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미버스 판타지 단편소설 7)
의주는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지 사흘이 넘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이틀 후에야 집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어디 낚시터에라도 가셨겠죠.’
어쩜 그리 무심하냐는 엄마의 두 번째 전화를 받고서야 의주는, 집에 내려가지 않은 지 1년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더 이상 아버지에게 무심한 딸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기사 마감 전쟁을 치르고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차를 몰고 나섰다.
의주에게 아버지는 어린 날 놀란 이후로는 열어 본 적 없는 그 무서운 창고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덧문 중문을 닫아걸고 어디쯤 앉아 계신 걸까?
차는 'ㄱ'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고향 가는 길은 훤했지만 자고 나면 새 도로가 나뭇가지처럼 자라나오니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예전에는 지도책 한 권으로 어디든 취재하러 다녔지만, 이 기계가 나오고부터는 동서남북 방향감도 희미해졌다. 새로 바꾼 차는 운전석에 앉으면 고급식당의 웨이터처럼 알맞게 의자를 밀어주고 사방에 붙은 거울도 운전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굽실거리며 각도를 잡았다. 아버지는 이런 기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기계 너무 믿지마라. 인간의 비위를 맞추며 입에 혀같이 굴지만 결국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휴지통에 버릴 거다."
하고 투덜대셨었다.
의주 또한 계량컵이 없으면 밥물조차 맞추지 못하니 반박하지 못했다.
내비 화살표가 'ㅂ'군으로 나가는 나들목을 가리켰다. 처음 보는 길이었지만 첨단의 I.T. 정보이니 만큼 의심 없이 우측 깜빡이를 켰다. 하이패스 전용 출구로 나설 때는 눈인사라도 나눌 계산원이 없다는 게 이런 밤길에서는 아쉬웠다. 라디오 채널도 서울권역에 맞춰져 있어 치직거리기만 해 몇 시간 동안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내비게이션이 떠드는 길안내 음성뿐이었다.
기계 속의 여자는 어찌나 똑 소리 나게 길안내를 잘하는지 인생 상담을 받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인생의 표지판을 미리 읽어주거나 다음 주 복권 번호를 알려주면 좀 좋을까? 편집장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기사 내용 때문에 항의 전화를 받는 날은 세상 사람 중 유일하게 친절한 내비게이션에게 자꾸 말을 시키고 싶었다.
일반국도에서 지방도로 쪽으로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하더니 좁은 길이 나타나고 전방에 임시 고속방지턱이 깔려 있었다. 속도를 줄였지만 차는 둔탁 거리며 턱을 넘었다. 몇 개의 턱을 넘는 동안 자동세차기 같은 기둥에서 하얀 물방울을 쏘아대어 시야를 흐려놓았다.
도랑의 작은 다리를 건너자 흙길이 나타났다. 고향 가는 길이 비포장이었나? 내비게이션의 화살표는 고집스럽게 전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빗물에 파인 구덩이에서 비틀거리더니 바퀴가 헛발질을 해댔다. 사방의 유리는 바퀴에서 튄 진흙 자국으로 얼룩졌다.
차문을 열었지만 진흙탕이라 발을 내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을 닫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전화기 안테나 옆에는 빨간 가위표가 깜빡거리고 내비게이션은 직진만 계속하란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수신되지 않았다. 기계들이 모두 명령을 거부하고 버티고 있다.
젠장. 전조등을 끄고 시동을 끄고 문을 잠갔다. 어둠이 옅어지고 있어 두어 시간이면 날이 밝을 터였다. 잠들면 안 돼. 그냥 잠시 쉬는 거야.
중학교 들어가고부터는 축사에서 풍기는 돼지 똥 냄새가 유난히도 싫었다. 창문을 꼭꼭 걸어 잠가도 매캐한 냄새가 집으로 들어와 밥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돼지 똥냄새가 학교에 까지 따라오는 것 같았다.
