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역까지만 좀 테워 줘.
아내가 말한다.
그러자.
한창 지하 주차장 보수 공사 중인 터라, 아내의 차는 단지 내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내가 먼저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잠시 후 아내가 뛰어와 차에 올라탔다. 아내는 차 안에서도, 화장을 했다. 시간이 급한 모양이었다.
활리, 친한 친구한테 손절 당했대.
아내가 말한다.
손절?
응.
누구한테?
내가 물었다.
오빠도 알 만한 애야. ---- 집 딸내미 있잖아.
아, 그 친구... .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무슨무슨 가게를 하는 집 딸내미가 내 딸과 친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걔가 왜 활리를 손절했지?
아내가 대답한다.
친구들 몇몇이서 공유하는 메모장이 있는데 거기 활리가 걔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썼나봐.
저격? 무슨 저격?
그 아이가 친구들 남친하고 친한 척하는 거에 대해서, 보기 불편하다는 내용을 활리가 적었대. 활리가 최근에 하루이틀 정도 잠깐 사귈 뻔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 남자애랑 또 친한 척하면서 다가가고 그랬나봐. 활리로서는 그게 좀 보기 싫었던 것 같아. 내 생각에는 활리가 좀 오버 한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다른 친구들 다 보는 공간에 누구인지 뻔히 알게 그런 글을 쓴 게 맞는지... .
그렇구나.
나는 대충 사건의 요지를 파악했다.
활리가 많이 의기소침해 있겠네?
응. 그게 어제까지의 상황이야.
아내가 말했다. 어제 오후, 나는 교회에 다녀와 둘째 딸내미와 자전거를 탔고, 그 시간에 첫째 활리는 엄마랑 카페에 가 있었다. 사실, 지난 주 월요일쯤, 활리가 아빠 허락도 없이 친구들과 놀고, 밤늦게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나는 외출금지와 카드 반납 조치를 내렸는데, 그것 때문에 활리가 좀 다운돼 있는 건가 싶었다.
활리는 뭐래?
그냥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 친한 친구한테 손절당한 것도 그렇고.
음... .
아내는 신림역에서 내려 역사를 향해 뛰어갔고,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의 의미는 뭘까?
알아가는 것이다, 배워가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시키는 대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한다. 그리고 세상과 타인이 반응하는 것을 수용한다. 그 과정에서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나는 아빠로서, 내 아이가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것이 성장이니, 아픔도 슬픔도 거름이 되리라.
친구의 거슬리는 행동에 대해 나는 너의 그런 행동이 좀 거슬려, 라고 공개적으로 적은 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과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인간의 행동이란 본래 그러하다. 모든 이를 만족시키고, 모든 이를 기쁨으로 이끄는 행동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내가 딸내미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자신의 감각과 감정, 판단에 따라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는 무례한 것이고, 어떤 관점에서는 오지랖일 수 있으나 친한 친구에게 '너의 이러이런 행동이 나에게는 이러이러하게 느껴져. 좀 불쾌해.'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잘못은 해 봐야, 그것이 어디까지 잘못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어야만, 나의 감정과 느낌이 어디까지 표현되는 것이 옳은지, 또 그것이 표현되다면 어떤 방식으로 예리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본능과 직감, 통찰의 영역이다. 흔히 사람들은 그저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일을 피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모함을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면, 친구들끼리 솔직하게 감정을 말하는 것은 큰 틀에서 나는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때로 그것이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거나, 사실 오해로 빚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그러한 과정 없이 성장은 없는 것이다.
티격태격, 아옹다옹.
인간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 솔직함, 대담함, 용기, 이해, 따뜻함, 배려... 이러한 것은 결국 행동으로 드러나고, 품격있는 행동, 올바른 행동이란 사실 전적으로 실패의 결과물이다. 어른의 품격, 말의 품위, 행동의 우아함은 하루 아침에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것을 배워나가는 과정 중에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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