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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ul 01. 2024

아빠도, 언젠가 죽어?

큰딸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유독 둘째딸이 이런 질문을 종종 한다. 나 역시 그 나이 때,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 생각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어린 나를 벗어날 수 없는 공포감으로 몰아넣곤 했다. 그래, 지금 나에겐 엄마가 멀쩡히 있지만, 엄마 역시 동물이고, 언젠가는 죽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가 없는 삶, 상상할 수도 없었다. 상상하기 싫었고, 상상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삶, 즉 엄마가 없는 삶이란 당시 내겐 그저 없는 삶, 불가능한 일, 떠올리기 싫은 일이었다.


그 공포감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둘째딸이 느끼는 듯하다. 이 녀석, 잊을 만하면 묻는다.


아빠, 언젠가 아빠도 죽어?


응. 죽지.


나는 말한다.


딸은 흐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아빠, 정말 죽어?


이쯤 되면 나는 생각을 고쳐 먹고 아이를 안정시킨다.


아니, 안 죽어. 아빠는 영원히 살면서 제라를 돌볼 거야. 제라 곁에서 제라를 지켜줄 거야.


아빠 불사조야?


응, 불사조야. 아빤 불사조 맞아.


아이는 잠자코 생각한다. 아이가 안정됐다 싶을 때쯤 나는 다시 말한다.


아빠는 제라가 곁에 있으라고 할 때까지 곁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어제도 둘째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끈금없이 물었다.


아빠, 죽어?


나는 말했다.


죽긴 죽는데, 제라가 온전히 혼자 설 수 있을 때까지는 죽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했건만, 나는 이 답이 그리 좋은 답이 아니었음을 즉각 알았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울지 마, 제라야. 아빠, 안 죽어.


내 둘째딸은 일찍 잔다. 왜? 그녀에겐 일찍 잠에 들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다. 그럼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가? 그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기 위해서다. 이 아이, 그런 면에서 뭔가 특별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땐, 그런 식으로 엄마를 배웅하더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아빠를 배웅한다. 벌써 몇 년째다.


하나의 행동은 여러 가지를 암시한다. 나는 이 한 가지만 보고도 이 아이의 특별한 집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집념이 강한 아이구나. 자신이 뭔가 하고자 한다면 하는 아이구나.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달하기 전까지 딸은 현관문을 열고 서 있고, 나는 딸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면서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 아이를 지혜롭게 하옵소서. 건강하게 하옵소서. 탁월하게 하옵소서.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하옵소서.


아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현관문을 잡고 선 채로 작은 손으로 나에게 하트를 그려 보여 준다.


아이의 바람과 달리,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성장하리라. 누군가 죽었을 때, 비통함과 슬픔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을 한 만큼 슬픔은 크다. 우린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슬픔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견여야 할 뿐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기억하며 울고 있을 두 딸을. 그 모습은 안스럽고 슬프다. 나는 그러한 슬픔을 내 두 딸에게 주고 싶지 않다. 동시에, 내가 없어도 나를 생각하며 울어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신은 기쁨을 주고, 동시에 슬픔을 주었다. 그 진실이 참 오묘하다. 기쁨만 주었다면 어땠을까? 너무 큰 슬픔은 주지 않았다면?


그저 더 사랑하고 포옹하고 입맞추는 것뿐.


그래서, 나는 행동한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그러하리라. 신은 결정하고 남은 것은 내가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있는 힘을 다해 내 두 딸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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