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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공허하다 말했다

by 자향자 Jan 29. 2025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맞춰 매일 아침 6시를 기해 우리 부부는 주중의 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씻는 게 우리 부부만의 룰이었지만, 어느샌가부터 아내가 먼저 씻는 게 일상이 되었다. 딸아이가 잠을 자고 있는 틈을 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준비를 한 부부는 언제 세차한 지 기억도 안나는 시꺼먼 흰색 차량에 몸을 싣는다. 



   복직을 한 이후, 서로 대화를 할 시간이 부족한 탓에 가족 일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잊어버릴까 봐 메모장에 기록해 뒀던 이야기도 하나씩 꺼내며 고속도로에 몸을 싣는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근무처가 있는 아내가 나를 목적지에 내려주면 나는 손을 흔들며, 하루가 안녕하길 응원한다. 



   오후 6시 정해진 일과 시간을 마치고 아내에게 카톡을 남긴다. '출발할 때 연락해요!'라고 톡을 남기면 곧이어 '25분 도착.'이라는 짤막한 회신이 돌아온다. 우리의 나날은 요즘 이러한 패턴이다. 지난 주였을까? 집에 거의 다다를 때쯤 아내가 내게 물었다. 


"근데 인생이 왜 이렇게 공허하지? 공허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 요즘 따라 좀 낯설게 느껴지네?"

"공허하다고? 흠. 삶이 좀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건가? 뭐 도전해보고 싶은 거 없어?"

"그런 개념이 아니라, 흠.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 당연시되는 게 요즘 좀 생소한 거 같아서."

"그러게, 나도 그렇게 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네?"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하던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아내는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찰나의 생각을 마친 후, 아이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한다. 마음 어느 한편에 있는 찝찝함을 뒤로하고 그렇게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따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내가 혹시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최근에 부부 사이에 어떤 말다툼이 있던 것도 아닌지라 아내의 마음을 해석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7살 즈음이었을까? 미끄럼틀에 누워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사는 거지?" 생각해 보니 대학교 졸업 시즌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졸업장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느낌. 5년여간의 백수 생활을 마치고, 목숨 바쳐 직장을 다니겠다던 어느 시점에도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이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내가 믿고 있었던 신념이 사라져 버린 것. 8살이 되는 해에 초등학교를 입학해 보니 24시간 놀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대학교 졸업할 때쯤이면 어느 직장 하나는 다니고 있겠지 싶었는데 백수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회사에서는 그토록 원하던 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친 듯한 격무로 나의 바람과 전혀 다른 결과물들이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게 찾아온 이 세 번의 공허함을 나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현실을 인정했고, 다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찌 됐건 초중고는 평탄하게 졸업하게 됐고, 지지부진했던 취업 준비 기간은 5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현재의 회사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크게 어떤 결론을 내리긴 어렵지만 주안점을 바꿈으로써 조금은 극복해 냈다. 



   이번 연휴 아내와 한번 이야기해 볼 요량이다. 왜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어떠했고, 어떻게 극복을 해냈는지. 아내의 공허한 삶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길 바라본다. 가족은 그렇게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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