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유정 Feb 04. 2022

익숙해진걸까 달라진걸까

연휴 동안 어찌나 잘 먹었는지 3kg 정도 늘었습니다. 쉽게 찌지만, 쉽게 빠지면서 티는 별로 안 나는 편이라 방심했습니다. 결국 역대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맙니다. 아내가 등짝을 쓰다듬으면서 아유 우리 신랑 두꺼워졌네~ 합니다.


고향엔  갔습니다. 우리 먹을 목적으로 명절에  어울리는 팽이버섯전, 굴전, 파전과 구운 두부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두부는 두부김치가 되어 막걸리와 함께 사라지고 남은 일곱 조각입니다.


메인메뉴는 신메뉴 갈비굴떡국입니다. 갈비탕에 떡국을 끓여서 굴과 새우를 넣었습니다. 여기에 소주 한 잔 더한, 메뉴 수는 적고 양은 많은 초간단 차례상으로 설날 브런치를 먹습니다. 물론 차리자마자 냉큼 먹은 건 아니고 나름 음복입니다. 음식상 앞에 두고 무교 부부 둘이서, 벽을 향해 만세하듯 절을 두 번 하고 먹었습니다.




예전에 한참 힘들 때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울 아부지까지 밥상 앞에 억지로 끌어다 앉혀 놓고 절을 했습니다. 차린 것도 없으면서 딸이든 아들이든 좀 보내 주소, 우리 마누라 안 아프고 낳을 수만 있으면 하나만 좀 보내 주소, 하고 속으로 자식 요청서를 상신했습니다.


이번엔 별 말 안 했습니다. 차려놓은 게 차례상인지 아버지 제삿상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특정 다조상님들께 혼잣말처럼, 마누라 안 아프게만 해 주소, 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니 다른 부서 분이 공주님을 낳았다는 공지 메일이 와 있습니다. 예전엔 메일 한 통에 하루씩 가슴이 아렸는데 이젠 십 분도 안 갑니다. 단련이 된 것인지, 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매일 아침 항우울제를 꼬박꼬박 챙겨먹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던 시절도 다 옛일 같습니다. 이젠 다 필요 없고 마누라만 안 아프면 됩니다.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각종 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아내와 서로 뭐 해줄까, 뭐 사줄까 묻지만 서로 묻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합니다. 정말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결국 선물 고민이 아니라 메뉴 고민으로 넘어갑니다.




요즘 들어 마음 속에 유정이는 안 보이고 고양이나 키울까, 하는 생각만 자주 듭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동네 고양이 싹쓰리, 고삼이, 토시 가족 목격이 뜸해서인지, 유정이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인지, 아님 엄마아빠 둘이 잘 살라고 몰래 눈 가리고 귀 막아줘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모르겠습니다.


다만, 힘들어서 다 놓아버렸을 때의 무기력함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합니다. 나도 모르는 새 다른 배에 옮겨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뱃살은 좀 빼는 편이 낫겠습니다. 추석도 다가오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니까 준비해야 합니다.

이전 16화 램지형의 숨제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