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문자
함께 걷던 빛이가 갑자기 날 불러 세운다.
"아빠, 나랑 발키 재보자."
그러면서 280밀리미터의 커다란 아빠 발 옆에 6살짜리의 작은 발을 갖다 댄다. 상대적으로 너무 작은 발에 아이가 주눅들거나 실망할까 봐 어떻게 수습할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빛이의 한마디에 참 불필요한 걱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쪼꼼 비슷해. 쪼끔만 더 크면 되겠다."
'네 눈엔 이게 비슷해?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라는 마음의 소리를 빠르게 구겨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빛이에게 말한다.
"우와, 그러네! 이제 거의 비슷해졌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하지 뭐. 다 도토리 키 재기야. 조금 크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비교하며 주눅들 필요도 없어. 멋지다 우리 딸!
지나가는 길에 빛이가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기는 뭐 하는 데야?"
간판을 보니 'bb.q'라고 적혀 있다.
"저기 치킨 만들어서 파는 곳이야."
내 대답을 들은 빛이가 갸우뚱하며 말한다.
"669? 치킨 요리하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려?"
빛이 덕에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한편으론 모든 걸 숫자로 판단하는 현실에서 숫자 대신 스토리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