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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Feb 15. 2022

메타버스

메타버스 열풍입니다. 아는 단어가 모두 메타버스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가상공간에서 함께 하기만 하면 전부 메타버스입니다.


메타버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공간입니다. 카페에 가듯이 두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아바타가 모이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메타’버스입니다. 사실 이러한 공간은 PC통신 시절부터 있어 왔습니다. 글자로 표현된 것 등등을 포함하고 시간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유사 이래 이루어진 모든 간접 만남은 메타버스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제 처음으로 하나의 이름을 부여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공간과 방법들을 우리가 메타버스라고 불러 주었을 때, 이들은 우리에게로 와서 메타버스가 되었습니다.


흔히 쓰던 단톡방도 메타버스지만 요즘의 메타버스는 좀 더 열린, 더 다양한 행동과 개념을 가시화시켜 줍니다. 팬데믹으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지 못하자 메타버스가 급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더욱더 늘어납니다.




하지만 결국 메타버스는 그 너머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의 아바타와 너의 아바타가 만났지만 우리가 만났다고 가정하는 곳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만날 수 없습니다.


유정이는 나의 마음 속에서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유정이가 없으면 유정이의 아바타도 없습니다. 물론 내 안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아바타 안에 함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만남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메타버스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주는 것을 가상현실(VR)이라고 합니다. 떠나간 딸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VR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몇 번을 보아도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기술이 엄마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살아갈 힘을 준 것입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자식 잃은 아픔을 알기에 저 만남이 부럽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아픔을 비교하자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다만, 가진 적 없는 것은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상현실에서 누구를 만나든 그건 유정이가 아닙니다. 결국 가상현실에서도 만날 수 없습니다.




아이를 가진 적 없는 부모들이 모이는 '가상현실 메타버스'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부모들은 다른 부모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가상의 자식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마치 플레이어들이 NPC 앞에만 바글거리고, 마을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게임과 같습니다.


물론 좀 익숙해지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자식과 함께 놀이동산도 가고 간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학교를 보내고, 비 오는 날 우산을 갖고 가서 기다리기도 하고, 사춘기와 중2병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아이는 없습니다. 게임  부자, 영웅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끝없이 가상공간에 매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셉션>에서   속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가끔 현실로 돌아오는 사람들처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생존을 위한 약이나 운동처럼 처방받아 오는 곳이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육체와 마음의 빈 곳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다만, 빈 곳을 채워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잃은 것을 찾아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은 채워주지 못합니다.


온갖 신기술들이 괜히 하찮게 보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메타버스니 이게 다 뭐라고. 심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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