누나라 부르며 까불던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귀엽다고 코를 쥐고 흔들었었다. 마른 코딱지가 꽉 차 있던 아이의 콧구멍에서 살짝 피가 났다. 녀석은 아프다고 징징거리더니 다음 날 맞닥뜨리자 또 꼬집을 까 싶어 제 코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의주는 제게서 돼지똥내가 나 그러는 줄 알고 얼굴이 붉어졌다.
옷에서도 책에서도 연필에서도 돼지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의주는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아버지는 ‘돼지 똥냄새 덕에 밥이나 먹고사는 줄 알라’며 돼지 편을 들었다. 종일 축사에서 돼지를 먹이고 씻기는 것이 자식 돌보는 정성이었다. 어떤 때는 돼지와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는 것 같았다. 의주가 돼지 냄새를 싫어할수록 아버지는 돼지 가까이 머물렀고 부녀 사이는 데면데면 해 져갔다.
눈을 떴다. 어둠이 물러간 바깥에는 누런 먼지가 안개인 척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황사 먼지와 쿰쿰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테마마을 돼지촌’.
의주는 손수건으로 코를 감싸고 길처럼 보이는 곳으로 발을 올렸다. 질퍽한 진흙 반죽이 신발에 달라붙어 발이 무거웠지만 마을에 들어가면 전화를 쓸 수 있을 테고 우선 따뜻한 커피를 마실 기대로 흡착판 같은 진흙 발을 떼어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드니 뿌연 먼지 속에서 간판이 하나 둘 나타났다. ‘고기 먹고 가’, ‘고기 한 점 줍시오’, ‘살이 타는 날’, ‘돈 놓고 돈 먹기’ 고깃집 이름은 섬뜩한 재치가 있었다. 식당이긴 하지만 농가를 개조해 간판을 단 건물들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어 평상에 앉아 신발에 붙은 진흙을 떼어냈다.
유리문이 열리고 후덕한 풍채의 아낙이 나와 평상을 닦으며 투덜댔다.
“무슨 황사가 미친년 마당 쓴 것처럼 먼지가 가라앉질 않네.”
의주는 마당을 쓴 당사자인 듯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그 짝 보고 한 말 아녜요.”
“아 예, 차가 미끄러졌는데, 전화를 좀 쓸 수 있을 까요?”
“그러슈.”
미친년 마당 쓴 말이 미안한 아낙이 안으로 들게 했다. 식당 안은 고기 누린내가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오래된 전화기는 때가 끼어 있는 데다 통화감도 좋지 않아 한 참 만에 용건을 전했는데 저 쪽에서 알아들었다고 대답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낙은 시커먼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누린내에 퀴퀴한 냄새까지 더하고 있었다.
의주는 쌀쌀한 먼지 속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냐고 물었다. 아낙이 턱짓으로 자판기를 가리켰다. 단추를 누르자 낡은 자판기는 털털거리더니 종이컵 하나를 뱉어내고 대견한 듯이 우웅 하고 울어댔다. 설탕물에 커피가루를 탔지 싶게 단 커피였지만 허기와 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아버지도 돼지를 키우셨어요.”
의주는 견인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아낙에게 말문을 터보았다.
“그래요? 어디 양돈장이라요?”
“물개골이요.”
“하이고 마야. 보소 여 들어와 보소.”
아낙이 뒷문을 향해 소리치자 수염을 깎지 않은 거구의 남자가 부지깽이를 들고 들어왔다. 불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가마솥에 장작불을 넣고 있던 모양이다.
“뭐라? 물개골에서 양돈하시던 어른 따님 이라고? 하이고 마야 반갑심 데이. 아직 식전이지요? 조금만 있으소.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내 올 텡께.”
부부는 신나는 일을 만난 듯 주방 뒷문으로 나가더니 김이 펄펄 나는 국과 밥에 깍두기 한 접시를 내왔다.
의주는 국에 숟가락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 아버지를 아세요?”
