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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해서

Somewhere, Slovenia

by 난나 Nov 30. 2024

버스 안 잠들어버린 누군가를 위해 한쪽 어깨를 톡톡 두들겨주는 마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웃어주고, 손을 흔들어주고, 앞으로의 안위까지 걱정해 주는 말 한마디 보태주는 배려,

공사 중이라 진입을 막아놓은 도로 앞에 처절하게 좌절하는 낯선 이방인에게 본인의 차를 따라오라고 해놓고선, 15분여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슥슥 지나더니 한 교차로 코너에서 운전자석 창을 열고 팔을 쭉 뻗어- 이제 왼쪽으로 가면 된다고 저리저리 흔들어주는 손짓,



자신이 애쓰게 구워 먹던 생선의 살점을 한 점 떼어 선뜻 건네줄 수 있는 친근감,

본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도시에 들러준 누군가의 사정에 심히 귀 기울여주고 잠자리, 추위를 먼저 걱정하고 생각해 주는 온기,

어느 호텔 가는 길을 묻자 주차를 다 해놓고도 다시 차에 올라타 그 문 앞까지 데려다줘야 차라리 마음 편한 고운 무엇,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이 손수 꺾어 소중히 들고 가던 꽃 한 송이를 망설임 없이, 크고 진한 향기 듬뿍 담아 불쑥 내밀어 주는 손길,

잘 모르겠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가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난 후 어느덧 쫓아와 정처 없이 걸어가는 누군가를 불러 세워, 방향을 틀어주는 훈훈함,

“당신의 옷이 맘에 들어요!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을까요?” 묻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팔고 있던 물건들을 내밀어 흥정을 하자는 모션 대신, 흔쾌히 달려와 들이대는 렌즈 안으로 서슴지 않고 입장해 주는 몸짓.     



우리는 길 위에서 이처럼 「무엇」인가를 시시때때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았고,

그래서 내 마음은 마구 부풀었으며 때로는 넘치기도 했다.


늘 우뚝 서있거나 수북이 깔린 멋진 광경을 목표 삼아 많은 길을 사람들에게 물었고, 또 그 길을 달렸고, 마침내 어느 순간 그 길 마지막에 다다르곤 했지만-

 

결국 우리가 그 길의 시작부터 끝 그 모두를 앞으로도 마음에 새겨놓고 어루만질 수 있는 건, 이처럼 차곡차곡 채워진 「어엿하고, 향긋하며, 반들거리고 윤이 나는 무엇들」이 한데 모여 내 기억 속에서 계속 꿈틀거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달력 속 사진 한 장 추억해 내듯 물기 없는 건조한 말투로 「참 아름다웠지.」라고 툭 하니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숨결을 발라 펄떡펄떡 뛰는 활어 같은 두근거림으로, 훗날 언젠가 「그 길이 참....... 그립다.」라고 아스라이 말할 수 있는 이유.      



바로 이 「무엇들」일 테니.




<여행의 이유>에 대해서.

어느 할아버지가 주신  「무엇」, 슬로베니아의 어딘가에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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