니. 이 효율적인 행복에 어찌 투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자격증 취득 시험을 보겠다며 돈, 그리고 (직장인에게는 돈보다 더 소중한) 주말 시간을 기꺼이 들이는 것.
낯선 지역에 방문할 때 관광지를 방문하기보다도 개성 있고 정감 있는 카페를 찾아가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그 풍경을 여행의 기억으로 삼는 것.
평소에 인파가 많고 시끄러운 곳은 질색하고 줄 서는 것도 손사래 치면서 커피 박람회에서는 좋아하는 카페의 부스를 방문하겠다며 몇 시간이고 지난한 기다림을 즐거운 기대감으로 감수하는 것.
무엇보다도 이렇게, 커피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또 내 인생의 첫 책 출간까지 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이에 힘입어 수년 동안 미뤄두었던 브런치 작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개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커피가 내 일상에 열어준 경험의 지평들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커피’를 주제로 하는 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피’에 대한 글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This may or may not be about coff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