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oha Sep 24. 2022

이야기의 시작... 해례, 꽃 그리고 고양이

[소설] 나비가 손님인 꽃집 4

  오스틴은 자신의 배에 작고 여린 손톱을 박고 힘껏 젖을 빨고 있는 새끼들을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이제 유치가 나오려고 하는지 새끼들이 물고 있는 젖이 따끔거렸다. 아직 여물지 않은 손톱도 배에 박혀 있으니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곧 손톱이 단단해지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겠지. 그럼 어엿한 고양이가 되는 거야.’

  결국 오스틴은 창고에서 새끼를 낳았다. 창고를 뒤지다가 해례가 놓고 간 사료봉지를 찾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오스틴은 해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엄마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도 새끼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해례의 이야기와 꽃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야만 너희들도 살아남아서 진짜 고양이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거야.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말이지.'

  새끼들이 젖 빨기를 멈추고 저희들끼리 엎치락 뒷치락하는 사이 오스틴은 제법 위엄을 갖추고 상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깨어진 유리사이로 자꾸만 찬바람이 들어 몸이 절로 움츠러들고 한쪽 모서리가 찌그러진 상자를 보자 이마에 절로 주름이 잡혔다. 흠... 새끼들이 다 빠져나간 뱃속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엄마 고양이의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새끼 두 마리가 품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오스틴은 새끼들의 머리를 핥아주며 조금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얘들아, 엄마가 할 이야기가 있어.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규칙 같은 거지.”

  “규칙?”

  그때 아기고양이들은 마치 짠 것처럼 다같이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오스틴은 아기고양이들이 자신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언젠가 때가되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저절로 쥐를 잡는 방법을 알게 되고 저절로 새끼를 낳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어쩌면 자란다는 것은 이야기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일들이 진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 사실 우린 안에 이미 깨달음을 향한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한 고양이의 일생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란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것 또한 알고 있었다. 거리에서 살다보면 어느 고양이든 고양이의 일생만큼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그들의 시간은 대부분 길지 않았다.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고양이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해례가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드는 것을 세 번 보고 나면 그 다음해 봄에 엄마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엄마의 엄마도 그랬고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도... 당연히 너희도 그럴 거야.”

  오스틴은 엄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몇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든 이 창고에는 암컷 고양이 한 마리 밖에 남을 수 없다. 나머지는 자신이 이곳을 떠날 때 함께 나가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진짜 고양이의 인생은 그때 부터란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창고에 남은 고양이역시 전통을 따라야 한다.  아기고양이를 낳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 얼룩 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오래오래 지속되기 위함이지”

  오스틴은 언젠가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첫 번째 고양이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후 새끼를 낳고 그 고양이들이 또 새끼를 낳자 창고 안은 금방 고양이로 가득 차 버렸다. 게다가 꽃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호시탐탐 창고를 노리는 고양이 들을 위해 해례는 눈치없이 창고 앞에도 사료그릇을 두었다. 그러자 꽃집으로 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꽃집 앞에 놓인 화분에는 고양이 나무가 자라고, 꽃집을 둘글게 에워싼 고양이들은 식빵을 굽거나 제 몸 구석구석을 핥고 있었다. 몸을 길게 늘려 스트레칭을 하거나 아예 배를 보이며 드러눕기까지 했다. 해례가 올때까지 꽃집 문앞에서 울어대는 고양이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몇 번이나 뒤돌아보기도 했다.

  “아니, 도대체... 동네가 이게 무슨 꼴이야. 그러니까 이 도둑고양이 들이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내가 아주 잠을 한 숨도 못잔다니까요. 수면제가 없으면 밥을 아주 꼴딱 세는 거야. 게다가 고양이 들이 천막을 죄다 발톱으로 찢어놔서 우리 바깥양반이 아주 벼르고 있어. 아주 그냥 약을 놔서 다... 이게 다 아가씨가 오고 나서부터 그런 거잖아. 동네를 아주 도둑 고양이 소굴로 만들셈이예요?”

  꽃집 옆에 있던 자전거 수리점 아줌마는 툭하면 해례를 찾아와 이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소연이라기 보다 협박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해례는 약을 놓아서 고양이들을 몽땅 다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말에 사색이 되어 버렸고, 고양이들은 오히려 그런 해례를 걱정해야 했다. 창고에 와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밤에 울지 말고 자전거 수리점의 천막도 찢어 놓지 말라고 통 사정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 작은 몸통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해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을거야. 작은 어깨를 한없이 늘어뜨리고 쉽게 울상이 되곤 하는 모습이 말이야.”