“하무요. 알다마다요. 그 어른 차암 사람 좋았심데이. 이 마을도 어른 덕분에 이래 번창한 거 아잉교. 마을 인심도 그래 좋았지요. 묵을 거 노나 묵고....... 다 그 짝 아버지 공인 기라요. 국 식어요. 얼렁 드세요.”
“사실 저는 채식을........”
의주는 머뭇거리며 더듬거리다가 부부의 안색이 떠름해지는 것을 보고 국물 한 숟갈을 떠 물었다.
열 살 무렵엔가, 가족이 양돈장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의주는 죽은 돼지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창고에 죽은 새끼돼지를 뉘어놓은 걸 모르는 엄마가 창고에 심부름을 보낸 것이었다.
“이런 등신 같은 기집애가 있나?”
새끼돼지가 까닭 없이 죽었던 탓에 마음이 더부룩하던 아버지가 버럭 성을 냈다.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가 가뜩이나 놀란 의주의 등줄기를 천둥처럼 훑고 지나갔다.
“다른 집 딸내미는 공주처럼 키운다는데........”
엄마는 의주의 등을 토닥이며 아버지를 흘겨보았다. 예순 살의 아버지는 쉰에 얻은 늦둥이 딸과의 소통에 서툴렀다.
그 후로 의주는 창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컴컴한 창고 안에서 발아래 닿던 사체의 물컹함이 오랫동안 신경을 타고 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천둥소리를 내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무서웠던가. 성인이 된 지금도 죽은 쥐나 고양이를 보면 몸이 뻣뻣해지고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나면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딱 그때의 맛이었다. 입안에 해묵은 불화의 떫은맛이 부대꼈다. 숟가락 끝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를 의식해 숨을 참으며 서너 숟가락 더 삼켰다.
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낙이 들어가 젖을 물렸는데도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한 참 만에 조용해지더니 아낙의 뒤를 따라 아기가 나왔다. 하나, 둘, 셋, 넷. 네 명의 아기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 네 쌍둥이군요.”
의주는 냉큼 숟가락을 놓고 아이 하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마음만 번쩍 들어 올렸다 뿐이지 갓 돌 지나 보이는 아이는 돌덩이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네 쌍둥이 갖고 뭘 그러우? 여긴 보통 대여섯 쌍둥이는 보통인데. 암만. 컬컬컬.”
웃음소리가 특이했다.
의주는 아이 안아 올리기를 포기하고 볼을 쓰다듬었다. 나머지 세 아이도 안아달라고 한꺼번에 밀어닥쳐 의주는 쪼그려 앉은 채로 뒤로 나자빠졌다. 돌절구 같은 아이들이 배로 가슴으로 기어올라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도 아낙과 사내는 구경만 하였다.
“얼라를 좋아하는구먼요. 하긴 우리 아~들이 인물은 안 빠집니다.”
유리문이 열리고 우람한 덩치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어르신 따님이 왔다고?”
아낙이 어느새 마을에 알렸나 보다. 고도의 비만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가 비슷해 보였다. 그제야 아이들은 의주를 놓아주었다.
“어르신께서 열이 펄펄 끓는 우리 아~를 업고 밤길을 달렸다 아이요. 그때 살아남아 큰 아~가 바로 저 아~ 아입니꺼.”
구석에서 네 쌍둥이를 한꺼번에 안아 올리던 청년이 열적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열이 좀 덜 빠졌던지 아~가 쪼매 덜 찼습니다. 그래도 힘 하나는 좋아서, 우리는 자~ 없으마 암 긋도 몬 합니다.”
“그거 아요? 그 짝 대학 등록금을 저 아지매가 장만해 줬다 아이요. 저 아지매가 댁의 돼지저금통이었지. 툭하면 배를 갈랐으이. 컬컬컬.”
