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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ul 26. 2024

중2 딸에게 듣는 '데미안'

2010년생으로, 이제 만 열네 살이 된, 큰 딸에게서 데미안 이야기를 들었다. 이 아이는 최근 기말고사를 치렀고, 성적표를 받아들고 왔다.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된 이후 큰 딸은 수학학원(화, 목 저녁마다 세 시간씩)을 빼면 온전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큰 딸과 드라이브를 하는 중에 딸이 묻는다.


카인의 이마에 표식이 있었어, 아빠?


글세, 모르겠다, 카인의 이마에 무슨 표식이 있었지?


내가 물었다.


지금 데미안을 읽고 있는데 거기 보면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만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거든? 그건 신이 강자에게 내린 보상 같은 거라고.


딸이 말했다.


그래?


응. 근데, 카인은 악인 아닌가?


딸이 묻는다.


악인 맞지.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니까. 카인은 아담의 아들로 자기 친동생인 아벨을 죽였어.


나는 말했다.


그럼 신은 왜 카인에게 표식을 주었지? 데미안은 그게 강자에 대한 신의 표식이라고 했어.


꽤 수준 높은 질문이었다. 나는 우선, 기쁨을 행복감을 느꼈다. 내 딸아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세의 책을 벌써 읽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이 아이가 이렇게 수준 높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데 놀랐다. 나는 딸애에게 설명했다.


아빠 생각에는, 카인의 표식이라는 데미안의 말은 이런 의미 같아. 인간은 누구나 강함에 대한 끌림이 있잖아. 예를 들어 활리도, 자기 교실 안에서 공부 잘하는 애, 성적 좋은 애에 대한 끌림, 왠지 모를 아우라 같은 걸 느끼잖아. 그렇지?


응.


우리는 왜 강함에 끌릴까?


그런데 그러한 끌림이 반드시 옳은 감정이란 법은 없어. 예를 들어 전교 1등인데,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나쁜 행동을 즐겨 하는 아이라면 그 아이는 존경받을 아이가 아니잖아. 오히려 비판 받아야 할 아이지. 하지만 우리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떻든 돈만 많으면, 건물만 가졌으면, 의사면, 검사면, 관료면 일단은 부러워하고 보거든. 데미안이 말한 카인 이마의 표식이란 건, 강자에 대한 신의 보상이란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음.....


아이는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딸애는 말했다.


그날, 저녁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 딸애의 기말고사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나는 딸애의 성적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고했어, 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딸애의 지성, 딸애의 인격, 딸애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내가 볼 때, 학교성적이 아니다. 이 아이가 지금 무슨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이 오히려 딸의 내면과 발달 상황을 더 잘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딸애의 잠재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래서, 나는 무척 끼뻤던 듯하다.


이 아이는 분명 올바른 인격을 갖추고 자기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 나갈것이다, 라는 믿음을 나는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을, 내 딸아이도 안다. 이는 아이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신을 믿는 타인이 있다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활리, 더 힘내자 ^^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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