  고양이라는 동물은 모름지기 밤에 활동하는 동물이라 밤이 되면 짝도 찾아야 하고, 다른 고양이들과 다투기도 하고 또 새로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그런 법인데 그런 걸 전혀 이해 못해 주다니... 게다가 천막을 찢어 놓았다는 누명은 정말 억울했다. '게다가 ‘도둑 고양이’라니. 우리가 도대체 뭘 훔쳤다고?' 하지만 그대로 있다가는 해례가 그 동네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엄마 고양이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해례가 없으면 고양이들도 살아남기 힘들었다. 결국 그 창고에는 고양이 한마리만 남겨두고 모두가 떠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런 힘든 결정을 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해례 역시 제 나름대로 대책을 생각해 냈는데, 오스틴은 그것을 떠올리기 조차 싫었다. 듣자하니 고양이들을 어디론가 데려가 아기고양이를 낳지 못하도록 만든 다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꿈 속에서 깨어나면 울상이 된 해례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배가 찢어 질 듯이 아프고 더 이상 밤에 울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결국 남겨진 고양에 한 마리 역시 해례에게 안기거나 그녀의 손길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우린 해례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어” 

  우린 해례를 사랑했으니깐. 그리고 고양이들이 대를 이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의 사랑이 필요하기도 했다. 

  “사람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는 고양이는 사랑받기 힘든법이지.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해례의 고양이는 아니였으니깐.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거지. 그래, 맞아. 우린 ‘대등한 관계’였어.” 

  덕분에 가문의 대를 이를 역할로 낙점된 고양이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규칙의 전달자이자 아기 고양이가 해례와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둔, 대등한 관계가 되도록 말이다.

  “밖은 위험하고 배고픈 곳이야.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길에서 죽은 새끼들을 여러번 봤단다. 하지만 우리는 해례 덕분에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어. 그리고 이렇게 대를 이어오고 있단다. 이제부터 엄마는 해례가 올 때까지 너희들에게 엄마의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리고 엄마가 봐 왔던 일들을 얘기해 줄거야. 그럼 너희들도 언젠가 해례를 만났을 때,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 해례의 말을 이해하고, 기분을 알아차리면 비록 서로 닿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단다.”

  ‘함께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엄마 처럼 말이야...’ 하지만 오스틴은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섣불리 해례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례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세계에 대해 앍게 해줬어. 그리고 그 세계를 알게되면, 앞으로 우리가 밖에서 살게 되도, 엄마가 옆에 없어도 말이야...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아나 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해례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우리를 찾아오나요? ”

  “그게 아니라... 해례는...”

  오스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빛이 새어들더니 나지막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얇은 합판 사이로 밤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끊어지면 해례가 속삭이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탁 탁 탁, 그리고 또다시 소곤거리는 목소리.

  오스틴은 갑자기 해례의 목소리가 그리워 배가 꼬이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건지도 몰랐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 창고안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뭐였어요?”

  “엄마가 얘기해 주셨지. 나비할머니는 그걸... 꽃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어.”




  "블로그를 할거야."

  "뭐?"

  "인터넷으로 꽃집을 홍보하는 거지. 어때?"

  "그냥 지하철역에서 전단지나 돌려. 아니면 신문에 끼워 넣던지. 아니면 배달음식 책자 같은 것도 있잖아."

  "아니, 무조건 홍보만 하는 게 아니라 꽃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이고 싶어. 게다가 꽃집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도 들려주고.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하지 않을까? 요즘은 뭘 하든 인터넷부터 찾아보잖아."

  "그런 소.소.한.일에 누가 관심이나 있다 그래? 그런 것도 다 돈 써서 업체에 맡기는 거 같던데... 내 생각에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아."

  "그래도... 뭔가 해 봐야지."

  영은은 그제서야 30분넘게 잡지책에 박혀있던 머리를 들고 해례를 쳐다보았다.

  "그 접근이 잘못된 거야. 일은 네가 하는 게 아니라니깐. 돈이 하는 거지. 돈이"

이전 03화 꽃집 '트리 앤 바이올렛' 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