사람들이 맞장단을 치며 웃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등록금을 낼 때가 되면 아버지는 돼지를 팔았고, 돼지를 파는 날이면 서운해서 소주를 드셨다. 그깟 돼지 몇 마리 팔았다고 서운해하는 아버지 속을 알 수 없는 의주는 돼지에게 유치한 질투를 했었다.
“아주머니, 혹시 저희 아버지와 채무관계가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어르신이 우리한테 해주신 일이 얼만데요.”
채무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명확치가 않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이 따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좋은 환경에서 몬 키워 미안타고. 그래서 축사 청소도 두 배나 열심이셨지. 암만, 축사는 깨끗하게 관리하셨지. 따님이 내려오는 날에는 유난시러벘지. 돼지똥내 날까 봐 어찌나 성화이던지.
"맞다 맞다. 그 때 우리가 얼매나 귀찮았던지........"
그들은 의주가 모르는 아버지의 기억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와 추억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중학교 때 어느 날 친구들과 까르르 대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의 작은 정류장 앞으로 돼지 똥거름을 실은 경운기가 지나가자 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다. 의주는 경운기를 운전하는 아버지를 보고 돌아섰다. 아버지가 그런 의주의 모습을 보았을까 저녁 내내 마음이 쓰였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밤늦도록 축사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의 양돈장은 아버지 소유가 아니었다. 도시에 사는 주인 대신에 양돈장을 관리하고 얼마의 생활비만 받았다. 아버지는 축사 청소를 하고 난 돼지 똥거름을 인근 농장에 실어다 주고 조금의 용돈을 썼다. 얼마 후에 주인이 축사에서 나오는 돼지거름을 다른 전문 거름 업자와 계약을 해버려 아버지는 축사 청소만 해야 했다. 트럭은 거름이 산더미처럼 쌓여야 수거하러 왔다. 똥더미에서 뿜어져 나는 악취가 축사 주변을 새로운 대기층으로 휘감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축사 자리로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인은 엄청난 보상금을 받고 손을 털고 떠났다. 애초에 도로가 날 땅인 것을 알고 시작한 양돈장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처음에 양돈장 주인은 아버지에게 축사 일을 보아주면 나중에 괜찮은 가격으로 넘겨주겠다고 말했었다. 그 말 하나 믿고 십 년간 흘린 아버지의 땀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버지가 제 걱정을 하셨다는 말이죠?”
“그라믄요. 그 짝이 서울로 공부하러 가고 나서 표 안 나게 뒷바라지 할라꼬 어르신이 얼매나 용을 썼게요. 남의 양돈장이 헛것 되고 나서 내 양돈장 만들겠다고 새끼돼지 몇 마리로 시작해서 열 마리로 늘리고........ 그래 그래 축사를 한 칸 두 칸 늘리고........ 번듯한 양돈장 소리 듣기까지 고생은 말도 몬 했어요. 쌀독이 비어도 사료는 사야 하니 환갑이 넘은 나이로 맨 땅에서 시작하는 게 보통 일이요? 목장갑이 헤져서 손톱 밑에 돼지 똥이 새까맣게 끼고, 암퇘지가 새끼 낳을 때는 옆에서 밤샜다 아이요. 그기 다 누구 때문이게요. 금요일에는 대학생 딸 내려온다고 축사 청소하고 그래 신나 하시다가 일요일 오후에는 여기 와서 한참을 앉아 한숨을 쉬고는 하셨지요.”
남자는 의주가 몰랐던 아버지에 대해 살뜰히도 기억하고 공감해 주었다.
일요일 오후에 시골 버스를 타면 동네 정류장마다 눈물겨운 이별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잘 가래이~ 때마다 밥 챙기 묵고.’ 한 보따리 씩 들려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이 정류장마다 서서 손을 흔들었다. 하늘에서 보면 정류장마다 바람개비가 서 있는 것 같겠다 싶었다.
