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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Oct 21. 2024

수상한 문중제사

(옴니버스 판타지 단편소설 9)

    

결혼정보 업체에서 의주에게 연락을 해왔다.

NH 그룹 가문에서 선을 보자는 것이다.

“김회장 손자가 유학에서 돌아온다더니 손자며느리를 뽑으려나 보다.”

친구들이 호들갑이다.

“그 재벌가에서 왜? 나를?”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의주는 수락을 하고 말았다.     

검정 세단이 와서 의주를 태웠다.

차가 시외로 나서자 옆에 앉은 매파가 입을 열었다.

“긴장했나 봐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줄까요?”

“네”

“옛날에 신부의 집에서 혼례식을 올린 부부가 다음날 시집으로 향했지. 고개를 넘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 신랑을 잡아먹어야겠다고 덤비는 거야. 신부가 앞을 막고 물었지.

‘선량한 남의 신랑을 왜 해코지하는 것이오?’

그러자 구렁이가 대답했어.

‘이십 년 전에 내가 꿩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한 사내가 나를 쫓아내고 꿩을 살려주었다. 그 꿩이 사내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꿩 대신 그 아들을 잡아먹어야겠다.’

‘나는 어찌 살라고 남편을 잡아먹으려오?’

‘네가 살 방도를 마련해 주겠다.’

하더니 구렁이가 작은 구슬 하나를 뱉어냈지.

‘이 구슬을 들고 주문을 외면 문이 나타난다. 첫 번째 문을 열면 자손들이 공부를 잘하고, 두 번째 문을 열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

라고 말했어.”

그러자 의주가 끼어들었다.

“아~ 그 설화요? 신부가 세 번째 구멍을 열어서 구렁이가 죽었다고 .......”

그 말에 매파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부는  번째 문을 열었어.”

“예에?”

“뱃속에는 이미 아들이 들어섰으니 무능한 남편은 필요가 없었던 게지.”

“설화의 엽기적인 변형이네요.”

매파는 의주를 보며 알 수 없는 비웃음을 흘렸다.     


고택 앞에서 차가 멈추자 한 남자가 문을 열고 안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드시지요.”

대문의 문패에는 최씨 성이 새겨져 있었다.

“김회장 댁 선자리가 아니었나요?”

“김회장이 제사를 우리 문중에 위탁하며 거액의 재산을  제사 비용으로 증여했지요.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마당을 거쳐 뒤채로 데리고 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고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남자가 의주를 사당 앞에 세웠다.

“이번에 새로 뽑은 아이입니다.”

그러자 문중 사람들이 절을 했다. 얼결에 의주도 맞절을 했다.

문중의 어른이라는 사람이 의주를 사당 안으로 안내했다. 의주가 들어가자 사당 문이 닫혔다. 놀란 의주가 문을 밀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휘장 뒤에서 쉬쉬쉿 소리가 났다. 휘장을 들추니 그곳에 청설이 쓰러져 있다.

“아버지?”

“의주 네가 여길 왜?”

그 뒤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사당 밖에서는 제사를 시작하려 했다.

축문을 읽으려는데 새 종손이 돌아섰다.

“우리는 이 제사를 위탁받아 구렁이 구슬의 첫 번째 구멍을 열어 50년 동안 의사와 판·검사가 대거 배출된 자랑스러운 집안이 되었다. 이제 명예를 다 채웠으니 구렁이 구슬을 돌려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무슨 말씀이시십니까? 안 됩니다.”

하며 문중사람들이 극구 반대했다.

“'사'자 직업이 돈이 되는 줄 아십니까? 이제는 두 번째 구멍을 열어 재물을 늘려야겠습니다.”

새 종손은 할 수 없이 제사를 진행했다.     


구렁이를 위한 축문이 읽혀지자 사당 안에서는 구렁이가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구렁이는 젊고 싱싱한 제물을 한입에 삼키려 했다.

청설이 촛불을 들고 구렁이를 막아섰다.

“아버지가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구렁이 구슬을 없애려 왔는데 구렁이가 제사를 받으려 깨어났구나. 네가 어찌 구렁이 제물로 잡혀왔더냐?”

구렁이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부녀에게 다가왔다. 꼬리를 휘둘러 촛불을 껐다. 사당의 나무판 틈새로 들어온 빛이 구렁이의 흰 이빨에 부딪혀 반짝였다. 구렁이 이빨이 의주에게 달려드는 순간, 쾅 소리가 나며 사당 뒷벽이 깨어졌다. 벽을 뚫고 승용차가 들어와 구렁이를 깔아뭉갰다.

차창으로 완섭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서 타세요.”     

한참 후에 완섭의 차가 저수지 앞에서 멈추었다.

청설은 의주를 떼어놓고 완섭에게 다가갔다.

“고맙다.”

“아닙니다. 제 어머니 장례도 도와주시고...... 그리고 이건 어머니 유품입니다.”

하며 완섭이 목걸이를 내밀었다.

“구슬이 늘 반쪽만 빛을 내더군요.”

청설이 춘영에게 선물했던 목걸이였다. 청설은 주머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역시 반쪽만 빛을 내는 구슬이었다.

구슬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보름달이 되어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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