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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수행

Morocco

by 난나


안타깝지만 그녀는 말을 잃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 모아 「이리로 가세요.

이 방향이 맞습니다.」라고 힌트만을 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달빛 같다.

행여 어둠에 길을 잃을 까봐 나의 걸음에 발맞추며 앞을 밝혀주는 것 같으니까.


어쩌면 충직한 안내견과 같다.

우리가 혹여 길을 잃을까 잠자코 앞장서 온몸으로 가야 할 곳을 일러주니까.


아니 실은 좋은 스승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실전은 오롯이 우리에게 맡기면서, 가끔씩 큰 표지만을 동그마니 던져주니 말이다.



그녀가 누구냐고?

소개할게.

바로 우리 GPS-네비양.


눈치챘겠지만 그녀는 하루아침에 말을 잃었어. 아프리카로 넘어오면서 실어증에 걸렸거든.

당신은 우스울 수 있겠지만 그녀에겐 슬픈 이야기야.

그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우리에게도.


사실 언변하나로 먹고살았는데 말을 잃었으니 얼마나 깊은 실의에 빠졌겠어.

남은 건 오로지 삼각형으로 생긴 모난 몸뚱이가 다인데 충분히 좌절했을 거야.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정이 많았나 봐. 자기도 힘들 텐데 우리 곁을 한사코 떠나지 못하더라고.

그러다 위기의 순간 힘을 보태주더라고.


「OK! NO! 조심해! 조금 틀어! 조금조금 더 그대로 가!」하고 알려주더라고.


자신에게 남은 에너지 하나까지 모두 소진해 가며 그렇게 얼마든지 우리에게 나침반이라도 되어주겠다며...

그녀의 손으로, 아니 뾰족한 코가 달린 얼굴로, 어쩌면 온몸을 다해서.


참 고운 마음씨지. 참 갸륵한 마음씨야.




나도 너 같은 마음씨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말 어떨지 모르지만 나, 너를 닮으면 좋겠다.


누군가 막막한 길 위에서 힘들어할 때 나지막이 두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


언제든 그 마음씨 한 움큼 선뜻 꺼내 보여줄 여유, 늘 가질 수 있는 사람.





닮고 싶은 <마음씨>에 대하여.

모로코에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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