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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시간

by 고전을 마시다

난생처음 꼬박 밤을 새웠다. 바싹 마른입에 갈증이 한가득이다. 잠시 눈을 감고 죽은 이들을 헤아렸다. 다신 경험하기 싫지만 직시해야 할 인생의 단면이었다. 처음으로 살인을 목격했고,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의 어둡고 추함을 실감했다. 한 인간의 육체가 그리도 많은 피를 담고 있었다는 것과 영혼이 이승에 지독한 미련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았다. 문득 인간이 이렇게 인간을 쉬이 죽여도 세상은 괜찮을 걸까라고 조금은 우려했다.


그리 많은 피가 대지로러들었는데도 우리를 둘러싼 땅과 하늘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침햇살은 여전히 뿌옇고, 하늘은 회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단을 만들어 밤새 희생된 자들의 살을 정성스레 불태워야 했을까? 우리가 지은 죄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음을 고백하고, 이마를 땅에 바짝 붙이고 손바닥을 싹싹 비벼 용서를 빌었어야 했던 것일까? 온기를 잃은 땅에 뜨거운 피를 골고루 뿌려 수십 년간 일방적으로 착취했던 땅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돌려줘야 하는 것인가? 내가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에 힘이 빠졌다. 동시에 내가 앞서 떠올린 방법들로 세상의 무언가를 바꾸길 소망하기엔 참으로 유치하단 확신도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준 남자에게 가 앞으로의 흐름은 어찌 될 것인지 묻는 것이다. 몸속에 뜨거운 것들을 전부 쏟아낸 채 차가운 바닥에 입 맞추고 있는 자들을 뒤로하고, 난 얼굴이 하얀 남자를 찾아 나섰다. 밤새 일어난 누군가의 고통과 절규는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듯 어떤 이도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두 해째 몇 번이고 뿌린 씨앗은 그 어떤 싹도 틔우지 못했고, 더군다나 뿌렸던 씨앗마저 싹 훑어다 먹은 지 오래였다. 굶주린 이들에게 타인을 향한 관심은 사라졌다. 근방에는 땅에 붙어 다니는 것이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든 그 어떤 것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들은 전부 굶어 죽었거나 잡아먹혔다.


어둠을 틈타 심판받은 인물들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떠한 인기척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많은 피를 뒤집어쓴 그 남자는 과연 어디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적절한 장소가 안 떠올랐다. 마을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얻지는 못하리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피곤한 몸을 뉘일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무언가를 놓친 건 아닐까 란 두려움이 엄습했다. 심장은 다시 두근두근 요동쳤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하고 싶어 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들 그 어떤 미약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면, 나란 인간은 대체 뭣 때문에 숨 쉬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아무에게나 호소하고 싶었다. 미미한 역량을 지닌 주제에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짊어진 교만한 놈이라는 호통이라도 떨어지면 시원하련만. 산자 가운데는 그 누구도 내게 쉽사리 답을 내려주진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간절히 기도한 적 없던 내가 또렷한 육성의 응답을 기대하다니, 난 파렴치한으로 손가락질받아 마땅했다. 그럼에도 난 기댈 곳이 필요했다. 한때는 강제로나마 한 달에 한 번 들렸던 그곳, 거기서 울려 퍼진 음성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영혼을 타락시킬 목적이었는지, 자기 자신을 위한 열정이었는지 모호했던 바로 그 장소. 나는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유독 문을 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마치 내게 어떤 신호라도 보내주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찾아온 자를 환영하는 소리이거나, 필요한 순간에만 자신을 찾아온 간사한 자에게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찾느냐는 꾸짖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 그 음성의 계시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 공간의 맨 앞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기대어 앉아있다.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했지만 난 그들의 대화에 때때로 웃음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착각하여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안정과 해답을 구하러 온 자리에서 난 호기심만 잔뜩 일으켰다. 답을 구할지도 모른다는 설렘은 내게 충분한 인내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잠시 대화가 멈췄다고 여겨진 때, 나는 그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서 난 여전히 앞을 향한 시선을 유지한 채 마음을 편히 내려놓은 한 사람의 표정을 보았고, 그 옆에 지그시 감은 눈으로 상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또 다른 사람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무나도 그리웠던 사람의 포근한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인 표정이었다. 문자 그대로 행복하다는 감정이 얼굴에 묻어나 있었다.


