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이야. 도대체 뭐였을까?”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나는 추모공원 커브길에 세워 둔 동생의 차에 타려고 서 있었다. 엄마의 기일에 맞춰 방문한 추모 공원은 벌써 세 번째지만 올 때마다 낯설다. 동생은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운전석에 올라탔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나도 황급히 조수석에 탔다.
“뭐였다는 게, 무슨 말이야?” 동생이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아니, 너 엄마를 제대로 알았다고 생각한 적 있어?”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야.” 동생이 말했다.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일반 직장인 여성이자 주부라기엔 비밀이 많았다. 많은 비밀 중에서도 특히 엄마는 아빠와의 만남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아빠와의 만남에 대해 들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목동에 있는 수학학원을 다니던 때였다. 근처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학원에 꽤 많았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확 잡아끄는 남자애가 있었다. 빗다만 더벅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써서 귀여웠다. 불행하게도 그 남자애와 같은 반이 아니어서 잘 만날 수 없었지만 운 좋게도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았다. 매일 듣는 수업보다도 그 남자애가 신경 쓰였다. 어떻게 하면 말을 걸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의미 없는 그림들을 문제집에 그려나갔다.
신나는 일은 항상 평범한 날에 끼어든다.
학원 자습실에서 다른 과목 공부를 하다가 잠깐 숨을 쉬러 복도로 나왔다. 한창 국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고대 국가의 제천 의식 부분이었다. 나는 소리를 내어 ‘고구려는 동맹, 동예는 무천, 삼한은 시월제, 부여는 영고’를 외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살짝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학원이 사거리 근처에 있어서 차들이 빵빵대는 소리가 다 들렸다. 꽃잎들이 날리고 있었고 코끝이 괜히 간지러웠다. 잠시 창밖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던 탓에 갑자기 동예의 제천의식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혼잣말로 ‘동예, 동예......’라고 중얼거리면서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기 그 남자애가 서 있었다. 그 남자애는 나와 눈이 마주쳐서 살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도 놀랐지만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암기 노트를 보려고 하는데 그 남자애가 ‘무천’이라고 말했다.
무천...이구나.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그 애는 그 단어를 말하고는 멀어져 버렸다. 그게 그 애와의 첫 대화였다.
그날 집에 와서 난 처음으로 엄마에게 아빠를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봤다. 처음으로 그게 궁금해졌다. 엄마는 부엌에서 콩나물 대가리를 따면서 엄청난 미인이 나오는 고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흘끗 보더니 아빠를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고 했다.
“나랑 같은 책을 골랐지 뭐니. 네 아빠가 말이야.” 시선은 TV에 집중한 엄마가 말했다.
“무슨 책이었는데?” 나는 옆에서 콩나물을 하나 주워 먹었다.
“몰라.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 근데 뭐 그 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엄마는 그날 일정 때문에 바쁜 친구 대신에 그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고 했다. 다른 이름을 달고 아빠를 만난 것이다. 친구는 그 회사 정규직이었고, 엄마는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에 대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빠도 이 독서 모임이 처음이라 엄마가 그 친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은 언제 말해줬어?”
“사실을 뭘 말해. 그냥 다음 독서 모임부터 안 갔지. 세상에 남자 많은데 내가 왜 꼭 네 아빠를 보러 그 독서 모임에 다시 가야 하니?”
“그럼 어떻게 결혼한 거야.”
“다음 독서 모임 때 내 친구가 가서 아빠한테 인사한 거지 뭐. 안녕하세요. 윤지수입니다. 네 아빠는 당황했겠지. 일주일 지나니 전화가 오드라 아빠한테.”
“뭐랬어?” 나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에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만나자고 하지 뭐. 진짜 이름 뭐냐고 물으면서.”
정체를 숨기고 만나서 시작된 사랑이라니, 나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당시에 동생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동생이 모르는 것을 알았다는 우월감도 느낄 수 있었다.
무천이는 (그 남자애 이름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무천이라고 하겠다.) 며칠 뒤 집에 가는 길에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우리는 웃어댔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봄기운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짧은 봄이 가고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고, 잡은 손이 축축해져도 이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타오르기만 할 것 같은 마음은 장마가 시작되며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기말고사가 막 끝난 날, 갑작스레 내린 폭우로 나와 무천이는 양말이 다 젖은 채로 버스에 올라탔다. 겨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축축한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그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그만 만나.” 내 손도 잡고 입도 맞춘 무천이가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대답이 꼭 필요한가? 이미 그의 마음은 정해진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무천이는 내게 왜냐고 안 물어보냐고 했고, 나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했다. 창밖에는 비가 무시무시하게 오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무천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사흘을 앓아누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 만큼 암울했다. 동생은 내가 걱정됐는지, 내 방에 들어와 침대에 털썩 앉았다. 동생과 대화하기도 귀찮아서 돌아누웠다.
“언니,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동생이 날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아빠랑 엄마 어떻게 만났는지 알아?” 동생이 내가 이미 아는 얘기를 하려고 있었다. 나는 자려고 눈을 감았다.
