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terbrunnen, Switzerland
2001년 겨울.
난 유럽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복에 겨운 호강이라 여겼다.
그래서 무조건 돈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이 차고 넘쳤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경비를 줄이는 방법은 오로지 덜 먹는 것뿐이었다.
맨날 성당이나 박물관 앞 돌계단에 앉아 얼어붙은 바게트로 끼니를 때웠다. 그건 흡사 기아체험과 다름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칠 만큼 좀 독했다. 그런 상황이니 유적지나 굴지의 미술관 관람 이외에 다른 여가를 꿈꾸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은 거였다.
2004년 여름.
용무가 있어서 유럽을 또 올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오는 것이니 모든 일정이 끝나면 다시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예전 기억이 그다지 향긋하지 않아 이번에는 제대로 먹을 것도 먹고, 즐길 것도 즐기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두 털었다. 최대한 절약은 하되 꼭 한 번쯤은 근사하게 식사도 해보리라.
로얄석이 아니더라도 런던에서는 그 좋아하는 뮤지컬 서너 편, 베로나에서는 오페라도 보리라.
그리고 기회가 되면 비용이 얼마가 들든 반드시 스카이다이빙도 해볼 테다.
난 사실 어릴 적부터 겁도 많고 소심한 아이였다.
밤에 혼자 깨있는 것이 무서웠고, 혼자 다니는 것도 상당히 꺼렸었다.
그런데 난 이제 제법 커서 혼자 여행도 잘 다니고,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영화도 잘 본다.
게다 이제 먼 이국땅에서 감히 이런 것까지 꿈꾸려 한다니 나도 내가 놀랍기만 하다.
쳇, 놀이 공원의 열기구만 타도 다리가 후들거렸던 난데, 나도 내가 참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각오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철저히 나를 이겨보는 것」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해냄으로써 앞으로의 내 삶에 부디 자신감으로 충만하기를...
그렇게 나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보는 것.
2004년 여름, 3년 만에 다시 인터라켄(Interlaken)을 찾은 후 역 앞에서 예약이 가능한 지 전화했다.
안타깝게도 지면 위의 내겐 너무도 적요하고 화사한 날이었는데 상공엔 바람이 세서 오늘은 힘들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첫 번째는 그렇게 시도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스위스에서의 여정이 끝나버렸다.
며칠 후 근처 나라를 도니라 상당히 꼬인 경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로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인근 마을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으로 옮겨가... 끝내 하늘을 날았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꼭대기가 보이는 지점까지 올라가 내 등 뒤에 붙어있는 인스트럭터와 뛰어내린 것이다.
기분이 어떨까 몹시 기대했었지만 첫 번째 낙하산을 펴기 전까지는 매서운 공기의 저항과 가늠할 수 없는 하강속도로 인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목이 막혀왔다. 괴로웠다.
그러나 난 곧 휴식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하늘 한 중간에서... 붕 뜬 채로... 꿈만 같았다.
바람은 잦아들었고 내 눈앞의 모든 건 끔찍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내 등 뒤의 인스트럭터는 그런 나를 데리고 앞 구르기도 하고 두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춤추게도 하였다.
난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미칠 듯 희열했다. 그리고 세상 무서울 거 없이 열광했다.
내 두 발아래에서는 파란 하늘과 가늘게 찢어진 구름을 허리에 걸치고 하얀 눈의 모자를 덮은 총천연의 마을이 마치 베틀에 매달려 수려한 수라도 놓이는 중인 듯 이리저리 가붓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난 사전 교육받은 대로 무사히 풀밭에 엉덩이로 안착할 수 있었고, 두 팔 벌려 그와 기쁨을 나눴다.
그러던 그 순간 그가 엄지를 치켜들며 커다란 소리로 나를 향해 던지던 말. “GOOD JOB!!!"
그리고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2010년 9월. 내가 이곳에 또 있다.
그런데 수년 전의 이곳을 또다시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때의 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제는 그야말로 그때의 내가 죄다 허상이 되어 홀연히 날아간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물론 그 간의 세월사이로 그 기억이 흐려지고 퇴색된 걸 수도 있다. 부서지고 사라진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거 말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지도 모른다... 난 그때보다 겁쟁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겐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난 30살쯤 되면 무엇이든 당당하고 찬란한 삶을 꾸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상당히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오히려 그때의 내가 더 대담했다고 느낀다. 겁 없이 하늘을 향해 뛰던 그 시절의 내가 어쩌면 더 용감무쌍했다고 느낀다. 분명히 난 이제 30살도 넘었고, 그때와 비교해도 6살이나 더 먹었다. 즉 물리적으로는 조금 더 어른이 된 셈이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난 더 강해져 있어야 옳다. 주저하는 것이 더 없어져야 맞다.
그런데 난 지금 무엇을 결정하려면 덜컥 겁부터 난다. 걱정부터 된다. 그래서 늘 마음도 오락가락하다.
난 지금 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 혹 도리어 더 철이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이젠 정말 뭐든 안주해야 하지 않는지. 그래야 맞는 건 아닌지.
이렇게 많은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니 뭘 하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내 머리는 자꾸 시간이 촉박한 거 같아 경적이라도 울리고 싶은데, 그럴수록 내 마음은 그것도 몰라주고 계속 빨간 불을 켜고 방해를 하니 더 그렇다.
그렇게 난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용단하고 실천하는 게 더 더뎌진 인간이 된 것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늘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큼은 있다. 이처럼 부대끼는 생각 속에서 나일 먹어도 늘 가슴속에 꼭 쥐고 있는 마음 하나는 있다
“그때는 빛나는 「청춘」이란 이름만으로도 더 많은 것을 했어야 했어. “라고 느끼는 지금의 내가 있듯이.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호기롭고 담대해 보여 대견한 마음도 들듯이.
언젠가의 내가 또 지금의 나를 향해 “그때 그냥 그걸 했어야 했어. 일단 해보긴 해야 했어.”라고 느끼는 순간이 필히 또 올 거라는 걸. 그런 걸 생각하면 난 아직도 청춘으로 넘실거릴 수 있다는 걸.
그렇기에 언제든 다시 용기백배할 수 있다는 걸.
가는 길이 비록 조금 쓸쓸하고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할지라도, 그저 내 방식대로 내 삶을 앞으로도 꿋꿋하게 살아낸다면, 적어도 언젠가의 내가 지금의 나를 향해 또다시 있는 힘껏 끌어안고 뿌듯한 미소를 지어주고 싶을 거란 걸.
이제 나는 안다. 나이가 드니 더 알겠다.
저 하늘에서도 그랬잖아.
두려워서 고민했지만, 쿵쾅거리는 가슴 때문에 올라가는 내내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그래서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단 뛰어내려보니까 할 만했잖아.
잠깐 힘겨운 시간 지나니 중간에는 평온하게 숨도 고를 수 있었고,
파란 하늘에서 흥겹게 스텝도 밟을 수 있었잖아.
그리고 내려와서는 엄지를 치키며 누군가 내게 소리쳐주었잖아!
“GOOD JOB!!!”이라고!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자각에 대하여.
스위스, 라우터브루넨에서.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