"그는 잠들었나요?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모조리 끝낸 사람처럼 평화롭군요. 나는 당장이라도 그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는 언제쯤 깨어날 것 같습니까? 나도 너무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에게 답을 듣기 전에는 결코 잠들 수 없습니다. 물론 그가 고단하단 걸 이해 못 하는바 아니지만 이 가련한 사람을 위해 잠시나마 그의 단잠을 깨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리는 것을 알면서도 내 본능이 그녀에게 무례한 요구를 정중히 했다.


"글쎄요, 그는 아마 꽤 오랫동안 잠들 겁니다. 이십 년이 넘게 제대로 잠을 못 잤거든요. 낮에는 늘 남들의 웃음을 사려고 온 힘을 다해 슬픈 몸짓을 했건만 밤은 결코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했어요. 어두운 밤은 오히려 그의 가슴속을 긁고 불태우는 시간이었고 수많은 번뇌와 갈등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괴로운 나날들이었어요. 지새운 밤은 그를 몽롱하게 만들어 밝은 낮에 자기 자신을 잊은 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야 잠이 들었으니 언제 깨어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지요."


난 처음에 그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가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기에 깨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제멋대로 삐져나오는 욕구에 오체는 불편하고 짜증 났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깨닫고 그것을 완수해 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영원의 미소를 보았다. 이윽고 난 보통의 시간으로는 그가 깨어나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다. 불현듯 늙은 미망인의 아들이 눈을 부릅뜬 채로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며 뻗어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은 분명 알지만 시체에게서마저 고귀함과 비천함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필멸자에게 불가피한 숙명이란 말인가? 진실로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정해진 수순이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내일이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예측불가한 삶의 연속에서 꺼림칙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의 기준이라도 정해졌으니 말이다. 비록 그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자신 또한 결국 죽는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 불변의 목표지점 사이에 무엇을 채울지를 고민하는 게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도리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알고 보니 무지였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우리가 한 인간의 죽음으로 인식한 상태가 알고 보니 삶의 또 다른 형태였다면? 단지 숨을 안 쉬며 모든 생체활동을 중단한 몸이 일정시간이 지나 썩어 내릴지언정, 특별한 조건을 갖춘 흙에 적당한 깊이로 매장되어 뼈만 잘 보존된다면? 우리가 땅속에 딱딱한 씨앗을 뿌리고 잘 돌보면 그 안에 깃든 생명이 껍질을 뚫고 나오듯 인간의 뼛속에 잠자고 있던 생령이 그것을 부수고 나와 다시 육신을 갖게 되고 대지의 온기에 힘입어 몸이 문드러지기 전 삶을 기억해 낸다면? 아니 전생의 기억은 깨끗이 잊은 채 자신이 땅속에 스며들기 전 생생했던 육체로 운명으로 지워진 역할을 완수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에 대한 기억만 선명하다면?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깨닫고 그 임무를 완수한 사람에게만 다시 고운 흙을 헤치고 나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더 이상의 죽음은 없으며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라면? 반대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마치지 못한 자는 분통함에 몰두한 나머지 누군가 그 깊은 무덤에서 파내어주지 않는 한, 매장된 채로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면? 내 가정(假定)이 단연코 허무맹랑하다고 누가 감히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단단한 씨앗일수록 그 속의 싹이 깨어나기 오래 걸리는 법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훨씬 단단한 뼈는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죽음이라 오해한 상태에서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산 사람이 미처 목격하지 못할 정도의 아득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차례차례 무너졌다. 그러나 결국 우린, 죽음 또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맞이한다. 그 이후 부활의 기로에 서든 아니면 내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지든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완수해야만 한다. 그래야 영원의 미소를 띠건 부활을 하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이 가능하다.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한 영혼이 다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렇기에 뼛속에서 돋아난 육신이 형태를 갖췄다 해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어차피 다시 태어난다 해도 주어진 책임을 다 해내지 못할 거란 불신이 들면 아마 숨을 들이마시길 포기할 것이다. 부활의 조건을 전부 갖춘다 해도 결국 스스로가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몸뚱이는 다시금 사그라든다. 망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난 이미 숨이 멎은 이 남자를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땅에 묻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 발칙한 상상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혀질 테니.