떠날 시간이 되면 아버지는 축사에서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엄마는 버스기사의 눈치를 보며 김치통 반찬통 보따리를 꾸역꾸역 실어주었다. 엄마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고 의주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랬던 아버지 가슴에 딸의 빈자리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 시절의 의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만한 나이가 아니었고,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것을 드러내면 안 되는 줄 알던 중세의 가장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 자국 하나가 나이테처럼 기억 어디쯤 감겨 있었다.
“혹시 저희 아버지가 최근에 오신 적이 있나요?”
“몇 주 전에 댕겨가셨는데요.”
“일주일째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그때 아버지에게서 무슨 말씀 없었어요?”
“컬컬컬.”
또 이상한 소리로 한꺼번에 웃는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깥을 향했다.
의주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방역’이라는 글자가 찍힌 트럭이 소독약을 뿌리며 지나갔다. 대형버스가 마을회간 앞에 멈추어 서더니 입마개와 하얀 가운을 착용한 사람들이 내렸다.
그 속에 아버지도 있었다. 아버지는 몹시 불안하고 지쳐 보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버스 앞에 모이게 했다. 혈액을 채취하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주사를 놓아주었다. 주사기를 보고 겁에 질린 아이 하나가 다리에 힘이 풀려 헛걸음질 하다가 주저앉았다.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아이를 붙잡아 트럭 짐칸에 실었다. 아이의 부모가 소리치며 달려들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막아섰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았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과 가운 입은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비통한 모습으로 주저앉았다.
“아버지!”
의주가 달려갔지만 회관 앞에는 뿌연 황사 먼지만이 고여 있을뿐, 아무도 없었다.
의주는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마을 주민들은 조금 전의 모습 그대로 앉아있었다.
“아버지의 잠적이 이 마을 사람들과 무슨 관계가 있군요.”
주민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그리고 체념한 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몇 달 전부터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돼지마을이니 고기 먹으러 오는 사람이 무시로 들락거리지만 그 사람들은 좀 달랐지요.”
“맞구먼. 어르신이 유난히 그 사람들을 경계했으니께. 나도 그 어른이 그키 화를 내는 걸 첨 봤잉께.”
“뭐 하는 사람들이었나요?”
“고기 맛 타박을 하고 비싸다고 하고. 그러더니 더 싼 가격에 돼지고기를 넘겨주겠다고 거래를 트자고 하더구만요.”
“그래서 그 들과 계약을 했나요?”
아까부터 기자처럼 질문 하는 의주의 태도에 주민들이 멈칫했다. 의주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미안해요.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일이 걱정되어서요.”
“하이고마 아이라요. 우리가 그래 싹수가 없지는 않구마요. 두어 식당에서 쪼매 받아 써 본 모양인데 고기 맛이 변하이 단박에 단골이 줄어서 딱 끊었다 아입니까. 맞구마요. 어르신이 돼지는 깨끗이 살폈지요.”
한두 마디씩 보탠 주민들은 “시간이 이리되었나” 하며 슬금슬금 식당을 나갔다. 주인 부부도 바쁜 척을 하니 더 이상의 질문은 어렵게 되었다.
아무튼 아버지가 잠시 낚시를 떠난 것은 아니라는, 이 마을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 버스와 방역 트럭....... 보건소 쪽의 공무원을 만나봐야겠어. 그리고 그 새로운 유통업자도.’
“화장실이 어딘가요?”
의주의 물음에 청년이 눈을 반짝이며 따라오라고 했다. 위치만 알려주면 화장실 가는 척하고 마을을 둘러볼까 했는데 청년이 친절하게도 안내를 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머뭇거렸지만 아낙이 따라가라고 손을 내젓는 통에 따라나섰다.
옆집 뒷마당에 벌건 장작불이 일고 가마솥 안에는 새끼돼지가 통째로 삶기고 있었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새끼돼지가 언뜻 사람 아기 같아 소름이 돋았다.
