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신을 속이는 것의 문제점을 자녀에게 이해시키기

by 아남 카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규범은 타인을 속이지 말라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거나 아주 관대하다.


그런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갈라파고스의 거북이처럼 자신이 만든 왜곡된 세상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이런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합리화한 프레임을 통해서 왜곡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 내는 세상을 살아간다. 이런 환상은 정신분열의 단초가 될 수도 있고 마음 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설령 자신을 속이면서 사는 자녀가 있더라도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 이상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자녀의 정신건강이나 마음 병으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마음의 병이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발현 시점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마음의 병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외면하고 억압하면서 자신을 속이면 비 합리적인 마음이 온전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사회도 방치를 하니 부모가 나서서 자녀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한다. 타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의 10%만이라도 자신에게 진솔해야 한다고 자녀에 이야기해 준다면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내적으로 온전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다.


타인을 속이는 것과 자신을 속이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쁠까? 정말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타인에게 거짓말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도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아라"라고 말한 기억은 없는 듯하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자신을 속인다는 말의 의미를 먼저 짚고 넘어가 보자. 내가 나를 속인다는 말이 불편하고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를 속인다는 말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자신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경우와 자신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이다.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자기 합리화'가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즉 자신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비합리적인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기 합리화로 인해 자신을 속이는 일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날 수 있음을 유념하면서 글을 읽어보자.

먼저, 타인을 속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타인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면 사회적 평판이 훼손되거나 법에 따라 대가를 치르면 된다. 법을 조금만 알고 보면 그 대가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법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이 법을 어기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자신에게 심각한 해악으로 다가온다. 물론 자신을 속인다고 사회가 국가가 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는 것의 해악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녀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은 어떤 해악이 있는 걸까? 자신을 속인다는 의미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결핍과 욕망을 가지고 산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은밀한 결핍과 욕망을 자신에게 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를 속이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이런 왜곡된 자기 합리화 기준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의 일부가 된다.


이때부터 문제는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세상이 아닌 왜곡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정상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온전한 세상이 아닌 왜곡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아주 손쉬운 이해를 위해서 고부갈등을 생각해 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 사랑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아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도 이런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신의 이런 욕망을 인정하면 왜곡되지 않은 아들 부부의 일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면 아들 부부의 일상을 왜곡하게 된다. 아들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하면 '여우 같은 며느리가 자신과 아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어쩌다 아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금지옥엽 아들을 머슴 부리 듯하는군'하고 상황을 왜곡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내적 욕망을 다른 방법으로 자기합리화하면서 정상적인 세상이 아닌 온전히 왜곡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 가장이 있다. 가장은 자신의 결핍을 솔직하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난한 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투기꾼과 부정 축재를 한 사업가와 위정자의 탓이라고 자신의 세상을 보는 창(프레임)을 왜곡한다.


이제 가장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이런 부패한 자들 틈에서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지킬 수 있음에 뿌듯해한다. 이런 왜곡된 뿌듯함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전파시킨다.


최근 한국 사회의 자기 합리화 폐해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자신의 세상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은 30~40년 전 세상을 꿈꾼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극단적인 체제 전환을 꿈꾼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단의 젊은이들은 부모를 흙수저라 부르고 국가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면서 부모와 국가에 화살을 돌린다. 자신이 매력 없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단의 MZ 세대는 상대편의 젠더를 무차별 공격한다.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자기 합리화는 세상을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고 간다.


이 문제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흘러가면 가족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가 위험에 빠진다. 부모와 자식이 보수와 진보로 갈려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할 수 있다. 자식이 자신의 무능을 흙수저 탓하면서 부모를 원망할 수 있다. 누나와 동생이 서로를 공격하는 젠더 갈등도 만만치 않다. 모두 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자기 합리화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부모들부터 냉정한 자기 점검을 통해 자기 자기 합리화에 빠져있는지 확인해 보고 그런 부분이 있다면 점진적으로 바꿔나가자. 자기 합리화에 빠져 발악하는 마음을 가진 노년은 참으로 딱하고 민망하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아스팔트에서 빨리 현실 세계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자기 성숙을 마친 부모들은 자녀와 같이 글에서 언급한 사례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어 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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