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아이유의 20대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이 노래는 아이유의 덤덤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노래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 가사를 들을 때면 나 또한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날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내가 나를 사랑했던 적이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내 대답은 ‘NO'라고 나온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이 자존감이라는 것이 한참 커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이다. 빠르게는 초등학교 5-6학년부터, 보통은 중학생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에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키워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제대로 된 자존감을 갖게 되어 누군가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됨을 인정하고 고치기도 한다. 하지만 자존감이 잘 크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사소한 말에도 휘둘리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을 바로 잡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끝없이 질책하기도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존감이 커져야 하는 시기에 나의 주된 감정은 ‘불안’과 ‘우울’이었다. 사춘기가 되면 이 두 감정이 자연스럽게 커진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 규모가 좀 컸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불안에 더해서 만약 부모님이 헤어진다면 누구랑 살아야 하는가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찌 되었든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었기에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내면에는 다른 의견이 있었음에도 부모님이 나의 말을 쉽게 들어줄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우울을 표현하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자주 했던 생각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할까?’였다. 나는 내가 불안하고 우울한 것이 잘못된 것 같았다. 불안과 우울을 갖고 있는 이런 나를 사랑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타인의 평가에 더욱 매달렸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학생 시절이 편하지 않았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영향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나의 모든 감정의 밑바탕은 ‘우울’이었다. 스물 중반이 되어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우울하고 불안했는지 이유를 찾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때까지의 나의 모습이 곧 ‘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새로운 나를 찾아가려고 할 때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과 부딪혔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나의 모습과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미련하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셀 수 없이 생각했다. 셀 수 없이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들이 나왔지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어서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로 여러 날이 지났다. 그 여러 날은 쌓여서 몇 해가 되었고 나는 어느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누구에게도 숨길 수 없이 깊은 우울에 빠지고 말았다. 서른이 되어서야 병원을 갈 용기가 생겼다. 병원을 다니며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심리검사까지 하고 나서야 기질적으로 불안도와 우울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진단받았다. 그 후로 나는 지난날의 나의 행동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인정’하려고 했다. 내가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알지 못했다. 내가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졌다. 타인에 시선에 신경 쓰는 정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기 시작했음에도 한 달 정도는 그 깊은 우울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 것인지, 정말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심했다. 우울을 오랜 기간 느꼈기에 스스로 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정말 깊은 우울에 빠져보니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은 그저 얕은 우울에서나 해결되는 것이었다. 일단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오고 나서야 나는 진정으로 내가 나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 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