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나의 9수 이야기

by 뚝이샘

나는 특별한 학교의 교사이다.


나는 교사가 너무나 되고 싶어서 9번의 시험을 본 장수생이었다.

아이 유치원 가기 전까지 합격하자며, 아이 낳고 시작한 공부를 10년이나 했다.

현명하지 못해 내가 얼마큼 더 해야 합격할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는 어리석은 수험생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전공서적이 꼭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가 대학 서적을 읽는 느낌이었다.

초수시절, 스터디를 구하기도 참으로 어려웠다.

겨우겨우 구한 스터디에서 나를 잘 알지도 못했던 스터디원 친구가 말한다.

"그것도 모르면서 임고를 한다고요?"


난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아니면 악으로 깡으로 "내가 저 자식은 꼭 이긴다."는 생각으로 공부했어야했다.


마음이 여린 나는 그날 울면서 남편에게 말한다.

"그것도 모르면 임용 못하는 거래.".......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어리석다.

임용이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아이 낳는 것보다 어려우랴~ 했는데, 나에게는 아이 낳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나의 실력의 향상과 상관없이 나는 재수생, 삼수생이 되었고,

나의 실력이 향상된 것도 아니었는데 스터디 구하기는 참으로 수월했다.


삼수생이 될 때까지도 전공의 내용조차 잘 파악되지 않았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형 이과생이었다.

암기과목은 어찌어찌해내지만, 수학적 원리를 파악하여 깨우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이 왜 수학을 어려워하는지 이때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구구단도 모르는 아이에게 미적분을 풀게 하면 풀 수 있겠는가?

나의 마음이 그랬다.


우리 딸을 온전히 봐주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힘든 엄마를 도와주는 동생들, 그리고 남편, 그리고 시댁식구들...


내가 그 사람들의 시간을 모두 빌려 쓰고 있는 상황에서 임고를 그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나의 꿈을 지켜주고자 헌신적으로 뒷받라지 하는 엄마와 남편에 대한 배신이었다.

합격해야 끝날 일이었다.


그렇게 난 사수생이 되었고, 이때쯤 되니 전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겐 드라마틱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다만 조금 전공이 보이기 시작한 대학 졸업생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임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비공시적으로 간단한 일과 병행하면서 임고를 계속 이어간다.


이때부터는 나의 오기다.

꼭 되고 싶었다. 이렇게 내가 버티고 버티는데 꼭 합격해서 나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10%가 합격하는 임고판에서 내가 꼭 합격해서 합격의 아이콘이 되고 싶었다.

합격수기를 쓰는 날을 꿈꾸며 혼자 조용히 합격수기를 미리 쓰기도 했다.

5전 6기 뚝이샘, 6전 7기 뚝이샘....

이렇게 한 해, 두 해 숫자만 늘어날 뿐 나는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9번의 시험을 치른다.

마지막 시험에선 인천 서해 5도를 지원했다. 불합격이 두렵지 서해5도 지역에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합격해서 아이와 함께 서해5도 주민이 될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합격만 하라고, 합격해서 같이가서 살자고 하셨다.


그렇게 가족의 힘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극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불합격했고, 나는 섬도, 학교도 아닌 원래 그대로의 자리에 있었다.


무서웠다.

이제 뭐 하고 살지....

가족들은 어떻게 보지....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지....


정말 많이 무서웠다.

매년 연초에 하느님께 "올해는 꼭 합격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연말에 발표가 나면 "하느님 저를 버리셨나요?"라고 하느님께 묻는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다.)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인데, 하느님을 원망하며 많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과 나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준 남편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힘을 내야 그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불합격을 말할 때마다 늘 한결같았다.

"합격했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 떨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더 많이 잘 먹고, 더 많이 웃어. 평소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멋진 남편 덕분에 힘을 냈다.

나에겐 더없이 고마운 사람, 늘 한결같이 우리 가족을 지켜준 슈퍼맨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와 수 없이 많은 곳에 이력서를 썼다.

이력서를 쓰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다.

나의 지난 10년의 시간이 임용으로 가득 차 있어 이력서 한 줄 한 줄 채워 나갈 경력이 없었다.

임용의 시간들은 이력서의 어느 한 줄에 쓰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쓴 끝에 특별한 학교에 합격했고,

나는 그 특별한 학교에서 멋진 교사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임용을 끝낸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 한 적 없었어?"


남편은 말했다.

"원없이 공부시켜 준다 했잖아. 원없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일을 한 것뿐이야."


내 할일을 했다고 표현하는 이 남자, 정말 멋진 남편이다.


남편과 가족 덕분에 그 긴 시간을 견뎌낸 나는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학교에서 아주 잘 적응하며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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