“엄마 말이야. 아빠를 산에서 만났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 콧물을 짜고 있던 내게 동생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동생이 말하길 엄마와 아빠는 산 정상에 있는 임시 대피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친구들과 산에 오르고 있던 엄마는 발목이 삐어 뒤처지게 되었고, 아빠는 배가 출출해 잠깐 대피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따뜻한 물이 필요했던 아빠와 얼음이 필요했던 엄마는 서로에게 그 물건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고 한다. 아빠에게는 얼음물이 있었고, 엄마에게는 따뜻한 미역국이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미역국으로 컵라면을 먹었고, 엄마는 아빠의 얼음물로 발목을 찜질했다. 대피소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우연찮게도 같은 시간에 같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있었고 지하철에서 매일 만나는 비둘기 아줌마, 종이도 썰리는 감자 칼을 파는 외판원, 동틀 때 한강을 건너면 보이는 여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은 계속 수다를 떨다가 친구들을 기다려 하산했고, 그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혼을 하게 됐다.
“언니, 언니도 무천이는 이제 그만 잊어. 이렇게 인연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거짓말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건지, 독서모임이나 대피소나 모두 다 구체적이었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이번에는 식탁에 고요히 앉아 멸치 똥을 떼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세상 저런 희한한 생명체는 처음 본다는 것처럼 쳐다봤다. 그도 그럴게 사흘을 안 씻고 누워 있었으니. 얼굴은 콧물 범벅을 하고 말이다.
“드디어 장마가 끝났구나!” 엄마가 말했다.
“아니. 엄마.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뭐가?”
“아빠랑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며. 근데 왜 서연이한테는 산에서 만났대?”
“어머, 내가 그랬나?”
“어. 엄마가 그랬잖아!”
엄마는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어쨌든 아빠를 만났고 너희를 만났다며 말을 얼버무렸다. 나만 알고 있었던 엄마와의 얘긴 줄 알았는데, 동생은 더 재밌는 버전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동생에게 들려준 얘기가 진짜인 것 같이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토라질 것을 알았는지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떡볶이를 데웠다. 떡볶이 냄새에 굴복하긴 했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가 진실이었을까? 엄마는 왜 매번 물어볼 때마다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다봤다. 엄마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히치콕 영화를 좋아했고, 한 직장에 오래 다녔으며, 가끔 주말 점심에 혼자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손을 뻗어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데, 손등에 긴 흉터 자국이 보였다. 나는 소매를 내리고 창문을 닫았다. 동생이 나를 흘끗 보는 게 느껴졌다.
“배고프지?” 동생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동생은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며 거기 들렀다 가자고 했다. 정말 얼마 가지 않아 으리으리한 3층짜리 건물이 대로변에 갑자기 나타났다. 동생은 중국집에 딸린 주차장에 차를 댔다. 입구에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이제 막 승천하려고 있었다. 나무 기둥이 붉게 장식된 내부로 들어가니 한쪽에는 솥이 끓고 있었는데, 국물을 거기서 만든다고 했다. 멍하니 김을 내며 끓는 솥을 보고 있는데 동생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나는 황제 짬뽕, 동생은 철판 짜장, 탕수육 소자도 하나 나눠 먹자며 시켰다.
동생은 계속 내 얼굴을 살피는 것 같았다. 차를 타는 게 어떻냐느니, 머리는 안 아프냐느니.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나는 배가 고파서 대충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동생은 약간 서운한 눈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탕수육이 먼저 나왔고 나는 하던 대로 소스를 들이부으려고 했다. 동생은 기겁을 하더니 내 손을 막았다. 언니는 항상 이런 식이라면서, 왜 매번 얘기해줘야 하냐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동생은 언니와 엄마는 부먹파고 아빠와 본인은 찍먹파라면서, 제발 붓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소스 접시를 내려놨다.
탕수육 소스에 화내던 동생은 어느덧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언제쯤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 언니는 매번 같은 걸 묻는다고, 그게 그렇게 싫었냐고 원망하듯 말했다.
“언니, 나 세 살 때 아빠랑 언니 집에 왔잖아. 둘이 미혼부모 모임에서 만났고. 언니가 엄마 말을 못 믿고 계속 캐묻고 다녀서 엄마랑 아빠가 나 스무 살 되던 때 알려줬잖아.”
“...... 나는 왜 기억이 안 나지?”
“사고 때문에 그래. 언니 머릿속에서 그 기억만 싹 지워졌나 봐.” 울던 동생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동생을 쳐다봤다. 혼란스러웠다.
“근데 벌써 삼 년째야 언니. 언니 잘못 아니래도.” 동생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사고. 그래, 사고. 나는 손등에 난 기다란 흉터를 다시 쳐다봤다. 아무래도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추운 바람, 뜨겁게 흐르는 무언가, 가늘지만 거칠었던 손, 번쩍이는 불빛들, 시끄러운 경적 소리.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