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일상 속에서 커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사실 해봐야 얼마 안 된다.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어도, 새로 산 원두를 홈드립해서 맛보고 싶어도, 오랜만에 아껴둔 커피잔을 꺼내고 싶어도, 열에 아홉은 생각에 그칠 뿐이고 그저 주말을 오매불망 기다리기 일쑤다. (하긴, 이건 커피 때문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커피를 마음 편하게 즐기는 시간대는 오전, 아무리 늦어도 점심 직후여야 한다. 밤잠을 설칠까 싶어 저녁에는 가끔 마시는 디카페인을 제외하고는 커피를 안 마시니까.
날은 주말 또는 휴무일이어야 할 것이다. 반도의 흔한 직장인으로서 일주일의 71.43%, 즉 7일 중 5일은 회사에 종속되어서 일정과 동선이 도통 자유롭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평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 잠시 홈드립의 여유와 낭만을 즐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고이 접어두자. 미라클 모닝을 신봉하지도 실천하지도 않는 인간에게 평일 아침이란 그저 기상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몰골을 갖추고 출근하기에도 바쁜 시간일 뿐이거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쇼핑몰과 식당, 카페들이 가득한 서울의 오피스 권역, 정확히는 여의도다. 여기에 상주하면서 ‘카페 갈 시간이 없다’면서 ‘이번 주말에는 꼭 카페 가야지’라고 중얼거리다니. 누가 들으면 어디 외딴섬이나 산간벽지에 갇혀서 커피 한 모금 못 마시고 지내는 줄 알겠네. 정말 물리적으로 인근에 카페가 하나도 없는 지역의 사람이 들으면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면박줄 일이다.
하지만 정말이다.
출근 전에 가끔 캡슐 머신으로 한 잔 추출해서 머리 말리면서 대강 급하게 털어 마시는 그 음료. 출근 후에 탕비실로 직행해서 보온 머그에 가득 따르는 그 음료. 업무상 점심자리 이후에 관례적으로 마시게 되는 그 음료. 수많은 직장인들이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니는 그 음료.
그저 ‘로동용 카페인’에 불과할 뿐, ‘커피다운 커피’가 아니니까.
커피와 함께 하는 순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성역을 절대 허투루 내어줄 생각이 없다. 그냥, 습관적으로, 잠 깨야 하니까, 별 이유 없이 들이켜는 그 사회생활 음료들에 ‘커피의 시간’이라는 영예를 허락할 생각이 결코 없는 것이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커피 언어 사전에 의하면, 커피는 휴식이어야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며,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하고 ‘아, 좋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설령 그날의 원두 선택이나 브루잉이 내 취향에 덜 맞더라도 괜찮다. 오, 나는 평소에 다크 초콜릿 베이스에 고소한 견과류의 풍미가 더해진 것을 선호하는데, 오늘 날씨에는 이런 상큼하고 프루티한 향기도 잘 어울리네. 블라인드 테스트 마냥 바리스타의 선택에 맡겨보았는데 이 사람은 이런 성향이네.
이렇게 나의 취향과 생각, 그날의 기분을 온전히 반영하는 기호품이어야 한다. 잠 깨기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 주입하는 기능성 용액이 아니라.
또 하나. 테이크아웃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잔, 또는 텀블러가 아니라 ‘커피잔’이어야 한다. 적어도 소담스러운 매력이 있는 큼직하고 그립감이 좋은 매장용 머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특히나 여행지에서는 더욱 공을 들여서 ‘소서(받침)가 있는 커피잔에 담아주는 카페’를 찾곤 한다.
사실 커피잔 소서는 실용적인 물건은 아니다. 원래는 뜨거운 홍차를 덜어 마시기 위한 도구였다고 하는데 더 이상 그런 관습이 없는 오늘날에는 순전히 장식적인 존재일 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굳이’ 소서와 커피잔을 꺼내서 세팅한다거나, 실용적이지는 않아도 예쁜 잔에 커피를 담아서 서빙하는 카페에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내가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나만의 반증이기도 한 셈이다. ‘효율과 실용성 따위’ 잠시 내려놔도 된다는, 흐뭇한 작은 사치.
오늘 회사에 외부 손님들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어서 인턴들이 인근 상가의 유명한 카페의 커피를 사들고 왔다. 인기가 많아서 점심시간에 가면 늘 줄을 선다고 한다. 무슨무슨 메뉴가 유명하다고 한다. 가게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팔로워가 많다고 한다.
그래, 그 정도면 누가 ‘괜찮은 여의도 카페’를 물어봤을 때에 추천해 주기에 부족함은 없겠네. 누군가와 점심 먹은 후에 테이크아웃하러 찾아갈 수도 있겠네. 하지만 딱 이 정도의 미적지근한 마음가짐이다.
나의 카페는, 나의 커피다운 커피는, 나의 진짜 커피 휴식은, 주말에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