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욕망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가늠하는 그나마 객관적인 지표 중 하나는 아무래도 ‘돈’이다.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나 의무 없이, 순전히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내가 얼만큼의 돈을 기꺼이 태우는가 – 라는 것이 나름 그 욕망에 대한 유의미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한마디로 '아니,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그렇게 돈을 쓰니'라는 것.
그렇다면 세상 무용한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는 것을 따는 데에 내가 아낌없이 쓴 돈은, 나의 커피 애호에 대해서 과연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일까.
오늘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민간 자격증들을 응시자 순위로 추려보면 상위 500개 중에서도 자그마치 45개, 그러니까 거의 10%에 가까운 비율이 소위 말하는 바리스타 자격증, 즉 커피와 관련된 자격증이라고 한다. 적어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라는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이 그렇게 공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말이 쉬워서 ‘바리스타 자격증’이지 제대로 들여다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복잡한 거 다 필요 없고 이거 하나만 하면 돼!’ 식의 올인원 코스 같은 것은 어학원 홍보 현수막에나 있는 마케팅 문구일 뿐.
바리스타 스킬, 커피 원두 감별사, 라떼아트 디자인, 로스팅 마스터, 센서리, 커핑, 브루잉… 이놈의 바리스타 자격증이란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각 유형마다 베이직, 마스터 등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서 세분화를 하자면 관련 수업과 시험의 종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이 바리스타라는 것은 민간 자격증이라는 사실. 국가는 ‘바리스타의 자격’에 대해서 그 무엇도 증명하거나 인증하지 않는다. 교육 공무원이나 공인회계사처럼 연 합격자 수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다. 관련 수업을 수강하고 해당 시험을 통과하면 끝이다. 정말이지 그것만 하면 SCA, EUCA 등 그럴싸한 관련 협회에서 ‘바리스타라는 호칭을 쓸 것을 허하노라’는 내용의 자격증을 부여해준다. 한마디로, 아무나 다 할 수 있다는 소리다.
(물론 그렇다 해도 불합격자는 가끔 생긴다. 최소한의 선만 넘으면 된다지만 누군가는 안이하게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현장에서 집중력 부족으로 실수를 할테니까. 다행히 그 불합격자가 나는 아니었다. 뭐, 나만 아니면 됐지.)
이런 생태계이기 때문에 커피 자격증의 세계는 말 그대로 ‘장사’다.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자격 시험을 주관하거나 자격증을 수여한다. 교육 기관들이 죄다 사설 학원인 만큼, 수강료도 제법 비싼 축에 든다. 협회들도 사설이기 때문에 시험 응시료를 얼마로 책정하든 그들의 자유. 물론 직업 훈련 차원에서의 국비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모든 게 ‘내돈내산’인 셈이다.
이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에 내가 태운 돈을 어림잡아 집계해보니 대략 2백만원이 나오더이다.
커피의 기본 상식 및 에스프레소 추출을 배우는 바리스타 스킬 베이직, 커피 원두 및 추출한 커피의 향을 구별하는 센서리,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우려내는 브루잉. 이렇게 총 3가지의 수업을 듣고 각각에 해당하는 필기 및 필기 시험에 응시하고 초반에 교재비와 바리스타 앞치마 구입하는 데에 든 비용.
심지어 나와 취향을 공유하는 옆지기도 이 여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 2인 가정의 총 지출은 저 금액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하나도 아깝지 않고 되려 잘 쓴 돈(money well spent)이라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는 좀 진심인 것 같다. 하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아깝지 않다’는 것 만큼 확실한 만족의 후기가 또 어디 있으려고.
하지만 이런 상당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소리다.
