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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Sep 06. 2021

창발(emergence)

아름다운 도시를 바라며

          창발(emergence)은 동물, 식물, 곤충 등이 무리로서 생존할 때, 하위 계층에는 없는 행동, 능력, 기능이 상위 계층에서 떠오르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창발이란 말은 철학, 과학, 생태학, 경제학, 정치, 조직이론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동물, 식물, 곤충이 한 개체로서 창발을 내놓거나 소유하지 않는다. 창발은 한 종의 개체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상호작용할 때에만 나타난다. 자연에서 여러 가지 동식물들에 의해 창발 된 자산들이 관찰된다. 예를 들면, 벌은 개체로써 벌집을 만들거나 소유하지 않고, 벌 떼로서 벌집을 만들고 공동의 자산으로 관리한다. 벌떼가 육각형의 벌집을 만들어내는 것은 개체의 지능과 능력이 아니라 벌떼 속에 있는 지능과 능력이다. 

벌 때가 만든 육각형의 벌집

          작은 물고기들은 한 무리가 되어 생존을 위한 여러 방어 행동을 한다. 이들은 무리를 만들어 이동함으로 자신들을 큰 물고기들로부터 방어한다. 큰 물고기에게 작은 물고기 떼는 하나의 큰 형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큰 무리를 이룬 작은 물고기들이 햇빛을 반사하여 내는 형광도 대단한 방어수단이 된다. 이처럼 작은 물고기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자신들을 방어하는 행동은 창발의 한 예이다. 

물고기 떼의 형광

          생태계에서 하위계층의 개체들이 무리를 이루어 생존하면 크고 통합된 상위계층에서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갖게 된다. 즉 하위계층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모양과 기능이 상위계층에서 떠오른다. 들풀 한 포기, 한 포기는 각자의 생존의 몫을 하지만, 모여서 한 종의 군락을 이루고, 여러 종의 군락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들꽃 군락지

          벌들은 결코 인간을 위해 꿀을 모으지 않지만, 생태계의 상위계층에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나무는 벌레와 바이러스로부터 개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유한 기름을 생산하여 나무껍질, 잎, 과육 등에 저장한다. 이러한 기름은 벌레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인간에게는 향기가 되고 영양분이 된다.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창발에서 몇 가지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생태계에서 한 종의 개체들이 무리를 이루어 생존할 때, 새로운 형태와 기능이 그 상위계층에서 떠오른다. 낮은 계층에 속한 개체는 상위 계층의 창발을 의도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생태계의 한 계층 안에서 떠오르는 창발은 종의 보존과 무리 전체의 생존을 위해 유익하다. 이러한 창발은 무리가 갖는 전체 지능과 능력에 의해 발생한다. 한 종에 부여된 전체 지능과 능력은 같은 환경에서는 늘 일정하며 변치 않는다. 창발은 발생시킨 무리와 생태계 전체에 유익하며 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 사회도 다양한 창발을 내놓는다. 인간이 사회적인 생활을 하므로 생겨나는 언어, 음식, 예술, 주거 양식, 정치, 사회 체제 등은 창발의 예들이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마을들을 보면, 인가들은 모여있고, 전답은 지형을 따라 나누어져 있으며 산, 강, 하천과 어울려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전답과 마을 크기는 비례하고 한 마을이 두레 하여 경작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의 가옥, 전답, 음식, 인심 등이 산천과 어울려서 한 마을이 떠오른다.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인간 사회는 국가, 종족, 언어, 종교, 이념 등으로 나뉘어서 다양한 문화를 창발한다. 인간은 단체나 조직을 단위로 하여 특정한 이념과 목적을 가지고 창발을 유도하기도 한다. 인위적인 이념과 목적에 의해 영향을 받은 창발은 자연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변하고 지속하지 않는 창발은 인위적이고 일시적인 운동이며 특정한 단체나 모임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환경적인 도전 속에서 인간이 사회적으로 반응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창발이 나타난다. 인간의 창발은 기본적인 욕구와 정신이라 불리는 영에 의해 주도된다. 시민들이 불안, 공포, 탐심과 같은 정신으로 연대하면 집단 이주, 폭동, 부동산 투기, 주식 투기, 시장 거품과 같은 부정적인 사회 현상들을 특징으로 하는 추한 사회가 떠오른다. 이에 반해, 시민들이 사랑, 정의, 공평과 같은 정신으로 연대하면 이웃 사랑, 친절, 두레, 봉사와 같은 사회 현상들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 살 만한 사회가 떠오른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손들은 자유의지로 선한 정신과 악한 정신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적인 욕구와 선한 정신으로 연대한 사람들은 질서가 있고, 아름다운 문화를 창발 하지만, 악한 정신이나 비겁한 정신으로 연대한 사람들은 무질서하고 추한 문화를 창발 한다. 만약, 사회의 많은 시민들이 무질서와 절망을 경험한다면, 그 사회는 자신들이 소유한 정신과 가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는 인간 사회로부터 나온 대표적인 창발의 예이다. 세계적으로 인구 5백만이 넘는 도시들이 81곳이나 있다. 유엔의 2020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56%의 전 세계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 인구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포럼은 2050년까지 도시 인구는 현재의 두 배 가량이 되어 세계 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도시는 한 지역의 상업,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이다. 특히, 서울, 뉴욕, 도쿄와 같은 대도시들은 인간이 창출한 모든 문화와 생산품이 집결되고 거래되는 곳이다. 또한, 대도시들은 상업과 무역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도시: 뉴욕

          성경 계시록을 보면 큰 도시, 바빌론에서 거래하는 상품명이 나온다.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함께 ‘종들’과 사람의 ‘영혼’이 포함되어 있다. 타락한 도시인들은 사람과 사람의 영혼까지 거래한다. 도시인들은 부(富)의 축적을 목적으로 효율성과 경제성을 우선시하고 다른 가치들을 이차적으로 여긴다. 경제적인 이유 없이 사람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사회적인 사귐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본다.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방송 매체들은 상업화되어 있다. 경제 살리기는 모든 정치가의 공약사항이다. 사실, 경제는 선한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살려야 한다. 도시의 미술관, 박물관, 교향악단, 공원, 녹지, 산 등이 그나마 정신에 쉼을 준다. 시민들의 정신과 영성을 새롭게 하려는 종교기관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도시인들의 정신이 시들고 병들어 가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몸과 마음을 포함한다. 사람의 마음은 사랑, 자유, 평등과 같은 보다 높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한다. 아름다운 도시의 창발을 위해서, 정신적인 가치와 물질적인 가치가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여 사람의 영혼까지 사고파는 도시에서 아름다운 창발을 기대할 수 없다. 사실, 도시의 여러 문화 형태는 그 도시를 주도하는 정신의 모습이다.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선한 정신으로부터 아름다운 마을, 사람 살만한 도시가 떠오른다. 사회적 창발은 개인 단위에서 나오지 않고 집단 지능, 지혜,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개인이 한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선한 정신과 연대하고 자기와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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