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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ha Oct 24. 2022

첫사랑, 꽃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리는 4월

[소설] 나비가 손님인 꽃집 9

  깨진 유리 창문 틈으로 아치의 동그란 눈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좀 더 몸을 안으로 들이밀자 입에는 생선 꼬리 끝에 매달려 있는 얼마 안 되는 살점이 달랑거렸다. 오스틴을 향한 눈빛이 의기양양하다 했더니 아무래도 저것 때문인 것 같았다.

  “어이, 오스틴!”

  “아, 아치구나. 대낮부터 쓰레기봉투라도 찢으러 나온 거야?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배고플 것 같아서. 고등어 좀 가져왔어.”

  오스틴은 골목 끝에 있는 오래된 생선가게 고양이었다. 집에서 살가운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라기보다 가게에서 쥐 나 쫒는 신세였지만, 염연히 주인이 있는 고양이다 보니 쓰레기봉투를 찢어도 언제나 당당한 녀석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심도 야박하지 않았다.

  “에잇, 자전거 방 할머니가 쓰레기봉투를 돌로 눌러 놓는 바람에... 겨울이라서 먹을 걸 찾기도 어렵지? 해례는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해례는... 아, 사료가 좀 남아 있었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말을 행여나 아기 고양이들이 들을까봐 걱오스틴은 낮게 속삭였다.

  “그나저나 골목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

  “무슨 소문?”

  “이 골목도 이제 다 높은 아파트가 될 거라던데. 재개발이 된다는 말이야. 큰 극장도 생기고, 쇼핑몰도 생긴데. 주인아저씨가 신이 나서 그랬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내가 생선 꼬리를 물고 가도 본체만체하더라니깐. 평소 같으면 호통을 쳤을 텐데...”

  아치는 무슨 큰 행운이라도 거머쥔 듯한 표정이 되어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틴은 눈이 둥그렇게 커져서 아치를 쳐다보았다.

  “재개발은 뭐고, 극장은 또 뭐야. 쇼핑몰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오스틴이 생각하기에 아치가 아는 말은 고등어라든가 꽁치라든가 명태, 동태 같은 것이 전부였다. 아, 머리, 몸통, 꼬리까지 알고 있으려나? 요리조리 기회를 살피며 생선 사이를 헤매다가 밤이 되면 쓰레기봉투를 찢는 것이 전부인 바보 같은 아치가 떠들어 대는 저 말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오스틴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나도 몰라. 주인아저씨가 그랬단 말이야. 이 골목이 다 없어진다고. 생선가게도 목공소도 꽃집도 다. 너는 온갖 이상한 이야기를 다 외우고 다니면서 정작 이런 말들은 못 알아듣는 거야? 꽃 이름은 줄줄 외면서...”

  “다... 없어진다니... 전부 다?”

  아치가 내려놓은 생선 꼬리를 아기 고양이들이 발을 들어 톡톡 건드려보고 있었다. 눈에는 ‘이건 뭘까?’ 하는 궁금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직 그것이 뭔지 정확하게 몰라도 본능적인 끌림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고등어 꼬리에 대한 아기 고양이들의 호기심은 식을 줄을 몰랐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것을 향해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뒤로 물러나 몸을 웅크리더니 다시 풀쩍 뛰어 올랐다. 그 작은 몸으로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이. 그나저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봄이 되자 해례는 벼르고 벼르던 ‘트리 앤 바이올렛’의 꽃꽂이 수업을 시작했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과 저녁 6시 30분에 진행되는 수업의 정원은 딱 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 수업은 해례가 꽃집을 연 이듬해 봄부터 시작되었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여태 방치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기다리던 첫 방문자가 드디어 온 것이다. 해례는 그 한 사람이 앉을 작은 테이블을 몇 번이나 닦고 또 닦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저... 선생님, 저랑 벚꽃 구경 안 가실래요? 자연 운동장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는데... 아직 구경 못 가셨으면... 어때요?”

  “네? 저랑요?”