현재로서는 관련 창업을 할 생각도 전혀 없고, 설령 나중에 가게를 열 생각이 생긴다고 해도 사장 입장에서는 솔직히 바리스타 자격증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가게에서 일할 직원이나 파트타이머들을 뽑을 때 그들의 우대 요건으로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아니, 그렇다면 그런 종이 쪼가리일 뿐인 자격증 취득에 왜 이렇게 돈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들이냐고 묻는다면... 재밌어서. 정말이지 뻔하고 진부한 답이지만 피해갈 방법이 없다. 정말 재밌어서 한 것이 맞으니까.
좋아하는 것이기에 재미있고, 목표로 인한 강박이 없기 때문에 즐겁다. 실로 수업을 들을 때에도 옆지기와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창업이나 관련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가 가장 수업을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들었다는 후문.
자격증 취득의 ‘이유’가 재미였다면, 취득의 '성과' 역시 재미였다. 그렇다. 전과 후를 비교하면, 나의 삶이 보다 재미있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커피에 대해서 배우든 말든,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든 안 했든 간에 이 세상은 딱히 변하는 게 없는데,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의 센서가 바뀌는 것이다.
무심코 들어간 카페에서 윤이 나는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면 ‘오호라, 여기 사장님이 제법 투자했네'라며 우리끼리 설레인다. 꼭 비싼 신상이 아니라 해도 바리스타가 머신을 사용한 후에 절도 있게 규정대로 세척하고 도구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지곤 한다.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 속에서 각자의 취향을 예측하고 발견하고 또 확인하는 순간, '바로 이거야'라면서 눈이 번쩍 뜨인다. 별 거 아니지만 각 커피의 맛과 온도에 따라서 특화된 컵에 따라서 내어주는 모습에 약간은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생활소음 정도로 받아들였을, 그러나 이제는 귀에 친숙한 그라인더의 소리를 들으면서 원두의 입자 크기와 바리스타의 성향을 추측해보면서 조금 우쭐대기도 한다. 주변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정말 잘 내린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받아서 그 향긋한 숨을 깊게 들이쉬면 모든 번잡스러움이 잠시나마 물러나는 것을 느낀다. 그 놀라운 몰입감이라니.
별 것 아닌, 그저 그런 순간들이 이렇게 특별해진다.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곳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희열을 느낀다. 이런 감각을 공유하는 이와 눈빛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꽤나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 굳이 자격증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여담이지만, 모 주류 회사에서 이벤트성으로 고객들에게 발행해주는 ‘소맥리에 자격증’이라는 게 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처럼 생긴 납작한 플라스틱 카드. 물론 아무런 효력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 카드를 꺼내들면서 ‘마, 자그마치 자격증 보유한 내가 소맥 한 잔 시원하게 말아보리다’는 식의 귀여운 허세 정도는 부려볼 수 있겠지. (예전에 이 자격증을 발급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영부영 놓쳐버린 것이 아직도 아쉬울 뿐!)
이를테면 나의 바리스타 자격증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누군가와 커피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무심한 듯 “저 사실 바리스타 자격증 보유하고 있어요. 에스프레소 그리고 핸드드립 베이직. 아유, 그렇다고 전문가는 아니고요, 그냥 취미로!” 이런 말을 툭 던질 수 있는 것.
고작 집에서 캡슐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누를 때도 “이것은 바야흐로 바리스타 자격증 보유자의 손가락 스냅으로 섬세하게 버튼을 눌러 추출한 커피”라면서 짐짓 까불어볼 수도 있는 것.
가격대가 다소 높은 스페셜티 원두를 구매할까 말까, 이걸 산다면 과연 그 아로마 노트를 잘 살려서 추출할 수 있을까, 망설이다가도 “아니 뭐, 우리는 바리스타 자격증 보유자인걸!” 외치고 낄낄대면서 가벼운 기분으로 일단 결제를 해버리는 것.
그러다가 커피가 정말 섬세하고 향긋하게 잘 내려진다면 그건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내 덕’으로 돌리고, 어쩐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면 그저 국가 공인이 아닌 소위 ‘싸제 자격증 탓’을 해버리면 될 일이다.
자격증은 있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즐겁다. 그래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