한 동안의 사유를 마친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길 우리는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라 말했지요. 이제부터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에게 물어보려 했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 같군요. 설령 그가 깨어난다고 해도 내게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리 만무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이 금발의 여인은 내게 곁에 앉으라며 상냥히 권했다. 수수께끼 같은 말에 인내심은 바닥났다. 그냥 서 있을 테니 얼른 정답만 짧고 간결하게 알려달라 재촉했다. 그녀는 죄인의 후손이기에 부끄러움을 온전히 겪기에도 부족하거늘, 하물며 고결한 사명을 이을지도 모를 내 삶을 어찌 함부로 규정하겠느냐 말했다. 자신이 전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알고 있는 이 마을의 전말일 뿐이고, 그 사실을 통해 내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였다.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살펴보니 모진 삶이 선사한 잔주름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단 하룻밤의 충격에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동정한 내가 한심했다. 그녀는 내게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참을성을 발휘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자세를 바로 했다.


"벌거벗은 죄인들은 수치심을 피하고자 깊고 깊은 이곳에 자리 잡았어요. 우리의 할아버지, 르 뱅살 백작은 이 마을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신실한 죄인들의 도피처라 했지요. 그는 어떤 순간에도 살아갈 여지는 반드시 존재한다 굳게 믿었습니다. 참으로 강인한 분이셨지요. 하루동안 잠자는 시간보다 고되게 일하는 시간이 더 긴 탓에 사람들의 일상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신분이 갖는 권위를 이용해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들었습니다. 가장 적게 먹으면서도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자 마을사람들은 그 어떤 불만도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첫 해는 마을이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불안에 떨었지만 두 번째 해부터는 희망이 일었습니다. 황량한 빈 터에 집이 들어섰고, 황무지와 늪지대에 밭이 생겼습니다. 울타리에 들어있는 가축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세 번째 해부터 드디어 일하는 시간보다 잠드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머물렀던 터전과 소유했던 재산을 모두 잃었을 때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삶에 필요한 것을 위한 부단한 헌신이 몸에 영혼이 붙어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일깨운 셈이지요. 회복에 필요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고, 그 불안한 빈 공간을 현명하게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이끌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겐 입에 들어갈 음식과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지붕, 부끄러움을 깨닫지 않도록 맨 몸뚱이를 가릴 옷가지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 매번 강조하셨어요.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에서 비롯한 일 할 이유를 꽉 부여잡았습니다. 덕분에 그 불안한 공백은 삼 년 만에 안정감을 찾았고, 그제야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방법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신에 대한 믿음만은 단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노라고, 벌을 받아야 함은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하늘이 정해준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결코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됨을 기억했지요.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의지가 녹아든 여섯 가지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조각칼로 파내어 마을의 한복판에 꽂아놨죠."


나는 삼십 년 넘게 법이 새겨진 나무판을 본 적이 없다. 이 마을에 그런 것이 존재했다는 얘기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마을의 법은 아홉 또는 열 가지이다. 내게 여러 궁금증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알맞은 답을 해주었다.


"지금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법과는 약간 다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법은 몇 개이죠?"