  “흐흐, 하루 종일 꽃집에 있는데 또 꽃구경 가자는 건 실례인가요? 일의 연장 같은 건가?”

  “그건 아니지만...”

  해례는 지금까지 벚꽃 구경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오다가다 길가에 핀 벚꽃을 올려다본 적은 있었지만, 누군가와 벚꽃 구경을 가 본 적은...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나 겨우 한 시간 정도 같이 있었던 사람과는 영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았다.  

  “사실은... 봄이라고 다들 꽃구경 간다는데... 저는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꽃집으로 꽃구경이라도 가자 싶어서 오늘 온 거예요. 그런데 왠지 이렇게 집에 가버리고 싶지 않네요. 선생님이랑 벚꽃구경하고 싶어요. 그런데 왜 수업을 한 명이랑, 한 번만 하는 거예요? 저는 또 오고 싶은데...”

  “아... 그건...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게 두려워서요.”

  “네?”

  해례는 처음 본 자신과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서 벚꽃 구경을 가고 싶다는 여자의 말에 당황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진심을 토해버리고 말았다. 꽃집을 드나드는 손님들의 짧은 방문은 다행히 쉽사리 인연으로 이어지기 않았다. 그저 필요와 대가를 교환하는 실리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하지만 꽃꽂이 수업은 한 시간 이상 마주 앉아 있다 보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해례는 또 그 인연이 갇혀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럼 제가 벚꽃 구경을 하러 가자는 건 진짜 실례인 거네요.”

  “그건...”

  9시가 넘었지만 공원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다음날이 토요일인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우와,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4월은 언제나 분주한 계절이었다. 해례의 인생에서 4월은 언제나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많은 일을 앞두고 있는 달이었다. 오빠가 집을 나간 것도... 4월 이었다. 게다가 천지사방에 꽃이 피고 어버이날을 앞둔 4월은 꽃집을 열고부터는 더 분주해진 달이 되었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이어진 벚나무가 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조명을 받은 나무는 초록색 잎 하나 없이 온통 옅은 분홍빛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름을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색이나 칠해놓은 그림 같기도 했다. 

  “그러면 제가 인연을 맺은 첫 꽃꽂이 수업 학생인가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거니까요.”

  “그것보다 먼저 트리 앤 바이올렛의 꽃꽂이 수업에 처음 오신 분이죠.”

  “어머, 제가요? 꽃집을 얼마나 하셨는데요? 좀 오랜 하신 것 같던데...”

  “음... 4년쯤.”

  여자는 놀란 눈치였지만, 애써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개업식에 선물할 동양란을 사러 온 손님이 해례에게 노골적으로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되냐? 손님은 오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찾는 동양란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젊은 여자 손님이었는데, 지나가다가 꽃집 간판에 불쑥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된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 만난 지 몇 분만에 진심으로 해례를 걱정해 주는 것은 아닐텐데... 그것보다는 빨리 개업식 선물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드러낸 짜증에 가까웠다.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항상 고민해요. 그런데 희한하게 또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은 벌어요. 사실은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저는 언제나 떠나기에도 머무르기에도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집을 떠나버린 오빠는 이제 행복해 졌을까, 해례는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은 결국 그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는데... 오빠는 정말 떠나버린 걸까.

  “떠나기에도 머무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라...”

  “그런데... 저렇게 아름다운 벚꽃은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미련 없이 나무를 떠나버려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벚꽃이 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얇은 꽃잎이 바람에 섞여 들어가 흩날리는 꽃바람이 되고, 비가 내리면 비와 함께 흘러내려 분홍색 꽃비가 되었다. 바닥에 온통 분홍빛 꽃잎이 깔리면 세상이 온통 분홍색으로 변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벚꽃은 슬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벚꽃이 삶의 아름다운 순간과 닮은 것 같아요. 일 년 중에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원래 아름다운 순간은 짧은 거네요. 쳇, 좀 오래오래 아름다우면 안되는 거야?"