건물 뒤쪽에 있을 줄 알았던 화장실은 마을 구석에 있었다. 청년이 창고 같은 건물의 바깥 계단을 가리켰다. 화장실을 회장실로 알아들은 게 아닐까? 의아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에 있는 한 평 남짓한 크기의 화장실은 깨끗했지만 사용한 적이 없지 싶게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변기는 네모난 구멍이 뚫린 구식이었고 구멍 아래는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제주도에서 이런 화장실을 본 적이 있다. 밑에서 돼지가 똥을 받아먹는다는 제주민속마을의 화장실을 재미있게 구경했었다.
어렸을 때 새벽녘이면 방광이 차올라 꿈속에서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문이 열리지 않거나 변기가 더럽거나 행여 괜찮은 변기를 찾아 앉으면 문이 닫히지 않거나 해서 꿈속에서 소변을 볼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소변을 보지 못하고 잠에서 깨곤 했다.
꿈속에서 보던 화장실 같아 요의가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이 꿈속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니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창고건물 1층에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어린 날 무서워했던 창고가 생각나 주저하면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컴컴한 창고 안에는 올가미 밧줄이 드리워져 있고 날 세운 칼과 도끼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바닥의 어지러운 핏자국을 발견한 의주는 뒤로 나자빠졌다.
화장실 아래층 문을 열고 나온 청년이 실망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의주는 청년이 나온 문을 열어보았다. 천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의주는 서둘러 식당으로 돌아와 아낙에게 작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저 청년 말이에요. 화장실 밑에는 왜 들어가죠?”
커다란 칼로 돼지 뒷다리를 내리치던 아낙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똥 주워 먹으러 갔나 보지. 컬컬컬.”
“아주머니 농담도.......”
“왜? 농담 같아? 나도 저놈이 영 수상하단 말이야. 저 녀석이 갓난쟁이로 우리 집에 올 때 돼지새끼 한 마리도 딸려 왔거든........ 아무래도 여보, 그때 우리가 돼지새끼를 삶는다는 것이 고마 그 얼라를 삶았던 갑소. 컬컬컬.”
“그라믄 우리가 얼라 대신 돼지새끼를 밥 먹여 키웠단 말이지? 컬컬컬.”
남자도 맞장구를 치며 이상한 소리로 웃는다.
의주는 미간을 찡그리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남자가 휙 돌아보더니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허벅지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
“너는 우리들 냄새를 싫어했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남자는 칼갈이봉에다 칼을 슥슥 갈았다.
“네가 먹은 게 누구 다리였는지 알아? 네 등록금이 어디서 나온 줄 알아? 우리 새끼들 팔아서 네가 공부하고 떵떵거리고 사는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의주는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막혔다. 청년이 들어와 천천히 식당 안을 둘러보다가 의주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왜 똥을 누지 않았어?”
의주는 울컥 구역질이 나 입을 막고 뛰쳐나갔다. 빈 위장이 홀랑 뒤집혀 나올 것 같다.
“똥 좀 누고 가.”
청년이 애원하며 뒤따라왔다.
“약 냄새나는 사료 말고 싱싱한 사람 똥을 먹고 싶어.”
남자는 식당 밖에 서서 칼을 갈며 구경만 하고, 젖을 물리는 아낙의 품에는 새끼돼지 네 마리가 엉겨 붙어 있었다.
이 모두가 한꺼번에 의주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굳어버린 다리를 두드려 걸음을 재촉했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새끼 내놔!”
옆집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왔다.
동네 주민들이 모두 따라오며 내 새끼 내어놓으라 소리쳤다.
의주는 차에 올라 허둥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따라붙은 주민들이 차 후드를 두드려댔다. 후진 기어를 넣어 운전대를 좌우로 비틀었다. 바퀴가 헛돌고 진흙이 튀어 유리를 덮었다.
“그만, 이제 그만!”
눈을 감았다.
요란한 소리가 주변을 흔들었다. 의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앞 유리에 손 하나가 얹히더니 진흙을 닦아냈다. 손자국 너머로 견인차의 비상용 불빛이 번쩍였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고 신고를 해 놓고 휴대폰을 꺼 놓으면 어쩝니까? 한참 헤맸잖아요.”
