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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21. 2022

엄마, 왜 안 와

오늘도 날 기다리는 아이에게 바쁘게 달려갔던 나에게


어머니, 행복이가 점심때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봤는데..
많이 아팠겠어요.. 입술 옆에 포진이 났네요.
많이 피곤한 거 같아요.
내일은 체험 가는 날이라 오늘 푹 잘 수 있게 일찍 잠자리에 들게 도와주세요.



키즈노트를 본 순간 우습게도 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몰랐다" "아.. 오늘 강의 끝나고 오면 10신데.. 어떻게 일찍 재우지.."였다.


"어떻게 엄마가 애 입술에 저렇게 포진이 날 때까지 모를 수 있니"

"아 어떡하지.. 애가 빨리 자야 컨디션이 회복될 텐데.."


그 생각이 들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은 "미안하다.."였다.


외부강의가 있는 날, 나는 끝나자마자 서둘러 가도.. 10시다.

오늘도 행복이는 단유 중인 복댕이가 크게 우는소리에 6시 30분에 깼고, 낮잠도 자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엄마가 있기 전까진 자지 않는 아이임을 알기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낮에는 논문 모임으로, 오후에는 일로, 저녁에는 강의로 바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휴직 중인 엄마다.

공부하며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는데 일 욕심도 나 결국 이 사달이 났다.

하원하고 간식을 먹는데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던 우리 딸은, 결국 엄마가 일을 다 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같이 놀자, 이야기하자 하며 말을 거는 아이에게 "기다려야 해, 엄마 일하고 있잖아"를 말하는 내 마음도 상당히 불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 거는 딸이 귀찮기도 했다.


겨우 주어진 엄마와의 30분 동안 열심히 놀고, 엄마는 다시 강의를 하러 나갔다.

나는 나가기 전 오늘 하루 있을 일들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 마음을 헤아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어차피 기다리게 할 거면서, 말을 거는 아이를 귀찮아한 내 마음에도 더 큰 죄책감이 들었다.


매일처럼,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우리 딸.

물론 내게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냥 엄마 마음은 미안했다.


강의가 끝나고 바로 전화를 했다. 역시나 둘째는 자고 있지만 첫째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고 한다.

천천히 오라는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빨리 가자. 우리 딸 오늘 포진 나고 피곤해..


열심히 밤길을 달려가는데 신호는 왜 계속 걸리는지, 초조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퀭한 눈으로 엄마를 반긴다. 그래도 바로 자긴 싫었는지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10시가 많이 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성경을 암송하고 기도를 하니, 한참을 엄마 얼굴을 쳐다보고 엄마 눈이 감겼는지 확인하다가 잠든다.


아이를 재우고 나왔는데 저녁도 못 먹어 허기진 배보다 마음이 더 허전했다.

마음도 넉넉히 채워주고 싶어, 아까 차 안에서 생각났던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엄마, 왜 안 와




제목부터 울컥한다.







엄마, 언제 와?






이런.. 조금만 기다려 줄래?


나도 이렇게 예쁘게 말할걸..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왜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는지 또 후회가 된다.





엄마, 빨리 와






화가 잔뜩 난 꽥꽥이 오리를 만났지만

엄마가 잘 해결하고 갈게


... 오리의 크기 서류의 양 엄마의 모습만 봐도 얼마나 일이 많을까. 얼마나 힘들까 싶다.

하지만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아이를 안심시키는 엄마의 말에 따뜻함을 느낀다.


나도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더라도..

아이의 수준을 아이의 시선에서 배려하고 이해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오늘 그러지 못했던 나를 또 자각해 보며,

내일은 좀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달리기 잘하는 거 알지?

걱정 말고 기다려.


이건 내 모습..?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강의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 나가고 싶었으나..

여운을 많이 느끼신 어머니들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눈다고 늦었다.

헤어짐이 아쉽지만 다음 주를 또 기약하며, 정신없이 저 모습 그대로 달려 나갔다.


걱정 말고 기다려. 얼른 가서 코 자자




어두운 밤길을 달려

용감하게 너에게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지?


강의 끝나고 나오는데 문득 간식 코너의 과자들이 보였다.

행복이 좋아하는 과자를 두 개 받아 들고 열심히 달렸다.

엄마 마음이 참 비슷비슷한가 보다..






오늘은 이 장면에 오래 머물렀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 아이에게로 가는 저 모습이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도 쉬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했을 저 모습이

꼭 나 같아서.


그런데 꼭 저 빛.. 하나님이 날 주목하고 계신 거 같아서 더 울컥했다.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주목하고 있는 내 하늘 아빠

나의 최선을 누구보다 알아주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보살피고 계실 것을 믿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언제나 나를 기다려준 네게로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래 중요한 건 이거다.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난다는 걸,

엄마는 무사히 다시 네게로 돌아온다는 걸 아는 믿음

이 믿음을 주려고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온 것일 터였다.


그 믿음으로 아이는 오늘도 잘 기다렸을 것이다.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번져간다.


아 정말 아이는 참 묘한 존재다.

엄마가 되기 전 이런 감정들을 내가 느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책을 덮으며 이 그림책으로 "지랄발광 사춘기, 흔들리는 사십춘기"의 에필로그를 썼던 글이 기억이 났다.





'엄마 왜 안 와'에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등장합니다.

"엄마 빨리 와"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당장 달려가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이에겐 좌절임을 알지만, 엄마는 염려와 걱정을 잠깐 내려놓고 주어진 내 하루를 묵묵히 살아냅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했던 대체로 공감적이고 행복했던 나날들에서 아이가 버티고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엄마는 모든 일을 마치고 다람쥐같이 달려 나갑니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 용감하게 아이를 향해 뛰어갑니다.

아이가 좋아할 음식을 잔뜩 사들고 양손 가득 무겁게 뛰어가는 엄마,

그런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를 아이는 함박웃음으로 맞이하며 꼭 안아줍니다.

기다림 끝에 주어진 하루의 선물이 우리의 마음을 녹입니다.


[지랄발광 사춘기 흔들리는 사십춘기 p_316]






Good Enough mother

충분히 좋은 엄마 /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 /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


오늘 나의 하루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괜찮지 않았나.

아이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온 나도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아닐까.

엄마가 올 것을 믿고 기다려준 우리 아이도 이만하면 괜찮은 내 딸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의 끝, 이만하면 괜찮은 나와 아이가 만나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그래, 매일이 오늘만 같아도 괜찮겠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너무 미안해하지도 말고,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우리 또 만나자


언제나 너를 기다려준 네게로,


무사히 돌아올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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