  "그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수명이 긴 꽃들은 오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처음과 다르게 방치되기 일쑤거든요."

  벚꽃 터널 아래를 가득 메운 사람들 덕분에 해례와 여자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사람들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사진을 찍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인연은 오늘이 끝인 거 맞죠? 트리 앤 바이올렛 꽃꽂이 수업은 두 번은 못 가잖아요. 인연이 이어지니까. 큭큭”

  해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나 버린 대학시절 만났던 첫사랑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순간이라니까 생각났는데, 이 나이에 첫사랑 얘기는 오글거리나요?”

  “오글거린다기보다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와 비슷한 감정이 식상하다고 할까.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하세요.”

  해례는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 여자는 용기를 얻었는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꽃과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여자는 가만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드는 것 같았다. 그때 벚꽃이 가만히 날아와 여자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마법을 부릴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

  “네, 맞아요. 전형적인 얘기예요. 많이 사랑했고, 먼저 졸업해서 취업한 제가 헌신했죠. 그런데 남자 친구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했어요. 우리 엄마가 재혼해서 낳은 딸이 저라는 게 이유였죠.”

  해례는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이 무슨... 아무리 이십 년 전이라고 해도. 그런 게 반대할 이유가 되는 건가요?”

  “글쎄요... 그때는 어려서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어요. 무슨 엄청난 태생의 비밀이라도 간직한 사람처럼 움츠러들었죠. 엄마도 많이 원망스러웠고요.”

  “명문가 사대부라도 되나 보네요. 그래서 남자 친구 분은 뭐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그냥 부모님 말씀에 순순히 따르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안돼서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죠. 그리고 끝이에요.”

  어느새 길 끝까지 왔는지 벚꽃나무가 드문 드문 이어지더니 사람들의 북적임도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조명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 벚꽃 잎은 얌전히 여자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걸음을 멈춘 여자가 서서히 해례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지금까지?”

  “그 뒤로 결혼은커녕 연애도 한 번 못해 봤다면 믿겠어요?”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많이 화가 났어요.”

  사랑만큼이나 깊은 분노도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새로운 사랑도 새로운 일도... 새로운 것을 찾으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나간 한 번의 실패는 용기부터 가져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도 이십 년 넘게 떠나지도 그렇다고 머무르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죠.”

  해례는 문득 말하고 싶었다. 벚꽃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벚꽃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피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벚꽃을 보라고. 바람에도 비에도 잘만 섞여 드는 꽃잎을 보라고.

  “꽃이 왜 아름답다고 느꼈냐 하면... 자꾸 피더라고요. 미련 없이 떨어지고 나면 또 피고 또 피고... 인생의 아름다움이나 행복이 안정된 삶 속에만 있는 거 같지 않아요.

  자꾸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아요. 그 과정이 힘들고 비참한 생각이 들어도. 그게 뭐가 됐든 말이에요. 사랑도 잃어버리면 미련 없이 잊고 또 찾아 나서요. 또 찾고 또 찾고, 남들이 욕하고 비웃어도 계속 찾아 나서는 거예요. 꽃이 자꾸자꾸 피는 것처럼. 

  근데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럽기만 한 걸요. “

  “뭐가요? 이렇게 혼자 늙어 가고 있는 게 부러워요?”

  “누군가를 진짜 사랑해 봤다는 사실이요. 살아오면서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는 거요. 저는 벚꽃구경만 안 해 본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어요. 사랑받아 본 적은 더더욱 없고.”

  “방금 나한테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한 것 같은데...”

  해례는 여자를 향해 조금 웃어 보였다. 자신은 지금껏 아예 출발선상에 서 볼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례는 여자가 부러웠다. 시작조차 해보지 못함 사람은, 그러니까 출발선에 서는 것 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의 아픔마저 부러울 수 있는 것이다.


  “요즘도 늦게까지 일하는 거냐? 앞집 아줌마가 꽃집에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고 걱정하시더라.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이쪽 골목길은 아직 어둡잖니?”