아무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법이지만 나는 마을의 법을 술술 열거할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단어 한 마디와 한 구절을 읊을 때마다 주저했다. 거기다 한 가지 의문이 날 붙잡았다. 법의 순서에서 첫 번째라는 구호는 건너뛰고 두 번째부터 언급되지만 그 이유를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불현듯 그 배경을 아느냐 물었다.


"그 첫 번째 법은 지난 밤새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의해 지워졌습니다. 바로 '이 마을에 거주하는 그 어떤 사람도 이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데 제약이 될 만한 법을 제거한 것이지요.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그 팻말을 뽑아 태워버렸지요. 짧은 기간 동안, 법은 입에서 입으로 그대로 전해졌지만 오래가지 못해 사람들은 정확한 내용을 잊었습니다. 각자 다르게 알고 있는 법은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쐐기라도 박듯, 마을 사람들이 감히 법에 대해 함부로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자신들이 유리할 대로 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불가침 한 권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던 열 번째 법을 추가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법을 자신들이 감히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바보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여섯 개의 법' 그것만으로도 이 마을은 이십오 년을 나름의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매 월 삶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나누기 위한 집회를 열었지만 그건 결코 강제성을 띄지 않은 자발적인 행사였어요. 사람들은 늘 밝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마을에는 안정과 질서를 부여했지만 반대로 할아버지의 가정은 무너져만 갔습니다. 유일한 아들은 더 이상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한 대가로 숨어 지내는 삶에 순종하길 거부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완전히 이해시킬 수도 또 다른 길을 제시할 수도 없었어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짧고 마을의 지도자인 자신의 책임감과 그것을 이어야 하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할아버지를 강압적이고 무심한 아버지로 만들었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이 마을을 떠나야만 했지요. 아들이 이 마을을 떠났을 때 할아버지는 단 하루만 슬픔에 잠겼었고, 그다음 날부터는 그 어떤 동요 없이 자신의 평소 역할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느닷없이 불어닥친 찬 바람에 할아버지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겨우 숨만 쉰 채 자신의 몸뚱이를 자리에서 일으키지도 못했지요. 그 강인했던 인간은 회한을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병석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공평한 몫을 나눠갖고, 동등하게 일하던 마을은 자신들의 태생은 다르다고 주장한 자들에 의해 서서히 바뀌어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뿌리내리게 했던 것들이,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더라면 단단히 뻗어나갔을 그 건전하고 건강한 덕목들이 성장을 멈췄지요. 추악한 인간들은 자신들끼리 이것저것 특별한 역할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지위를 부여했어요. 마을을 발전시킬 목적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도 이룩하지 못한 허깨비 같은 것들뿐이었지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그들은 일곱 번째 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신들의 결정이 곧 이 마을을 위한 판단이고 헌신이라는 망령된 말을 해댔습니다. 그리고 빈약한 근거를 무마하기 위해 그것을 지키지 않을 시 가해질 처벌부터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마을을 이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녹록지 않은 법이지요. 사람들은 서로 모여 마음속에 퍼져가는 불안감과 불길함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리송했던 것들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의도가 드러나고 구체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이었지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게 바로 여덟 번째 법이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넓이와 깊이는 결코 가늠 키 어려우니, 그걸 시작조차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조차 몇몇의 기분에 따라 정해지는 판국에 누가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려 했겠어요. 그렇게 마을은 그들의 의도대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어요.


생기를 잃어가던 마을에 겨우내 내린 눈이 녹자마자 할아버지의 강인함을 얼굴에 그대로 이어받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십오 년 만에 마을로 다시 돌아온 아들은 작은 수레를 끌고 왔는데 거기에는 쌍둥이 남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맨 처음 쪼그라들 때로 쪼그라들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갔고, 그의 피를 이은 쌍둥이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뿌리내리려 했던 사명을 이어가겠노라 그의 귀에 맹세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거대했던 남자의 삶은 막을 내렸고, 그의 의지를 계승한 남자는 뻗어가길 멈추고 썩어 들어가는 뿌리의 끝을 잘라내고자 했습니다. 그 남자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 르 막시마 쿠르파입니다."


