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어찌나 잘 먹었는지 3kg 정도 늘었습니다. 쉽게 찌지만, 쉽게 빠지면서 티는 별로 안 나는 편이라 방심했습니다. 결국 역대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맙니다. 아내가 등짝을 쓰다듬으면서 아유 우리 신랑 두꺼워졌네~ 합니다.
고향엔 안 갔습니다. 우리 먹을 목적으로 명절에 안 어울리는 팽이버섯전, 굴전, 파전과 구운 두부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두부는 두부김치가 되어 막걸리와 함께 사라지고 남은 일곱 조각입니다.
메인메뉴는 신메뉴 갈비굴떡국입니다. 갈비탕에 떡국을 끓여서 굴과 새우를 넣었습니다. 여기에 소주 한 잔 더한, 메뉴 수는 적고 양은 많은 초간단 차례상으로 설날 브런치를 먹습니다. 물론 차리자마자 냉큼 먹은 건 아니고 나름 음복입니다. 음식상 앞에 두고 무교 부부 둘이서, 벽을 향해 만세하듯 절을 두 번 하고 먹었습니다.
예전에 한참 힘들 때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울 아부지까지 밥상 앞에 억지로 끌어다 앉혀 놓고 절을 했습니다. 차린 것도 없으면서 딸이든 아들이든 좀 보내 주소, 우리 마누라 안 아프고 낳을 수만 있으면 하나만 좀 보내 주소, 하고 속으로 자식 요청서를 상신했습니다.
이번엔 별 말 안 했습니다. 차려놓은 게 차례상인지 아버지 제삿상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특정 다조상님들께 혼잣말처럼, 마누라 안 아프게만 해 주소, 했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니 다른 부서 분이 공주님을 낳았다는 공지 메일이 와 있습니다. 예전엔 메일 한 통에 하루씩 가슴이 아렸는데 이젠 십 분도 안 갑니다. 단련이 된 것인지, 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매일 아침 항우울제를 꼬박꼬박 챙겨먹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던 시절도 다 옛일 같습니다. 이젠 다 필요 없고 마누라만 안 아프면 됩니다.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각종 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아내와 서로 뭐 해줄까, 뭐 사줄까 묻지만 서로 묻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합니다. 정말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결국 선물 고민이 아니라 메뉴 고민으로 넘어갑니다.
요즘 들어 마음 속에 유정이는 안 보이고 고양이나 키울까, 하는 생각만 자주 듭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동네 고양이 싹쓰리, 고삼이, 토시 가족 목격이 뜸해서인지, 유정이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인지, 아님 엄마아빠 둘이 잘 살라고 몰래 눈 가리고 귀 막아줘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모르겠습니다.
다만, 힘들어서 다 놓아버렸을 때의 무기력함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합니다. 나도 모르는 새 다른 배에 옮겨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뱃살은 좀 빼는 편이 낫겠습니다. 추석도 다가오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니까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