  “이것저것 할 일이 좀 남아 있어서요. 걱정 마세요.”

  “엄마도 걱정하실 텐데... 손님도 없는데 뭐하러 늦게까지.”

  사실 해례가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는 이유에는 ‘엄마’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신세한탄과 하소연에서 이제 그만 놓여나고 싶은 것이다. 엄마가 잠든 후 집에 들어갈 때 자신을 반겨주는 적막함이 해례는 오히려 반가웠다. 문득 엄마가 언젠가 신세 한탄을 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제나처럼 ‘자신도 불쌍하고 해례도 불쌍하고’로 이어지는 그 신세한탄 속에서 엄마는 더 이상 끌어들일 대상을 찾지 못했는지 난데없이 정호 아저씨를 끌어들였다. 그 녀석이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이제  좀 편할까 했더니 부모님이 버티고 섰잖아... 불쌍한 인생이야...

  “근데... 아저씨는 왜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하루 종일 목공소에만 있으니 만나는 사람도 없을 테고.”

  눈이 동그랗게 커진 정호 아저씨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굴색도 좀 붉어진 것 같았다. 

  “갑자기... 뭐 그런 질문을... 하고 그러냐. 이제 낼모레면 오십인데 어느 여자가 나한테 시집을 오겠냐? 그러는 너나 더 늦기 전에 남편감 좀 찾아봐라. 엄마 걱정시키지 말고!”

  “혹시... 여태 그분을 못 잊으신 거예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정호 아저씨는 이제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해례는 엄마의 나머지 말이 생각났다. 젊은 날, 그 녀석이 여자를 잘 못 만나 가지고... 돈 없다고 냉큼 다른 놈한테 가버린 그런 여자를 여태 잊지 못하고 말이야. 걔가 착해. 형제들 다 놔두고 부모님 모신다고 얼마나 고생했니. 다들 자기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고생한다면서 말이야. 클 때도 그렇게 고생을 했다더니... 정작 먹여 살릴 처자식도 없는지가 제일 불쌍한 줄도 모르고...

  해례가 보기에 떠나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머물지도 못하는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건 벚꽃 잎뿐인 건 아닐까.



  

  “해례가 너를 버리고 가버리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아치는 이제 어둑한 창고 안에 있는 오스틴과 새끼 고양이를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이었다.

  언젠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자전거에 부딪힌 자신을 해례가 구해 주었다. 다급하게 달려와 자신을 살피던 해례는 생선가게까지 데려다주고 주인아저씨에게 사고 소식도 전했다. 하지만 주인아저씨는 그저 별거 아닌 일인 양 대꾸했고,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해례는 다음 날 약을 들고 생선가게를 다시 찾아왔다.

  “내가 밤새 얼마나 아팠는데... 아마 다리가 부러졌을지도 몰라.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관심도 없더라고. 이제 더 이상 쥐를 쫓지 못할까 걱정할 뿐이었지.”

  해례는 주인아저씨의 태도로 보아 그가 고양이에게 약을 먹일 리 없다고 확신했는지, 아치를 꽃집으로 데려가 약을 섞은 간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다리를 절잖아. 해례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런 다리로 지붕 위에 올라오기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찾아와 줘서 고마워.”

  그렇게 꽃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아치는 오스틴과 알게 된 후 가끔 골목 소식을 전하러 찾아오기도 하고 밤이 되면 함께 돌아다기도 했다. 

  “만약에 여기가 다 부서지면... 어떡할 거야? 계속 해례를 기다릴 거냐고?”

  오스틴은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오랜 친구인 아치를 보자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두려운 생각에 눈물까지 흘러내렸다. 아기 고양이들이 볼까 봐 동그란 손으로 얼른 눈물을 훔친 오스틴은 낮게 속삭였다.

  “여기서 좀 더 해례를 기다릴 거야. 봄이될 때 까지라도.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지금은 떠날 수 없다고.

  우릴 버린 게 아니니까. 꽃집도 우리도 해례는 정말 사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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