잠시 생긴 틈을 기회 삼아 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말하는 이가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듣는 이 또한 적지 않게 힘든 법이다. 이내 난 들려오는 음성을 상상하는 것을 잠시 관두고 나만의 것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지상에 지옥의 절규를 퍼지게 하고 불길 속에 칼을 꺼내어 악을 정화하고자 했던 남자, 죄악을 깨닫고 부끄러운 나머지 인간의 세상을 떠나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죄인들, 그리고 함께 한 이들을 끝까지 이끈 인도자, 그가 맺은 열매가 어떤 씨앗을 품고 있었는지까진 모르나 그야말로 이 세계의 흐름을 만들어낸 거인임은 분명했다.


사람은 죽음 이후에 우리가 어렴풋 이해하고 있는 존재에 의해 삶의 순간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에 대해 심판받을지 모른다. 심판의 기준은 정확하지 않지만 우리는 최대한 그것에 어긋나지 않도록 추측하며 조심스레 살아간다. 그게 틀렸다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러 자신이 들어가야 할 문을 스스로 선택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순식간에 인간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압축하여 훑어볼 것이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 내뱉은 말, 품은 속마음, 자신을 통째로 학습하고 복습한다. 지난 일은 사실과 진실로 분간되고 다시 관념으로 고차원화 된다.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건 한 마디로 추려지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의 별처럼 수많은 것들을 품고 있고 그것의 삶은 폭발하고 식어가는 걸 반복하는 우주처럼 변화무쌍할진대 어찌 간단히 결론지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잡하고 무질서했던 천체도 결국 제 자리를 찾고 형체를 갖추듯 자신이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마땅한 인간인지 결론짓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돼서야 자신에 관한 결정을 내린 다는 것은 밀물에 맞춰 모래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아귀든 마음속이든 미리미리 삶의 의미를 담아두지 않은 인간은 최후의 진술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린 순간의 삶 속에 영그는 소중하고 뿌듯한 기억을 잘 쟁여놔야 한다. 자기 자신이 납득할만한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한 인간이 무딘 낫으로 한 인간을 해쳤다. 그리고 그 손에 쥐어진 빵 한 조각을 훔쳐 달아난다. 피를 뿜는 자의 곁에 얼뚱아기가 울어댄다. 갈등하는 인간의 발걸음은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가슴에 아기를 품고 도망친다. 한참이 지난 뒤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 한 조각을 입의 온기로 호오 불어 아직 볼이 토실토실한 아기의 입에 넣어준다. 아기는 행복해하며 오물오물 야무지게도 그것을 받아먹는다. 감격의 눈물이 흘러넘친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지켜 온 아이를 어느 날 한 인간에게 팔아넘겨버린다. 아이는 울고불고 자신에게 매달리지만 빵 몇 덩이에 매몰차게 뒤돌아선다. 자그마한 짐 한 덩이를 딸려 보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자신이 받은 빵 덩어리가 전부 담겨 있다. 너무나 그 아이를 사랑했지만 클수록 자신이 낫으로 찌른 인간의 얼굴을 닮아갔기에 견디기 힘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으나 단 한 명을 해치지 못한 자신, 그는 죽음 직전에 어떤 문을 선택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만큼은 자신이 천사의 재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옥불에 떨어져 마땅한 인간 같기도 할 것이다. 후회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너무도 많은 후회가 일어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로 향하는 힘겹게 쌓아 올린 계단이 무너지면 다시 쌓아 올린다.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번뇌를 반복한다. 그러나 뜨거운 것이 식는 것처럼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천국에 갈 자격이 있을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겨우 마무리된걸 눈치챈 그녀는 마을에 돌아온 탕아가 어떻게 백작가의 의지를 이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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