견인차 기사가 차 뒤쪽에 고리를 걸고 무 뽑듯 진흙 반죽 속에서 차를 꺼내어 주었다. 아직 정신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의주의 눈은 초점이 모이지 않았다.
“저기 마을이 있어요. 사람들이 공격했어요.”
“무슨 마을이요? 저긴 구제역 감염된 돼지들 생매장 한 곳인데요. 이런 진흙탕에는 뭐 하러 들어왔어요. 통행금지 표지판도 찌그러뜨려 놓고. 옷을 보니 한바탕 뒹굴었네요. 차가 조금만 더 갔으면 생매장한 구덩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을 거요. 비가 와서 땅이 엄청 물러졌거든요.”
하고 견인차 기사는 보험회사에서 전화 오면 자기가 늦은 게 아니라고 말 좀 잘해달라고 하고 떠났다.
의주는 그곳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어 멍한 상태로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방역소독기 앞에서 오래오래 진흙을 씻어냈다.
주머니에서 녹음기가 떨어졌다. 취재 때마다 켜 놓는 녹음기였다. 의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녹음기 재생 단추를 눌러보았다.
“........ 아버지도 돼지를 키우셨어요......... 아버지를 아세요?........... 사실 저는 채식을........ 어머 네 쌍둥이군요............ 아버지가 최근에 오신 적이 있나요?......”
의주 혼자 떠들고 있었다. 의주는 녹음기를 벌레 털듯이 내동댕이쳤다.
컬컬컬. 한참 있다가 의주는 웃기 시작했다. 제게도 옮겨붙은 이상한 웃음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무슨 마을이요? 저긴 구제역 돼지 생매장 한 곳인데......... 컬컬컬.
언젠가 지하철 객차에 앉아 해지는 한강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객차 연결 문이 열리더니 귀에 익은 팝송 멜로디가 추억으로 통하는 문을 열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추억의 팝송 시디 열장을 단돈 만원에 모십니다.' 과거의 문을 열고 나온 노인은 손수레에 커다란 시디플레이어를 싣고 지나가고 있었다. 십 년 전이었다면 서로 사려고 했을 텐데, 노인은 어디 있다가 십 년이나 늦게 나타난 것일까.
하나같이 이어폰을 낀 승객들은 노인의 시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의 피로에 절여진 승객들은 작은 기계 하나씩 들고 모니터가 시키는 대로 웃으라면 웃을 뿐이었다. 이제 책이나 신문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젊은 아이 하나가 팝송 가락을 캡처해서 스마트폰으로 제목을 검색하더니 '저 노래 제목이 이거구나.' 하고는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로 화면을 바꾸었다. 노인 또한 승객의 무관심에 무관심하게 반대쪽 객차 문을 열고 과거로 돌아갔다.
뜬금없이 그 노인이 생각났을까? 노인이 과거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처럼, 아버지도 없어진 옛날의 그 창고 안으로 들어가셨을까? 새끼돼지의 죽음을 혼자서 슬퍼했던 그 창고에다 역병으로 죽은 돼지들을 뉘어놓고 또다시 가슴에 물파스를 바르고 계실까? 몇십 마리 규모로 줄긴 했지만, 그깟 것 얼마나 되냐고 처분하고 편히 좀 쉬시라 쉽게 말했지만, 돼지는 아버지의 삶을 지지해 준 동무였을 것이다. 역병으로 잃은 것은 돼지 몇십 마리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함께 건너온 전우'였던 것이다.
노인의 싸구려 시디에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듯이,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한 축산 농부의 상심이 거기 있을 것이다.
의주는 그 창고를 찾아가 문을 열 것이다. 아버지 옆에 오래도록 앉아 있을 것이다.
의주는 고집스레 직진을 명령하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지도책을 찾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