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다. 족발을 사들고. 아내는 아직 퇴근 전이었고. 나는 두 아이를 식탁으로 불러냈다. 작은 아이는 얼른 달려오는데, 첫째는 영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을 소리쳤더니 그제서야 첫째가 천천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풀 죽은 강아지 표정을 하고서.
큰 딸애는 최근 친했던 친구에게 손절을 당했다. 나는 직감했다.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족발을 함께 먹으면서 큰 딸은 거의 말이 없었다. 조금 집어 먹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 버렸다.
내가 안방 침대에 누우니, 큰 딸이 내 팔에 안겨 눕는다. 잠시 뒤 나는 딸애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 아가, 무슨 일 있구나?
물론 나는 이 아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대충 알고는 있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이가 먼저 말을 하도록 기다렸다.
아이는 마치 내가 자기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이 친구와 있었던 일을 죽 설명했다.
"그리고 오늘 학원에 갔는데 나를 손절한 친구가 나만 빼놓고 다른 애들 다 데리고 저희들끼리 편의점을 갔어."
딸이 흐느끼며 말한다.
"그랬어? 이런이런. 우리 딸, 얼마나 슬펐을까?"
나는 딸의 볼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딸이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것이다.
-나의 체험과 유사함을 말해 주기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 다시 확신하기
-삶의 긴 과정을 이해하기
이러한 대원칙은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 적어도 나의 케이스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아빠를 찾는다. 문제가 발생하나 그 문제로 인해 아이들은 더 성장하고 자존감은 높아진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 세 가지 원칙에 입각해 내가 큰 딸에게 말해 준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러하다.
"아빠 생각에 활리는 진실을 말하고자 했고, 친구와의 관계를 더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그 친구는 활리와는 정반대로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활리와의 관계를 좋게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 그렇다면 누가 더 옳은 행동을 한 걸까? 아빠는 활리가 옳은 행동을 했다는 점에 기뻐. 그리고 한 가지. 아빠도 그런 경험이 있어.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가 도리어 관계를 망친 경험 말이야. 그리고 이제까지 살면서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는 걸 알게 됐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진실을 말하려 하기보다는 쉬운 길을 선택해. 문제를 회피해 버리거나 거짓을 말하기도 해. 그러니 활리 역시 앞으로도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될 거야. 아빠는 활리가 설령 어떤 관계를 망쳐버린다고 해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해. 그게 옳기 때문이야. 활리는 탁월한 사람이 될 테고, 큰 사람이 될 테니 소인배처럼 행동해서는 안 돼. 네가 커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지금 겪는 이런 체험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거야."
1시간 가까이 나와 대화를 나눈 딸은 밤 10시쯤 엄마와 산택을 나갔다. 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딸이 엄마와 나가면서 웃는 소리를 들었다. 이 녀석, 기분이 풀렸구나,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큰 딸은 반 친구들과 아침 일찍 교실에서 모여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면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표정이 밝았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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